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아버지의 그릇과 할머니의 그릇 (호렉스 삼신유리 & 토요토키)
지난달에 "수집에 관하여" (https://mooncake.tistory.com/2056) 라는 글에서
나의 그릇 컬렉션은 허접하지만;;
가격과 상관없이 내 마음에 즐거움을 주니 그것으로 족하다라고 썼는데
그건 정말 진심이다.
물론 가끔은 왜 난 그릇 수집조차 요령있게 못하나 (=비싸고 좋은 것 위주로 사모으지 않나)
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이렇게 생겨먹은 걸 어째...
객관적으로 별 가치 없는 물건이라도
내 눈에 예쁘고 나에게 의미가 있거나 이야기가 있는 물건이 나에겐 최고다^^
오늘 소개할 그릇은 바로, 위 기준으로 보았을 때 나에게 가장 소중한 그릇 두개다.
외할아버지 댁에서 쓰던 밀크글라스.
2013년 연말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한동안 할아버지 댁을 비워두었다가
결국 할아버지 집을 팔게 되었는데,
엄마가 할아버지 짐을 다 정리하기 전에 혹시 기념으로 간직할 물건이 있으면 가서 보고 가져오라...고 하셨지만
나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할아버지 집에 단 한번도 가지 않았다.
평생 같이 살아 그 빈자리가 너무 컸던 친할머니와는 다르게,
외할아버지는 같이 살지 않아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일상생활에서 할아버지의 빈자리는 느낄 수 없었기에
마음 한구석에는 할아버지는 그냥 그 집에 살아 계신다고 믿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굳이 할아버지가 안계신 집에 가서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사실을 재확인받고 싶지 않았다.
유치한 마음인걸 알지만, 그렇게라도 마음에 위안을 삼고 싶었다.
그런 나를 위해, 할아버지 댁에 갈때마다 내가 예쁘다고 했던 밀크글래스 접시를 엄마가 챙겨오셨다.
지금 생각하면, 엄마가 나 대신 접시라도 챙겨와주신 게 얼마나 다행인지.
이 그릇에 과일을 깍아 담아 먹으면,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댁에 놀러가 보내던 시간이 눈 앞에 그려지는 것 같다.
접시 뒷면.
Horex Samshin Glass의 제품이다.
아마 그때 당시 밀크글래스로 유명했던 Pyrex를 참조한 작명이 아닐지...^^
삼신유리로 구글링해보니까 요즘은 더이상 일반 식기는 안만들고,
과학기구 전문회사로 운영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친할머니가 아주 오래전에 쓰시던 토요토키의 접시.
이 접시를 2014년 포르투갈 여행 며칠 전에 우연히 발견했는데, 이 접시에 대해서 글을 쓰려다가
여행 준비 해야해서 바쁘니까 여행 다녀와서 쓰자 - 고 해놓고는
5년이 지났다;;
이 접시로 말하자면
우리 엄마가 갓 시집온 새색시였을 때, 할머니가 너무 오래되고 낡았다며 (실제로 상태가 안좋다) 버린다고 싸둔 접시 중 하나인데
어쩌다보니 버려지지 않고 지하실에서 오래오래 살아남았다가
2014년 엄마가 버린다고 꺼내둔 것을 내가 우연히 발견하여 +_+
현재에 이르렀다.
몇십년전에 너무 낡았다고 버리려던 접시이니
상태는 정말 안좋지만
2014년은 내가 워낙 빈티지 & 앤틱 그릇에 푹 빠져 있던 때라 이 그릇을 발견하고 정말 기뻤다.
돌아가신 할머니의 그릇이라 더욱더.
토요토키카이샤 (동양도기회사)는 낯선 브랜드라 고개를 갸우뚱했는데
알고보니 노리다케와 뿌리가 같고
현재의 욕실 도기 회사 TOTO의 전신이라고 한다.
1917년 설립되어 1960년대까지는 그릇과 변기, 세면대 등을 같이 생산하다가
1970년대에 들어 사명을 토토로 바꾸고 그릇 생산은 중단하였다고.
할머니의 오래된 그릇을 찾기 전까지 토토에서 옛날엔 그릇도 만들었는지 몰랐기 때문에
2014년에 이 사실을 알고 굉장히 신기해했었다.
언제쯤 만들어진 그릇인지 궁금해서, 당시 백스탬프 연대를 구글링했는데
토요토키카이샤 자체의 자료가 그리 많지 않아서 대략 1950년대즈음인 것으로 추정했지만 확신은 없다.
이번에 다시 이 글을 쓰며 검색해보니 기타큐슈에 토토 뮤지엄이 있고,
옛날 식기류도 전시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요즘은 일본 여행 가기가 아무래도 좀 껄쩍지근한 시기이지만
훗날 기회가 되면 기타큐수 토토 뮤지엄에 이 그릇 사진을 들고 가서
혹시 언제 생산된 그릇인지 자료가 남아 있나 확인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