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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 벨기에 여행 후기 본문

외국 돌아다니기/2015.05 Italy & Belgium

이탈리아 & 벨기에 여행 후기

mooncake 2015. 5. 29. 12:30


1. 여행자들은 참 까탈스러운 존재다. 너무 관광지화된 곳은 상업주의에 찌들고 번잡해서 싫고, 한적한 소도시는 교통편이 불편해서 힘들고, 오래전 중세 마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곳이 좋지만 또 사람 사는 냄새가 너무 안나면 테마파크 같아서 아쉽고, 날이 궂으면 궂어서 싫고, 날이 너무 좋으면 좋아서 힘들고ㅋㅋ 스스로도 "뭐 어쩌란 말인지"란 생각을 하게 된다^^


2. 이번 여행에 다녀온 도시는 무려 10곳.

로마, 티볼리, 오르비에토, 피렌체, 시에나, 베네치아, 브뤼셀, 겐트, 브뤼주, 오스텐데.

이렇게 써놓고 보니까 바쁘게 다니는 거 싫다면서도 참 많이도 다녔다. 


3. 단기 유럽여행 한두번 간 거 아니고, 장거리 여행은 늘 힘들었지만, 이번엔 진짜 최고로 힘들었다. 체력이 완전 바닥나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시간들, 그 속상하고 아쉬운 시간들, 그런데 회사로 돌아갈 생각을 하면 더 암담하던 그 시간들. 역시 체력은 모든 일의 기본이다. 


4. 이탈리아는 영어와 포르투갈어로 대충 때우면서 다녔고(이탈리아어와 포르투갈어가 간단한 말은 비슷한 게 좀 있다ㅋ 문제는 그 간단한 말들도 두 개 언어를 섞어 쓴다는 거였지만... 예를 들어 영어의 please에 해당하는 포르투갈어 por favor와 이탈리아어 per favore를 섞어서 자꾸만 "por favore"라고 하질 않나...) 브뤼셀에 도착하자 프랑스어를 쓰는 곳이라 그런지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물론 내가 불어로 말하고 다닌 건 아니다. 벨기에엔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많아 주로 영어를 썼고, 또는 상대방은 불어로 말하고 난 영어로 말하는 식의 의사소통을 한 경우도 많았다.


언어에 관심이 많은 나에게 벨기에는 참 흥미로운 장소였다. 브뤼셀에 도착하자마자 간 마그리뜨 뮤지엄의 경우, 안내방송이 4개 언어로 나왔는데 대략 "프랑스어-플랑드르어(네덜란드어)-영어-독일어"의 순서였고, 안내문도 4개의 언어로 작성되어 있었다. 공간이 좁은 경우 프랑스어-플랑드르어 2개, 공간이 여유 있는 경우는 보통 4개. 물론 이건 지역마다 달라서, 브뤼셀에서 불과 30분 거리지만 플랑드르어가 대세인 겐트(헨트)에 가면 플랑드르어로만 안내문이 쓰여 있는 경우도 많았지만 말이다. 어쨌든, 외국어를 책상에 앉아 진지하게 공부하기 보다는 "우연히 줏어듣는 식으로 자연스럽게 습득"하는 게 훨씬 빠른 편인 나같은 사람에게는 벨기에같은 다언어사용환경에서 태어났더라면 지금쯤 훨씬 더 많은 언어를 유창하게 사용하고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좀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5. 근데 참 애매했던 점은, 4개 (또는 독일어 빼고 3개) 언어로 쓰여진 안내문이나 메뉴판 보기가 편했냐고 묻는다면, "전혀".

인간의 뇌가 참 신비로운 게 본인은 의식하지도 못하는 새 아는 언어와 모르는 언어를 인식할지말지가 결정되는 모양인지, "아랍어와 영어"가 병기된 안내문은 영어만 눈에 들어오는 반면에 "프랑스어, 플라망어, 영어"가 쓰여진 메뉴판은 나도 모르게 3개 언어가 동시에 눈에 들어오는 거다. 게다가 플라망어는 제대로 아는 언어도 아니고, 독일어 조금 배웠다고 독일어랑 비슷한 단어가 눈에 들어오는 수준이니 더 문제. 3개 언어를 동시에 이해하려고 하다보면 내 머리속은 혼란으로 가득해지고 "아, 이러지 말고 한가지 언어만 보자고"라고 의식적으로 노력해야지만 프랑스어 또는 영어 메뉴 한가지만 읽고 효율적으로 메뉴를 결정할 수 있었다. 써놓고 보니 참 난잡한 설명인데, 당시 나는 평소보다 메뉴판 읽는 속도가 느려져 원인을 파악하기 전까지 엄청난 혼란을 느꼈다ㅋㅋ (+게다가 벨기에는 메뉴판을 필기체로 써놓은 경우가 많아서 유독 필기체에 약한 나에게 또 멘붕을 선사함ㅎㅎ) 그래도 마요네즈 곁들인 감자튀김도 먹고 체리맥주도 먹고 딸기와플도 먹고 북해새우도 먹고 넙치구이도 먹고 나름 먹을 건 왠만큼 다 먹고 왔다^^ 단, 홍합요리는 먹지 못했는데 한 식당의 웨이터가 매우 진지한 표정으로 "지금은 홍합철이 아니라 절대 권하고 싶지 않다. 왠만하면 다른 걸 먹는 게 좋겠다"고 권고했기 때문이다. 가격도 홍합보단 다른 메뉴들이 더 저렴했다. 근데 정말 지금이 홍합철 아닌 게 맞나? 혹시 그때만 그 식당에 홍합이 다 떨어진 건 아니였을까? 홍합철이 아니라기엔 너무나 많은 식당들이 홍합 메뉴를 크게 써붙이고 있었기 때문에. 게다가 벨기에까지 가서 홍합요리를 못먹고 온 게 좀 아쉽게 생각되기도 한다. 언제 또 갈지 기약도 없는데...


6. 대부분의 이탈리아 사람들과 벨기에 사람들은 참 친절했다. 근데 역시나 예외없이 대도시보다는 소도시, 또 대도시라도 관광중심지보다는 외곽으로 갈수록 훨씬 더 친절해진다. 브뤼셀 외곽의 안더레흐트(말이 외곽이지 시내중심에서 지하철로 20분. 외곽이란 표현이 맞는건지 고민됨;;) 동네 사람들은 정말 어찌나 친절하던지 +0+ 반면에 베네치아 모 테이크아웃 피자집에선 거스름돈도 안줘서 달라고 했더니 한참만에 궁시렁거리며 주질 않나 것참... 


7. 로마는 도착 며칠전 로마 공항 화재 여파로 인한 혼란 + 대중교통 파업으로 인한 불편 + 성수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너무너무 많음 + 공기 나쁨... 등으로 인해 좋은 감정을 가지기 어려웠다. 그나마 좋았던 순간은 아침 7시에 캄피돌리오 광장에 갔을 때 정도? ㅎㅎ 다만 캄피돌리오 광장 가는 길에 베네치아 광장의 작은 공원에서 갈매기가 비둘기 잡아먹는 걸 봐서 아직도 그걸 생각하면 속이 울렁거림 ㅠㅠ


8. 사람들은 브뤼셀에 볼 게 없다고 말하지만 나는 참 바빴다. 마그리뜨 뮤지엄은 두 번 갔고, Jette 지역의 르네 마그리뜨가 살던 집을 박물관으로 만든 곳도 다녀왔다. 또, 저녁엔 브뤼셀 재즈 마라톤 공연도 감상해야 했고, 에라스무스의 집도 다녀오고, 악기 박물관도 가고, 피규어 박물관도 가고, 벼룩시장도 두 곳이나 다녀왔다. 그래도 못한 게 많아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ㅎㅎ


9. 이번엔 식비가 꽤 많이 들었다. 초반엔 어쩌다보니 제대로 된 식사를 못해서 앞으론 좀 괜찮은 식당에서 먹자는 생각 + 너무 피곤해서 식사보다는 쉬고 싶다는 생각으로 그때그때 아무데나 들어가서 앉았더니(피렌체 두오모 광장 앞 레스토랑, 시에나 캄포 광장 앞 레스토랑, 브뤼주 운하 옆 레스토랑 등등ㅋ) 역시나 자릿값이 어마어마한지라, 썩 맛있지도 않은 이삼만원짜리 파스타를 참 여러번 먹었다. 흥. 근데 어차피 한국에서도 그 정도 가격은 흔하다는 게 함정 


그리고 의외로 벨기에에서 초콜렛 가게를 거의 가지 않았다. 가는데마다 고디바, 노이하우스 등이 깔려 있었지만 심지어 그런 브랜드 초콜렛 매장은 들어가 보지도 않았음. 확실히 너무 많으면 질리는 경향이 있는 듯 하다. 벨기에 와플조차도 마지막날 밤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먹고 왔다. 허허허허허. 


10. 2012년에 난생 처음 혼자 여행을 한 뒤로 "나홀로여행"이 의외로 체질에 잘맞는다는 걸 알게되고 이후로 "혼자여행" 매니아가 되었는데 이번엔 좀 외로웠다. 특히 초반에 외롭다는 생각이 유독 많이 들었다. 어딜가나 혼자 온 사람은 나뿐인 것 같은...T.T 금방 또 씩씩하게 잘 다녔지만 말이다ㅋ


11. 외국에 갈때마다 우리나라 공공장소 금연정책에 대해 깊이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기관지와 폐가 안좋은 나에게 담배연기는 정말 쥐약. 근데 아직도 대부분의 나라에선 버스정류장이고 카페고 레스토랑이고 길거리고 다들 담배를 피워대니 정말 죽을 맛...


12. 이번에도 날씨운은 좋은 편이었다. 사실 로마, 오르비에또, 피렌체에서는 너무 좋아 탈이었고(햇볕이 너무 강해서 힘들었다), 벨기에에서는 일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날씨 좋은 날에 딱 맞춰 왔다고, 정말 운이 좋은 거라고 현지인이 말했다. 원래 벨기에도 일년 내내 비가 오고 흐린 날씬데(런던과 흡사하다고 함) 내가 갔을때는 오스텐데에서의 잠깐을 빼놓고는 계속 화창했다(다만 좀 추웠다. 5월 말인데 최저5도/최고 16도. 한낮엔 33도까지 올라갔던 이탈리아에 있다가 넘어가니 더 춥게 느껴졌을지도) 문제는 나쁜 날씨운이 베네치아에서의 하루에 집중됐다는 거. 한여름 장마비같은 폭우가 오후 내내 내려서 대부분의 일정을 포기해야했다. 본인의 의지와는 다르게 레스토랑과 카페에서 강제휴식모드. 


13. 각 도시별로 세세한 후기를 쓰고 싶지만, 그건 정식 여행기에서...^^

(근데 과연 정식 여행기를 쓰기는 할까?;; 하도 안쓴 여행기가 많아서...;;)


14. 사람들이 다음번 여행은 어디로 갈거냐고 묻는다. 이번에 체력적으로 진짜 최악의 상태를 맛봤기 때문에 당분간 여행 갈 엄두를 못낼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고르라면 그리스 로도스섬과 발리에 가고 싶다.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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