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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디야 애플망고빙수와 소파 방정환 선생의 멋진 수필 본문

먹고 다닌 기록

이디야 애플망고빙수와 소파 방정환 선생의 멋진 수필

mooncake 2019. 8. 30. 18:00



이디야에서 먹은 애플망고빙수. 분명 처음 받았을 땐 생각보다 양이 많아 다 못먹을 줄 알았는데, 두 명이서 남김없이 싹싹 먹어치웠다 ㅎㅎ


가격은 9,800원. 이디야는 자주 이용하는 커피체인이 아니라 빙수는 처음 먹어봤는데 가격 대비 양과 맛, 모두 괜찮았다. 원래는 밀탑 빙수가 생각났지만 현대백화점까지 가기 귀찮아 집 앞 이디야에 갔는데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오늘 갑자기 빙수를 먹게 된 건 ​1929년 여름 잡지 “별건곤”에 실린 소파 방정환 선생의 빙수에 대한 수필 ​때문이다. 글을 읽고 나니 자꾸만 빙수가 땡겼다. 빙수에 대한 애정과 덕력이 뿜어져나오는 글 자체도 참 재밌지만, 빙수의 맛, 가게 인테리어에 대한 세세한 평은 사용하는 어휘만 조금 다를 뿐 요즘 사람들의 맛집 리뷰와 크게 다르지 않아 신기했다. 무려 90년전, 일제시대에 쓰여진 글인데도 말이다! 이런 글을 볼때마다 인류의 삶에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 같지만, 본질적으로는 사람 사는 건 어느 시대나 크게 다르지 않구나...란 생각이 든다.

대체 어떤 글이길래 빙수가 먹고싶어졌는지 궁금할 분들을 위해, 아래에 방정환 선생의 글을 첨부한다.


기왓장이 타고 땅바닥이 갈라지는 듯 싶은 여름 낮에 시커먼 구름이 햇볕 위에 그늘을 던지고 몇 줄기 소낙비가 땅바닥을 두드려 주었으면 적이 살맛이 있으련만 그것이 날마다 바랄 수 없는 것이라 소낙비 찾는 마음으로 여름 사람은 얼음집을 찾아드는 것이다.

에쓰 꾸리잇! 에이쓰 꾸리잇!
얼마나 서늘한 소리냐. 바작바작 타드는 거리에 고마운 서늘한 맛을 뿌리고 다니는 그 소리, 먼지나는 거리에 물 뿌리고 가는 자동차와 같이, 책상 위 어항 속에 헤엄치는 금붕어같이 서늘한 맛을 던져주고 다니는 그 목소리의 임자에게 사먹든지 안 사먹든지 도회지에 사는 시민은 감사해야 한다.

그러나 얼음의 얼음 맛은 아이스크림보다도, 밀크 셰이크보다도 써억써억 갈아주는 '빙수'에 있는 것이다.
찬 기운이 연기같이 피어오르는 얼음덩이를 물 젖은 행주에 싸쥐는 것만 보아도 냉수에 두 발을 담그는 것처럼 시원하지만 써억써억 소리를 내면서 눈발같은 얼음이 흩어져내리는 것을 보기만 해도 이마의 땀쯤은 사라진다.

눈이 부시게 하얀 얼음 위에 유리같이 맑게 붉은 딸깃물이 국물을 지울 것처럼 젖어있는 놈을 어느 때까지든지 들여다보고만 있어도 시원할 것 같은데. 그 새빨간 데를 한 술 떠서 혀 위에 살짝 올려놓아 보라.
달콤한 찬 전기가 혀끝을 통하여 금세 등덜미로 쪼르르르 달음질해 퍼져가는 것을 눈으로 보는 것처럼 분명히 알 것이다.
빙수에는 바나나 물이나 오렌지 물을 쳐 먹는 이가 있지만 얼음 맛을 정말 고맙게 하는 것은 새빨간 딸깃물이다. 사랑하는 이의 보드라운 혀끝 맛 같은 맛을 얼음에 채운 맛! 옳다. 그 맛이다.

그냥 전신이 녹아 아스러지는 것같이 상긋하고도 보드럽고도 달콤한 맛이니 어리광부리는 아기처럼 딸기라는 얼음물에 혀끝을 가만히 담그고 두 눈을 스르르 감는 사람, 그가 참말 빙수 맛을 향락할 줄 아는 사람이다.

경성(京城)안에서 조선 사람의 빙수 집 치고 제일 잘 갈아주는 집은 내가 아는 범위에서는 종로 광충교(廣忠校) 옆에 있는 환대(丸大)상점이라는 조그만 빙수점이다. 얼음을 곱게 갈고 딸깃물을 아끼지 않는 것으로 분명히 이 집이 제일이다.
안국동 네거리 문신당 서점 위층에 있는 집도 딸깃물을 상당히 쳐주지만 그 집은 얼음이 곱게 갈리지를 않는다.
별궁(別宮) 모통이의 백진당 위층도 좌석이 깨끗하나 얼음이 곱기로는 이 집을 따르지 못한다.

얼음은 갈아서 꼭꼭 뭉쳐도 안 된다.
얼음발이 굵어서 싸라기를 혀에 대는 것 같아서는 더구나 못 쓴다. 겨울에 함박같이 쏟아지는 눈발을 혓바닥 위에 받는 것같이 고와야 한다.
길거리에서 파는 솜사탕 같아야 한다.
뚝―떠서 혀 위에 놓으면 아무 것도 놓이는 것이 없이 서늘한 기운만, 달콤한 맛만 혀 속으로 스며드러서 전기 통하듯이 가슴으로 배로 등덜미로 팍 퍼져가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그 시원한 맛이 목덜미를 식히는 머리 뒤통수로 올라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에 옷을 적시던 땀이 소문 없이 사라지는 것이다.

시장하지 않은 사람이 빙수 집에서 지당가위나 밥풀과자를 먹는 것은 결국 얼음맛을 향락할 줄 모르는 소학생이거나 시골서 처음 온 학생이다.
얼음 맛에 부족이 있거나 아이스크림보다 못한 것같이 생각나는 사람이 있으면 빙수 위에 달걀 한 개를 깨뜨려 저어 먹으면 족하다. 딸기 맛이 감해지나까 아무나 그럴 일은 못되지만…

효자동 꼭대기나 서대문 밖 모화관(慕華館)으로 가면 우박 같은 얼음 위에 노랑물 파란물 빨강물을 나란히 쳐서 색동 빙수를 만들어주는 집이 몇 집 있으니, 이것은 내가 먹는 것 아니라 해도 가엾어 보이는 짓이다.
삼청동 올라가는 소격동 길에 야트막한 초가집에서 딸깃물도 아끼지 않지만 건포도 네다섯 개를 얹어주는 것은 싫지 않은 짓이다.
그리고 때려주고 싶게 미운 것은 남대문 밖 봉래동 하고, 동대문 턱에 있는 빙수 집에서 딸깃물에 맹물을 타서 부어주는 것 하고, 적선동 신작로 근처 집에서 누런 설탕을 콩알처럼 덩어리 진 채로 넣어주는 것이다.

빙수 집은 그저 서늘하게 꾸며야 한다. 싸리로 울타리를 짓는 것도 깨끗한 발을 치는 것도 모두 그 때문이다. 조선 사람의 빙수 집이 자본이 없어서 초가집 두어 간 방인 것은 할 수 없는 일이라 하지만 안국동 네 거리나 백진당 위층 같이 좁지 않은 집에서 상위에 물건 궤짝을 놓아두거나 다 마른 나뭇조각을 놓아두는 것은 무슨 까닭이며, 마룻바닥에 물 한 방울 못 뿌리는 것은 무슨 생각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조그만 빙수 집이 그 무더운 뻘건 헝겊을 둘러치는 것은 무슨 고집이며 상위에 파리 잡는 끈끈이 약을 놓아두는 것은 어쩐 하이칼라인지 짐작 못할 일이다.




덧) 방정환 선생의 수필을 읽고 나니 나도 딸기빙수를 먹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고민되었으나 결국은 망고^^



냉동망고빙수를 먹다보니 작년 대만에서 먹은 생망고빙수가 그리워졌다. 하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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