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lust
미세먼지 디스토피아 + 이런 삶에도, 의미가 있을까 본문
어릴 때 공상과학소설을 참 좋아했었다. 미래의 지구 또는 우주 행성에서의 삶을 그린 이야기들을 특히 좋아했다.
요즘 미세먼지로 가득한 길거리를 어쩔 수 없이 걸어야만 할때마다, 어린 시절 읽었던 디스토피아 세상 속으로 들어간 기분이 든다. 어릴때 공상과학소설을 좋아했다지만, 결코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좋아하진 않았는데, 왜 현실이 되는 것은 하필이면 이런 쪽일까. 단언코, 어린 시절의 나는, 성인이 된 내가, 매일같이 미세먼지 수치를 확인하고 그날의 실외활동 여부를 결정한다거나, 봄이 와도 미세먼지와 황사 탓에 하나도 반갑지 않은 삶을 살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그나마 화사하고 청명한 봄을 기억이라도 할 수 있어 다행인걸까, 지금 어린아이들은 그런 봄이 있었다는 것 조차 모를테니.
지난해 연말 악화된 허리디스크 때문에, 초반의 심각한 방사통이 어느 정도 잡히고 난 후로는 겨울 내내 열심히 걸었다. 나에게 추위는 쥐약이지만 마스크 등의 각종 방한용품을 장착하고, 빨리 나아 재밌게 살겠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열심히 걸었다. 하지만 좀 따듯해지는가 싶더니 미세먼지의 공습이 시작되어 이번엔 심한 기관지염과 편도선염에 걸려버렸고, 열흘 넘게 항생제를 먹어도 차도가 없다. 비단 걷기 운동과 미세먼지 탓만은 아니고, 어릴때부터 일년의 절반은 각종 호흡기 질환에 시달려왔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새삼스레 짜증이 난다. 요 몇달, 나의 삶은 유독 더 잿빛 투성이었다. 평일엔 회사에 나와 골골거리며 돈을 벌고, 주말엔 약에 취해 계속 잠만 잔다. 이런 삶에도 의미가 있는 걸까.
물론 알고 있다, 비록 힘들게 버티는 것이긴 해도 회사를 다닐 수 있는 상태인 게 어디냐며, 스스로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그 정도만 해도 충분히 행복한 거라고. 과거의 많이 아팠던 내 자신이 지금 내 자신을 봐도 똑같은 말을 할 것이다. 평균보다 자주, 많이 아프다고 해서 내 삶에 즐거움이 아예 없었던 것도 아니다. 좋은 순간들, 아름다운 추억은 분명히 있었다. 발전의 기쁨을 느낀 순간 역시 있었다. 그게 최근 몇달간 없었다고 해서, 내 삶이 온전히 의미가 없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지금 이 순간은 너무 지쳤다는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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