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 미술관, 여행지에서 사진 찍기, 방랑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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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암스테르담 박물관은 사진 촬영이 가능하지만, 반 고흐 미술관만큼은 사진 촬영이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 그래서 나는 "그럼 기념품 가게라도!!라는 마음으로 위의 기념품 가게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안찍는 것이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는데 더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종종 "정말 마음에 들었던 그림과 그 그림의 제목"을 기록해놓고 싶은 마음이 들곤 하는데, 그래서 사진 촬영이 금지된 반 고흐 미술관에서는 인상 깊은 작품의 제목명을 아이폰 메모장에 일일이 적어왔다. 메모를 할때는 조금 힘들었는데, 지금 메모를 꺼내보니 몇몇 그림 제목 옆에 물결의 표현이 좋다거나, 붉은색과 푸른색의 색감이 아름답다거나, 하늘과 강의 표현이 특히 더 좋다거나, 작품의 모델이 된 보라색 도자기가 정말 예쁘다거나-실제 모델이 그림 옆에 전시되어 있었다- 하는 감상이 적혀 있어, 시간만 충분하다면 메모 쪽이 훨씬 더 좋은 기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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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어딜 가나 카메라를 들고 계속해서 촬영을 해대는 사람들이 좋은 취급을 받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사진을 찍느라 남에게 방해가 되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기도 하고, 근사한 고급 레스토랑이나 복잡한 상점 같은 곳에서는 카메라를 들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뭔가 번잡스럽고 눈치없고 촌스러운 인간이 된 기분이 든다. 또 쉴새없이 사진을 찍어대는 내 모습이 동양인 관광객의 스테레오 타입(여행지를 음미하고 즐기는 것보다는 사진 찍는 것에만 집착하는)을 한층 더 굳히는 느낌이 들어서 안타깝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언제나 여행 중엔 다량의 사진을 찍는 편이다. 사진조차 없다면 대부분의 기억은 너무나 쉽게 휘발되어버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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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한편으론 꼭 기억과 기록을 남겨야 해? 그 당시 즐거웠으면 그만이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늘 포스팅이 밀려 있긴 해도 블로그를 나름 꾸준히 하는 건 내가 기억과 기록을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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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안들고 다니면 여행이 훨씬 수월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촬영 여행과 진짜 여행을 분리하고 싶다는 생각도 하고, 대다수의 관광객들처럼 핸드폰만 들고 다닌다면 시간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훨씬 편해질 것 같다. 국내에서 돌아다닐땐 실제로 아이폰만 들고 갈때도 종종 있는데, 카메라를 갖고 다니는 것보다 확실히 편하다. 그렇지만 아직까지는 외국 여행에선 카메라를 포기못하겠다. (남들이 봤을때 결과물에 대체 무슨 차이가 있냐고 되물을지라도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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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돌아온지 일주일이 넘었는데도 아직도 여독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그냥, 막연히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기분이 자꾸만 든다. 지금 몸 상태로는 누가 휴가를 주고 돈을 쥐어준대도 꼼짝도 못할 거면서, 마음은 자꾸만 낯선 어딘가를 방황하고 싶은 기분이 들어 어제는 침대에 누워 자꾸만 비행기표를 검색하고 있었다. 이건 말 그대로 방랑벽인가? 하긴 블로그 이름이 괜히 wanderlust가 된 것은 아닐테지.
나란 인간을 구성하고 있는 많은 부분, 성격과 취향 체질 등 중 상당수는 여행과 상극이라고 할 수 있다. 낯선 곳에 가면 잠도 잘 못자지, 예민하고 까다롭기 짝이 없지, 청결에 대한 집착으로 알콜스왑을 잔뜩 들고 다닐뿐더러, 호스텔 다인실에서 자는 건 실행은 커녕 고려조차 해본 적이 없다. 짐 싸는 것도, 그 짐을 끌고 다니는 것도 너무 싫어하며, 일정을 미리 예약하고 움직이는 것도 싫고, 또 여행지에선 아파서 일정을 망치기 일수다. (여행 때문에 힘들어서 아프다기보단, 평소에 자주 아프기 때문에 여행 중이라고 딱히 안아플 이유가 없는 쪽이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여행 준비 중 + 여행 중에 "아아 싫어!, 아아 짜증나!, 아아 힘들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엄청나게 많아서, 다른 취미생활이었다면 진작 접었을 정도로 여행엔 싫은점이 많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행이 너무너무 좋다.
그래도 고를 수 있다면 다음 생엔 좀 더 여행 적성도가 높은 털털한 성격과 강건한 체질로 태어났으면 좋겠다. 아님 돈 걱정 없이 럭셔리하게 여행다닐 수 있을정도로 부유하거나...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