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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 버리기] 호더, 저장강박, 아무것도 못 버리는 사람, 선현경의 "날마다 하나씩 버리기" 본문

Trivia : 일상의 조각들

[물건 버리기] 호더, 저장강박, 아무것도 못 버리는 사람, 선현경의 "날마다 하나씩 버리기"

mooncake 2019. 4. 23. 18:00

나에겐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 중 하나가 "물건 버리기"다.

 

한발자국만 떨어져 생각해보면, 이 세상을 살아가며 마주하는 고난이 한두가지가 아닌데,

거기에 비하면 물건 버리는 것쯤이야 얼마나 쉬운 일인가?

 

그런데 막상 마음 먹고 물건을 정리하려고 하면 그 어느것 하나 버리기 쉬운 게 없었다.

수집 취미도 다양하게 갖고 있으니 가족수 대비 넓은 집에 살고 있어도 집은 온갖 물건들로 넘쳐났다.

미니멀리즘이 대대적으로 유행하기 전부터 관련 서적을 참 많이 읽었지만, 늘 물건 버리기는 실패로 끝나곤 했다.

그래서 한동안은 정리에 관한 책을 봐도 시큰둥하게 지나치기 일수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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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가장 최근에 읽은 물건 정리에 관한 책은 

선현경의 "날마다 하나씩 버리기(부제 : 아무것도 못 버리는 여자의 365일 1일 1폐 프로젝트)"

작가가 1년동안 매일 한개씩 버린 물건들에 대한 그림과 이야기가 적혀 있는데,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아 즐겁게 읽었다. 특히 작가가 처음 버리기 시작한 것은 다채로운 양말들인데 나도 한때 특이한 양말 수집 취미가 있었기에 더 공감이 갔다. (물건을 버리기로 해놓곤 고작 매일 양말 한켤레씩 버린 것도 나를 보는 것 같았다ㅎㅎ) 

정리법을 알려주는 책이 아닌데도 이 책을 읽고 나니까 나도 뭔가 버리고 싶단 생각이 들어, 그날 밤 20여분 정도이지만 자잘한 물건들을 몇가지 버리고 상쾌한 기분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두고두고 내용을 기억하기 위해, 인상깊었던 구절을 몇가지 발췌한다.

(연두색 글자는 나의 첨언이다)

 

P.20~21

내 물건들에는 제각각 사연이 있고 이유가 있다. 그래서 여러 번 이사하면서도 여태 버리지 못한 채 차곡차곡 모아두었다. '뭐가 아쉬워 이리 다 끌어안고 살았을까? 싶다가도 물건들을 하나씩 들여다보면 그것들이 왜 거기에 있는지가 새록새록 떠오른다. 어느 날, 내가 날마다 하나씩 버리겠다고 결심한다고 해서 그 사연과 이유가 원래 없었던 것처럼 몽땅 사라지는 것도 아닌데, 나와 함께 버텨온 물건들을 마음의 저울에 달아 버릴 것과 버리지 않을 것으로 골라낼 수 있을까? 그냥 버리기에는 자꾸 망설여진다. 버리면 모든 게 사라질까봐. 물건을 버려도 그 물건에 깃든 추억은 조금이라도 붙잡고 싶어서 글과 그림으로 기록한다. 이 작업은 망설임으로 머뭇거리는 나를 도와주는 일이기도 하다. (쓸모없지만 예쁘거나 추억이 서려 있는 물건들을 나도 그림으로 그려서 간직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대신 사진을 찍고 있기는 하지만.)

예전에 보험 아저씨에게 들었던 말이 생각난다. 새 보험으로 갈아타야 하는데 내가 좀처럼 결정을 못 내린 적이 있었다. 그때 보험 아저씨가 이렇게 한마디 했다. "보험입니다. 정 주지 마세요." 나는 그런 사람이다. 일단 무엇에든 한 번 정이 가면 쉽게 끊어지지가 않는다. 그런데 그게 정일까, 미련일까? 사람과의 사이만으로도 벅찬데 작고 사소한 것들에도 마음 쓰며 살아가자니 이 고생이다. 하지만 무엇이든 버려서 그것과 연관된 기억까지 잊힌다면 추억이 아니다. 추억이라고 착각했을 뿐이다. 추억이라면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을 테니까. 추억은 가만히 있어도 스멀스멀 밀려드는 공기와 냄새만으로 되살아난다. 바람 한 점, 풍경 한 조각에도 아무 예고 없이 문득 젖어드는 것이 추억이다. 그러니 버려도 괜찮다. (이 문단은 정말 내가 쓴 줄 알았다ㅠㅠㅠㅠ 다정도 병인 양 하여 사소한 물건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사람. 하지만 "버려서 그것과 연관된 기억까지 잊힌다면 추억이 아니"라는 작가의 말을 명심하기. 어느 순간 내 주위를 둘러보니 딱히 행복하지 않았던 시절의 물건도 못버리고 있더라. 그건 정말 아닌 것 같다. 그리고 꼭 기억해야 할 추억이라면 물건이 없어도 기억하겠지.)

 

P.44

5월 29일

<일년쯤 모든 예쁜 맥주병 뚜껑과 와인 코르크들>

주방 구석에서 꽤 크게 자리를 차지하던 유리병 두 개를 과감히 치웠다. 전부 우리가 함께 마신 맥주와 와인들. 물건은 버려져도 기억과 추억은 여기에 남길 수 있으니까 다행이다.  


P.48

생활 습관은 물건으로 바꿔지는 게 아니다. 파에야 냄비를 사도 파에야를 날마다 만들어 먹지는 않는다. 심지어 이상하게 나는 더 안 해먹게 된다. 이렇게 내가 물건들을 버리는 이유는 이제부터라도 버릴 일이 없는 물건들만 가지고 살기 위함이기도 하다. 한 가지를 버리고 새로운 쓰레기를 들이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퓌에슈는 버리는 일을 최대한 피하려면 물건을 다르게 생각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우리는 끝까지 책임질 수 있도록 수리와 유지가 가능한 물건들을 만들어야 한다고, 오래 유지하는 관계의 소중함을 느껴야 한다고 말이다. 


P.98

대체 이런 것들을 예전에는 어찌 그리 천연덕스럽게 걸치고 다녔을까? 내 눈에는 여전히 예뻐 보이지만 몸에 걸치는 순간 나를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것들, 그리고 한때는 설레였지만 이제 아무 감흥도 일으키지 않는 것들. 요즘 내가 버리고 있는 물건들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람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변할 수 밖에 없구나. (지금은 별로 안좋아하는데도 예전에 열렬히 좋아했던 마음 때문에 버리지 못하는 물건들도 많다. 찻잔이라던가 장난감이라던가 인형이 여기에 속한다. 현실적으로 정리가 어렵기도 하고. 비싸게 주고 샀으니 그냥 버릴 수는 없는데, 일일이 중고시장에 내놓아 새 주인을 찾아주는 것도 너무 피곤한 일이라서...)


P.122

8월 28일

<뚜껑을 컵으로 쓸 수 있는 유리 물병>

한때 좀 사용하다가 물을 많이 마시는 우리 집 식구들에게는 너무 작아 식기장에 다시 들여놓은 물병. 깨끗하게 닦아 놓으니 예쁘네. 이 물병처럼 언젠가 필요한 떄를 위해 대비하고 있는 대기조 물건들로 모든 수납장이 터질 것만 같다. 더 이상 요긴하게 쓰일 때는 마냥 기다리라고만 할 수는 없다. (아마 대부분이 이 사유로 물건을 잘 못버리지 않을까. 언젠가는 요긴하게 쓰일 것 같은 물건들. 그러나 그 때를 기다리기엔 인생은 너무 짧고, 매일같이 시장에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물건도 참 많다)


P.158

날마다 하나씩 버리기 시작한 지 여섯 달쯤, 내 일상에 달라진 것이 몇 가지 있다. 일단 소비를 최대한 절제하고 있으며, 뭔가를 사야 할 때는 아주 신중해진다. 곧 다시 버려질 물건을 사들이는 일은 없어야 하니까 몇 번씩 가늠한다. 새로 사지 않고도 집 안에 그것을 대체할 만한 다른 물건이 있지는 않은지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그러고도 꼭 필요하다면 견고하고 질 좋은 물건을 찾는다. 여러 해가 지나도 고쳐 쓸 가치가 있어야 한다.

(중략)

알렉산더 본 쇤부르크의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법을 읽다 보면 '자발적 가난'이라는 말이 나온다. 지구 자원이 바닥나고 있는 시대에 가난은 우리 모두가 받아들여야 하는 운명과 같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오히려 가난을 반갑게 맞이해 함께 놀 수 있는 친구로 여기라고 쇤부르크는 말한다. 정신적으로 빈곤한 가난한 부자가 아니라 정신이 건강한 부유한 빈자가 되라고, 삶은 물질로 풍성해지는 것이 아니라고 말이다. 물욕을 과감히 떨쳐내는 경험은 색다른 즐거움을 안겨준다. (소극적 미니멀리즘이랄까, 물건을 못버리겠다면 새로 사는 물건이라도 줄이자,가 최근 몇년간 나의 모토였다. 그래서 그나마 이만한 것 같다는 위안도 슬쩍 가져본다. 몇년동안 소비를 절제 안했다면 지금 훨씬 더 절망적이었을 것.)


P.191

내가 소비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선택하길 강요당한 것 같다. 소비 산업의 노예로 살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지갑을 마구 열어 쉽게 사들인 것은 그만큼 버려지기도 쉽다 지갑을 열 때는 한번 더 생각하자. 돈도 문제이지만 그로 인해 양산되는 쓰레기가 더 문제이다. 이런 식으로 살다가는 언젠가 내가 버린 쓰레기 더미에 깔려 죽음을 맞을지도 모른다. 

 

P.304

사람들에게는 두 가지 부류의 물건이 있다. 지금 당장 버릴 물건과 언젠가는 버려질 물건. 누구도 죽음 너머로 물건을 가져갈 수 없다. 모든 물건이 이토록 다 부질없는데도 왜 그리 많은 물건들을 싸안고 스스로 족쇄를 채워 가고 싶은 곳에도 못 갈까?


P.313

3월 8일

<에밀리 더 스트레인지 가죽 장지갑>

딸이 초등학교 때 사랑해 마지않아 딸 핑계로 마구 구입했던 에밀리 제품들이 아직 남아 있다. 에밀리 가방은 제작년 벼룩시장에 기증했는데, 딸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해줘 이 장지갑은 그때 함께 내놓지 못했다. 여전히 새 것이다. 다른 사람이 기분 좋게 쓸 수 있을 때 내놓자. 

 

 

물론 이 책을 읽고도 당일만 반짝+_+했을 뿐 물건 버리기 의욕은 다시 감소하였지만(...핑계는 참 많다. 피곤, 질병, 바쁨 등등등)

결심이 하루를 못넘긴다면 매일매일 다시 결심하는 수 밖에^^

 

 

그리고 개인적인 참고용으로 덧붙이는 글들

 

"집안 정리, 물건 버리는데도 순서가 있다" (https://news.joins.com/article/22695758)

곤도 마리에의 말에 따르면 ▷의류 ▷책 ▷서류 ▷소품 ▷추억이 있는 물건의 순으로 정리를 하는 것이 효율적이고

그 중에서도 의류는 상의→하의→아우터→양말→속옷→가방→액세서리→신발의 순서로 하면 된다고.

 

"시리즈 : for simple life"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7219118&memberNo=15265622)

물건이 줄어들면 좋은 점

- 잡념과 물건의 양은 비례한다고 합니다. 집안이 물건으로 넘쳐서 늘 잡다한 물건이 보이는 환경에 있으면 필요 없는 온갖 정보가 머릿속까지 점령해서 답답해집니다. 왠지 모르게 조급해지고 늘 뭔가에 쫓기고 있는 느낌이 들지요.
더러운 방에서 살았을 때는 그런 잡념에 쫓겨서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정말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잘 몰랐습니다. 마치 안갯속에 있는 것처럼 마음이 늘 갑갑하고 짜증스러웠어요. 그래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귀엽고 싼 물건을 계속 사들이는 악순환에 빠졌습니다.
물건을 줄이고 깔끔한 방에서 살게 되면서 머릿속이 개운하게 정리되고 마음의 안정을 찾았습니다. ‘내 인생에 물건은 그다지 필요 없다. 깨끗한 공간에서 가족과 느긋하게 일상을 즐기고 싶다’, ‘일상에 대한 생각이나 아이디어를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즉어도 못 버리는 사람을 위한 버리는 기술" (https://news.joins.com/article/9413059)

- 졸업 후 한 번도 보지 않은 전공 서적, 날씬했을 때 입었던 옷, 내 취향이 아닌 선물, 1년 동안 한 번도 쓰지 않은 물건, 입으면 불편한 옷, 읽다가 포기한 책, 안 쓰는 볼펜, 무겁거나 불편해서 사용하지 않는 청소용품, 누군가에게 주거나 팔려고 꺼내두고 방치한 물건은 무조건 버려라.

- 책 정리할 때 역시 책장에서 전부 책을 꺼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일일이 만져보고 설렘이 있는 책만을 취한다. 선별 작업 중에 내용은 보지 마라. 책을 읽게 되면 설렘이 아니라 필요성으로 정리하기 때문이다. 또 언젠가 읽으려고 분류한 책은 과감히 버려라. 그 언젠가는 영원히 오지 않는다.

- 나의 취향과 멀어 상자째 보관하거나 한 번 쓰고 그대로 방치된 선물받은 물건은 과감히 떠나보내라. 선물은 어차피 물건 자체보다 마음의 표현이다. 받은 순간 설렘을 준 것에 감사하고 그 후에는 떠나보내는 것이 선물한 사람을 위해서도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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