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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테스 3개월 본문

Trivia : 일상의 조각들

필라테스 3개월

mooncake 2022. 9. 2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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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다니는 필라테스 1:1 비용은 1회(50분)에 77,000원. 일주일에 두번씩 하면 한달에 70만원 가까운 비용이 든다.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 나에겐 큰 돈이다. 그렇지만 운동을 마치고 나면 나 자신에게 좋은 일을 해준 것 같아서 돈이 아깝지는 않다. 게다가 운동을 정말 정말 못하는 나에게 선생님이 어찌나 다정하게 격려를 해주며 섬세하게 동작을 지도해 주시는지 돈이 좋긴 좋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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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릴 때부터 심각한 운동치였다. 수영을 제외한 모든 운동을 매우 심각하게 못했다. 나에게 화를 낸 체육 선생도 여럿 있었다. 너무 못하니까 장난을 친다고 생각했던 거다. 늘 최선을 다했던 나는 많이 억울했다. 고3 2학기때는 건강이 좋지 않아 체육 실기 수업을 아예 받지 못했는데, 그때 실기 시험을 치르지 못한 학생에게 부여되는 규정상의 점수(당연히 좋은 점수는 아니다)는 내가 중고등학교 6년간 받았던 실기 점수 중 제일 좋은 점수였다. 한 것 보다는 안한 게 더 점수가 좋다니 아이러니하지만, 사실이었다. 워낙 운동을 못하다보니 또래들과 흔히 하는 술래잡기 같은 뛰어노는 놀이도 거의 한 적이 없다. 나에게 운동은 고통 그 자체였고 체육 수업이 있는 날은 학교에 정말 가기 싫었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도 축구나 야구같이 남이 하는 운동을 보는 것에도 흥미가 없다. 워낙 운동을 못하고 몸도 약해 부모님이 다양한 운동을 시켰는데, 기본 운동 능력 자체가 워낙 떨어지다보니 고생만 하고 효과를 본 운동이 없었다. (다치고, 아프고, 혼나서 마음 상하고 놀림 거리가 되고ㅋ)
지금에 와서야 든 생각인데 내 타고난 운동 능력이 지능으로 치자면 경계선 지능장애 쯤에 해당하지 않을까. 나처럼 평균보다 훨씬 운동 능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에게 지금 하고 있는 1:1 필라테스처럼 맞춤형 프로그램이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몹쓸 몸은 아니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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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테스를 시작하고 3개월 정도가 지났지만, 사실 이렇게 필라테스 소회를 쓸 정도는 아니다. 기간에 비해 수업을 많이 받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시작하자마자 빗길에 미끄러지는 사고가 있어서 한동안 쉬었고, 일주일에 1번 밖에 못한 주도 많았다. 그래서 눈에 띄는 효과가 있냐고 묻는다면, 물론 아직은 없다. 살도 안빠졌다. 애초에 일주일에 50분~100분 정도 운동을 한다고 살이 빠질리가 있나. 우리는 다 알잖아요 체중감량의 1순위는 식이라는 것을. 그리고 애초에 살을 빼거나 몸매가 예뻐지려고 필라테스에 등록한 것은 아니다. 오로지 건강해지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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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테스가 나에게 필요한 종류의 운동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몸에 안좋은 곳이 많다보니 섣불리 운동을 시작했다가 몸 상태가 더 나빠지는 것이 걱정되어 몇년째 망설이고 있다가 회사 후배의 강력 추천으로 집 앞 필라테스 스튜디오에 가서 체험 수업을 들어봤는데, 선생님이 동작을 시켜서 했더니 1~2분만에 내가 평생 정형외과 의사들에게 들어왔던 말을 하셨다.
"mooncake님은 몸이 너무 유연해서 문제네요"
그렇다 나는 몸이 너무 유연해서 탈인 사람. 보통 유연한 게 무조건 좋다고들 알고 있지만, 내가 체조 선수가 아니고서야 과하게 유연한 것도 좋지 않다(ㅠ.ㅠ) 전문용어로는 과신전이라고 한다. 온 몸의 관절이 정상 가동 범위를 넘어서 움직이기 때문에 관절 불안정성이 높고 부상 위험도 크다. 게다가 나는 예전에 수술을 여러번 받고 1년 정도 걷지 못하다가 성인이 된 뒤 걷는 걸 다시 익혔는데 이게 아무래도 아기 때 자연적으로 걷는 방법을 익힌 거랑 다르게 몸에 좀 안좋은 방식으로 정착이 된 것 같다. 요즘 필라테스를 하면서 근육을 보강하여 관절 불안정성을 줄이고, 쓰지 않아 짧아진 근육들(예:단내전근)을 늘리는 노력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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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위에서 필라테스 시작하자마자 빗길에 미끄러져 다쳤다고 했는데, 그러니까, 바로 이거. 내가 원래 남들보다 유독 더 잘 미끄러지는 편이었다. 여러번 수술을 받았기에 넘어지거나 미끄러지는 게 다른 사람들보다 더 치명적일 수 있어서 정말 주의에 주의를 기울이는데도, 생각치도 못한 찰나에 미끄러지는 순간이 있다. 심지어 남들은 별로 안미끄럽다고 하는데도 나만 미끄러워 주욱 밀리는 경우가 있어서 늘 미스테리였는데, 필라테스 선생님이 이게 당연하다고 한다. 관절이 너무 유연하기 때문에 버티는 힘이 없어서 조금만 밀려도 그냥 주욱 미끄러지는 거라고.
7월에 다치는 바람에 여러 일정이 꼬여서 좀 빡쳤는데 공교롭게도 필라테스 시작하자마자 다쳐서 오랜 미스테리가 풀린 점은 그래도 다행(?)이었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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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테스를 하고 나서 새로이 알게 된 사실이 많다. 그 중 하나는 내가 배에 힘을 줘야 할때는 어깨에 힘을 주고, 엉덩이나 허벅지에 힘을 줘야 할때는 종아리에 힘을 준다는 거다. 어쩐지 나날이 승모근이 치솟고 종아리가 굵어지는 느낌이라더니;;;; 특히 내가 어깨에 이렇게 힘을 주고 있는지 몰랐다. 필라테스 선생님 말로는 꽤 흔한 증상이라고 한다. 근육에 힘을 줘야 하긴 하는데, 근육이 별로 없거나 힘 주는 게 익숙하지 않은 부위 대신 그나마 힘을 쓸 수 있는 쪽에 힘을 주는 거라고. 꾸준히 운동을 해서 근육이 보강되면 힘을 줘야 하는 부위에 힘이 들어가고, 힘을 빼야 되는 부분은 힘을 뺄 수 있게 될 거라고 하시는데 그게 언제쯤이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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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필라테스는 괴롭다. 수업 중에는 내가 왜 비싼 돈 내고 셀프 고문을 당하는 걸까라는 생각을 하며, 이 고통의 시간이 언제나 끝나나 싶어 자꾸만 시계를 홀깃거리게 된다. 워낙 쉬운 동작만 하고 있음에도 체력이 나쁘다보니 가벼운 미주신경성 실신 전조 증상이 나타난 적도 서너번. 다행인 점은 필라테스 선생님이 간호사 출신이셔서 필요한 조치를 잘 취해주셨다. 의료인 출신이라고 다 뛰어난 필라테스 강사인 것은 아니겠으나, 우리 선생님을 보면 확실히 인체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대화 중에 “제가 전에 필라테스 수업을 받아본 적은 없지만 선생님처럼 잘 맞는 분을 만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라는 말을 했더니 “그렇죠. 저처럼 운동 못했던 필라테스 강사를 찾기는 쉽지 않아요”라고 하셔서 빵 터졌다. 내가 말한 의미와는 다른 뜻으로 답하시긴 했는데ㅋㅋ 사실 이 부분도 중요하긴 하다. 원래 타고나길 운동 잘 했던 분들보다 나같은 운동치, 저질체력들에겐 훨씬 더 눈높이 수업이 가능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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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긴 글을 쓰고 보니 되게 열심히 필라테스 다니는 것 같은데 사실은, 원래 1주일에 2번씩 꼭꼭 다닐라 했지만 자꾸 꾀를 부리게 된다ㅋㅋ 으아아.. 게다가 필라테스 한번 하고 나면 완전히 녹초가 되어 그 이후 시간은 전부 늘어져 있는 것도 문제. 그래도 다시 마음을 다잡고 열심히 해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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