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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짓기(3) 여름장마, 상량식, 일조권 사선제한 본문

집짓기&인테리어

집짓기(3) 여름장마, 상량식, 일조권 사선제한

mooncake 2020. 7. 22. 11:45

집을 지으며 느낀 단상과 잡설, 아주 약간의 정보

(1),(2)는 제목만 써놓고 본문을 완성하지 못해, (3)부터 시작합니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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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초엔 레미콘 파업으로 공사가 지연되었는데 7월 하순은 장마로 공사가 지연되고 있다. 여름에 장마비가 오는 건 너무 당연하지만, 골조공사가 자꾸 늦어지니 마음이 답답하다. 한국도 건물을 짓기엔 꽤 극한 환경이다. 겨울은 추워서, 여름엔 장마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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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사님으로부터 상량식 이야기를 들었다. 대들보가 없는 요즘에도, 상량식을 하기는 한단다. 천정 콘크리트 타설 시 원하는 문구를 새기기도 하고, 목수님 입장에선 그동안의 노고를 치하해주는 자리이기도 하고. 건축의 형태는 바뀌었는데, 상량식 같은 전통을 다른 방식으로 유지하는 게 재밌다는 생각이 든다. 제대로 하는 집은 고사도 지내는 모양이다. 여튼, 상량식 때 넣고 싶은 문구를 아빠에게 물어봤더니 옛날 우리집 지을때도 상량식은 안했다며;;; 알아서 하라고 하신다. 가족간의 소소한 이벤트처럼 상량식을 하는 집도 있고, 땅의 신령에게 고사를 지내는 형식의 상량식을 하는 집도 있는데, 역시 우리집은 둘다 해당하지 않는다ㅋㅋ 건조한 분위기에다가, 옛날 분들같지 않게 미신을 1도 안믿는 집이다. 오히려 나랑 오빠가 미신에 속하는 분야를 흥미로워하는 편이라(귀신 이야기, 타로점, 사주 등등) 부모님이 니네 왜 그러냐고 하심ㅋ

 

결국은 고사를 지내는 행위 그 자체보다는, 집이 튼튼하게 잘 지어지기를, 그리고 이 집에서 거주할 가족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이 중요한 게 아닐까. 그 마음을 어떻게 표출하느냐는 개인 성향과 취향에 맡기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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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지어지는 집은 4,5층과 6층 다락을 우리 세 식구가 사용할 예정이다. 얼핏 들으면 3개층을 사용하니 세 식구 살기에 좁지 않을 것 같지만, 안타깝게도 예전에 살던 2층 단독주택에 비해 매우 매우 좁다. 4층부터는 일조권 사선제한을 받아 바닥 넓이도 좁아지고 북쪽 벽이 사선으로 꺽이는 탓이다. 원래 살던 집보다 좁아진다는 것, 한쪽 벽면이 다락처럼 기울어진다는 것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으나(그래서 우울했다), 올라가고 있는 골조를 보니 생각보다 더 좁고, 사선으로 인한 제약도 크게 느껴진다. 단적인 예를 들자면, 부엌에 상부장 설치가 불가능하다.

 

사선 부분을 최대한 활용하는 인테리어를 하려고 열심히 궁리 중이었는데, 실제 건축 중인 건물을 보고서야 알게 된 사실 - 4층과 5층은 기울어진 벽이더라도 양상이 다르다. 4층은 벽에 직선 부분이 어느 정도 있는데 반해 5층은 완전한 사선이다. 4층보다 5층의 공간활용이 더 어렵다.

 

정형적인 것보다는 독특한 형태를 더 좋아하는 편이라, 사선 벽면이나 다락이 싫지는 않다. 하지만 넓은 집에 사선 부분이 있다면 재미있는 공간을 만든다거나 분위기 있는 연출을 할 수 있겠지만, 좁은 집의 사선 부분은 제약 요소 그 자체이다. 

attic, sloped ceilings, slanted ceilings, valuted ceilings 등에 kitchen, bedroom, wardrobe, storage 등을 붙여서 사선 벽면 인테리어를 참조 중인데, 해외 사례는 매우 다양하지만 정작 우리나라 주택 사례를 찾고자 하면 검색어에 문제가 있는지 별로 참조할 만한 케이스가 없다. 아파트 거주 비율이 높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일조권 사선제한으로 기울어진 집이 없진 않을텐데, 이상한 일이로다. (+추가 : "박공지붕"으로 검색하는 게 사선천정 등등 보단 자료가 많이 나온다^^)

 

 

부엌에 상부장을 달 수 없을 것 같다고 얘기하니 주변 사람들이 이해를 못 해서 참고차 올려봄.

물론 창의 위치, 경사도 등은 다르지만, 이 사진처럼 벽이 경사져 있어 상부장 설치가 안될 것 같음. 물론 건축사님이나 인테리어 업체와 이야기를 나눠본 건 아니지만, 구조 상 상부장을 단다 해도 의미가 없어보임.

요즘 상부장 없애는 게 트렌드이고, 보기에도 좋지만, 그 많은 그릇들은 어디로 가야한단 말인가...

(안그래도 부엌이 엄청 좁아졌는데 상부장까지 없어지는 2중고. 넓디 넓은 아일랜드 조리대가 있는 부엌은 다음 생에서나...) 

 

 

경사진 벽 쪽에 침대를 놓으면 아늑하고 공간활용도 잘 될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4층 사선 벽면은 아랫 부분은 직선이라 그나마 활용도가 있는데

 

 

내가 쓰는 5층의 사선 벽면은 완전히 사선임. 직선 부분이 없음. (물론 이 사진처럼 양쪽 벽이 사선인 것은 아니고, 한쪽 벽면만 사선임)

그러니까 사선 벽면 쪽으로 침대 헤드를 향하게 하던, 침대 세로 부분을 향하게 하든 남는 공간이 생김.

북쪽 면에 접하는 5층 화장실 벽도 마찬가지.

 

 

아무튼 이번에 집을 지으며 사선벽면이라 해도 다 같은 사선벽면은 아니라는 점을 새롭게 깨달았다. 사선 벽면 인테리어 자료를 찾아도 대부분 위 사진처럼 하부의 일정구간은 직선인 곳이 많아, 5층에 적용시키기는 어려워 시무룩시무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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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꿈에 나오는 우리집은 작년까지 살던 원래 우리집이다. 작년에 휴직까지 하고 집과 작별하는 시간을 가지고, 9월엔 임시집으로 이사해서 10개월째 살고 있고, 12월에 집이 헐리는 모습도 보고, 그 땅엔 이제 새로운 골조가 올라갔지만, 잠에서 깨면 아직도 내가 평생 살아온 집이 이 세상에서 없어졌다는 게 납득이 잘 안간다. 아직도 우리집에 가면 우리집이 있을 것만 같다. 작지만 정원이 있고, 우리 식구만 오붓하게 살던 단독주택에서 더이상 살 수 없다는 상실감이 크다. 심으려고 하면 작은 나무 몇그루 정도는 건물 뒷편에 심을 수 있지만 굳이 그러고 싶지는 않다. 나도 내가 이렇게까지 지나간 것에 집착하는 사람인 줄은 몰랐는데, 사라진 집과 버린 물건들이 여전히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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