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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돌아다니기

도쿄 카페 바흐 (미나미센쥬 / 히가시아사쿠사 / 산야 카페)

mooncake 2023. 5. 1. 17:00

카페 바흐에 가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일본 커피 문화에 큰 영향을 미친 역사 깊은 카페라는 것도 방문한 이후에서야 알았다. 발단은, 아침에 시바 공원에 가기 위해서 호텔에서 나왔는데 순간 긴자선 입구만 보이고, 아사쿠사선 아사쿠사역 입구가 어디인지 생각이 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건 정말 말이 안되는데, 왜냐면 난 아사쿠사에 정말 많이 왔고, 마지막으로 도쿄에 왔을때도 아사쿠사에서 묵었고, 심지어 전날 공항 철도에서 내려서도 아사쿠사선 출구를 이용했기 때문이다. 아마 잠 설침 + 잠 덜깸 + 이른 아침부터 이미 아사쿠사를 점령한 인파에 혼이 나간 탓이었으리라...
 
그래서 흥칫뿡하고는 막 발걸음 닫는대로 걷다가 구글맵을 들여다보았더니, 내 위치에서 18분 정도 걸리는 '카페 바흐'라는 곳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운명처럼. 평점도 높고, 무엇보다 카페 바흐의 전용 커피팟 사진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다른 관광 스팟이 없는 상태에서의 도보 18분은 다소 애매한 거리이기는 했는데, 여행 초반이라 다리가 아프지 않았으니 가능했다.
 
카페 바흐로 가는 길에 구글맵에 본룡원(마쓰치야마 성천)이라는 사원이 보여 그곳에도 잠시 들리고, 또 아사쿠사 모스크도 있길래 이태원에 있는 모스크 같은 건 줄 알고 기대했는데 그냥 일반적인 건물이라 실망하기도 하면서 카페 바흐를 향해 걸어갔다. 그런데 카페 바흐를 향해 걷고 있자니, 옛날 모습이 많이 남아 있는 아사쿠사에서 출발한 것임에도, 타임 워프를 한 것마냥 "더더더 낙후되어 보이는" 건너편 동네 풍경이 보여 도쿄 한복판에 아직도 이렇게까지 낡은 동네가 있나 싶었는데, 예전부터 빈민층이나 외국인 일용노동자들이 많이 살던 “산야”라는 지역이었던 것 같다. 어느 도시나 슬럼가는 있지만 괜히 씁쓸했다. 구글맵에선 18분이었지만, 중간에 본룡원에 들리기도 했고, 특별히 볼 것 없는 지역을 계속 걸어가다보니 꽤 지친 느낌이었다. 그래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라며 스스로를 다독이고 있었는데
 


 
 
 

일요일 아침부터 이 대기줄!
실화입니까
 
참고로 나는 원래 줄서서 식사를 하는 일이 거의 없는 사람이다. 줄서는 거 너무 싫어해서, 이 세상에 줄 설 정도로 맛있는 음식은 거의 없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그런데... 카페 바흐는 좀 애매했다.
주변에 다른 카페가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제일 가까운 전철인 미나미센쥬역까지도 도보 12분. 답이 나오지 않았다. 대책을 고민하며 일단 줄을 섰다. 전날 하루종일 비가 온 것과는 대비되게 강렬한 햇살이 나의 눈을 찔렀다. (날씨가 참 오락가락한 날이었다. 오후엔 또 소나기와 뇌우에 시달렸댔지)
 


 
 
 

30분 정도 기다리니 실내 대기석으로 안내되었고
 
 


 
 

머지 않아, 커피 내리는 모습을 직관할 수 있는 1인석으로 안내되었다.

다양한 커피들이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는데, 사실 메뉴판을 보기 전에도 이미 나의 커피는 정해져 있었다. 전용 커피팟 사진에 매료되어 이 곳까지 걸어 온 것이기에, Bach blend를 주문했다. (+아니 근데 여담인데 몇년 사이 도쿄 사람들이 영어를 잘하게 됐더라! 전에는 어쩔 수 없이 생존 일본어를 써야 됐는데 이젠 제법 영어가 통하구, 또 커피 주문할때도 전엔 메뉴판 가르키며 주문하는데도 Special blend를 Special blend라 하지 못하고 스페샤루 브렌도라고 해야지만 알아들었는데 이젠 영어 원어 발음대로 주문해도 다 알아들음! 코로나 이후 첫 일본 방문이라 일본어 다 까먹은 나에겐 얼마나 다행이던지... 

 
 
 
 
 

디저트는 메뉴판에 모든 종류가 다 나와 있는 게 아니라서, 곁눈질로 옆쪽의 쇼케이스를 매의 눈으로 훑어본 뒤 "이치고 타르트"를 주문했다. 
카페 바흐의 모든 직원들이 손이 굉장히 빠르고 동작이 민첩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커피를 핸드드립으로 내리다보니 커피가 나오는데 꽤 시간이 걸리는 편이었다. 그래서 커피가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메뉴판의 Tools 부분을 찍어놓은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었더니 직원분이 편하게 보라며 다시 메뉴판을 가져다 주셨다. 와 진짜 센스!!!! 그런데 결국 카페 바흐의 빌레로이 앤 보흐 전용잔은 사지 않았다. 왜냐.. 현재 매장에서 사용 중인 제품과 디자인이 살짝 달랐어요. 매장에서 사용 중인 거랑 똑같이 생겼으면 무조건 샀을텐데 아쉽.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 알게 된 사실인데 카페 바흐에서 꼭 사야했던 건 전용잔보다도 전용 드리퍼였다! 저게 카페 바흐에서 자체 개발한건데 커피가 아주 맛있게 내려진다고 한다!!!!! 혹시 담에 카페 바흐 가시는 분 있으면 전용 드리퍼 꼭 사서 후기 좀!!!!!
+ 이거 또 여담인데 저 얼마전에 독일 빌레로이 운트 보흐에서 배당금 입금됨 히히히. 다른 회사에서 배당금 받을떄보다 더 신남. 물론 워낙 소량 갖고 있어서 금액은 정말 얼마 안됩니다. 주식을 상당히 많이 갖고 있고 배당금도 꽤 되어서 남들한테 얘기하는 거겠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던데 저는 그렇지 않아요. (히히)
 
 


 
 
 

도쿄는 1인석이 잘 갖춰져 있는 것이 장점이지만, 무조건 1인석에 안내된다는 점이 아쉬운 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카페 바흐는 1인석에 앉는 게 개이득임. 왜냐면 직원들이, 특히 카페 마스터가 커피 내리는 모습을 구경할 수 있거든요. 뜨거운 물로 커피잔과 커피주전자 미리 데울 때 다들 손이 얼마나 빠르고 민첩하게 착착 움직이는지. 여기는 손 느린 알바는 고용하지 않는 것 같다(...)
 
 
 


 
 

다만 이 역시 나중에야 안 사실인데 카페 내 촬영은 금지되어 있다고 한다. 특히 일하는 모습을 찍으면 안됨. 당연한 일이죠 네... 그런데도 왜 이 사진을 올렸냐.. 핸드폰으로 찍은 것 치고 사진이 잘 나와서요!!!! 장인의 모습 멋지지 않아요?

* 그리고 물론 본인의 커피와, 로스팅 기계 등을 찍는 건 또 괜찮다고 한다.

 
 

 
 
 

찬장 맨 위의 테라코타 밀크저그가 예뻐서 줌으로 땡겨서 사진 찍다가 이 시점에서 직원분에게 촬영은 안된다는 얘기를 들었다. 대신 카페 바흐의 모습이 담긴 작은 인쇄물을 가져다 주셨다. 단호하지만 친절한 분이었음.
 
 


 
 

긴 기다림 끝에 카페 바흐의 바흐 블렌드가 나왔다.
구글맵 후기에서 저 전용 커피팟 사진에 낚여 여기까지 먼 길을 걸어왔다. 그러고보면 여러분... 제 주변의 J들은 저보고 어떻게 그렇게 여행하냐고 신기하다고 하는데, 물론 저 역시 무계획+즉홍적으로 다니는 게 힘들고 피곤할 떄도 많지만, 그래도 게획이 없는 극P라서 이런 카페를 우연히 발견하는 것은 나름 장점이지 않습니까?ㅎㅎ
 
 
 

 
 
 

그리고 커피와 같이 주문한 딸기 타르트도 나왔다.
 
 
 

 
 

커피는 1,160엔, 딸기 타르트는 700엔 = 합계 1,860엔이었다. 
 


 
 
 

바흐 블렌드
역시 맛있었다!!!!!!!!
이게 벌써 또 2주 지나서 무슨 맛이었냐고 하면 구체적인 묘사가 어려운데(...)
균형이 잡혀 있으면서도 진하고 강렬한 맛?
커피란 이래야지!라는 생각이 드는 맛.
 
전날 아사쿠사 후나와의 커피도 그랬고, 다음날 긴자의 츠바키야 커피도 그랬고, 세 곳의 커피가 추출 방식이 다른데도 결이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딱 내가 좋아하는 커피 맛.
 

 

 
 
 

커피와 타르트의 전체 샷 다시 한번 ^^
 
 



 

내가 또 감탄한 게 이 딸기 타르트였는데
(1) 많이 달지 않고, 두 종류의 크림과 딸기 조합이 잘 어우러짐
(2) 타르트지가 깔끔하게 잘 잘라짐 
이 "많이 달지 않고"가 비단 한국인들 뿐만 아니라, 한중일 동아시아인들의 디저트에 대한 공통적인 최대 칭찬이라는 점이, 서양인들 눈에는 아이러니하게 보이는 경우가 있는 모양인데, 그게 서양인들에 비해 한참 모자란 아시아인들의 췌장 기능때문이라는 썰이 있는 것 아십니까? 서양인들만큼 단 걸 먹으면 훨씬 더 빨리 당뇨병이 찾아온다는 슬픈 사실 ㅠ.ㅠ 아마 아시아인들이 "많이 달지 않아 맛있어요"를 외치는 것은 생존 본능일지도 모른다고 한다. 여튼 그러한 관점에서 보았을 때, 적당한 당도를 지닌 맛있는 타르트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감탄한 것은 타르트가 잘 잘라짐. 그렇다고 흐물한 것도 아님. 모양은 잘 유지하고 있는데 타르트를 잘라서 섭취하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다. 우리나라는 이런 종류의 타르트를 주문하면 절반 이상이 타르트지와 사생 결단을 내야 하거든요??? 힘을 주어 자르다가 타르트가 완전히 와해되거나, 운이 없는 경우 타르트 조각이 날아가기도 하고, 접시가 들썩인다거나, 동행과 나누어 먹기 곤란한 경우가 많은데 그래서 그게 늘 궁금했다. 이 사람들은 이 타르트를 먹어보고 파는 게 맞나? 타르트는 쉽게 잘라 먹도록 만들기가 어려운가? 아니 근데 이렇게 모양이 망가지지 않으면서 우아하고 가볍게 잘라 먹을 수 있는데 우리나라 카페와 베이커리들은 왜...???
이 역시 나중에 알고보니 카페 바흐는 커피 명가이기만 한 게 아니라, 또 커피와 잘 어울리는 디저트를 발굴하는데도 진심이어서, 국내에도 카페 바흐의 디저트 서적 번역본이 나와 있을 정도로, 디저트에도 오랜 시간 신경을 많이 써왔다고 한다. 타르트 가격이 크기에 비해 좀 비싼가? 싶었는데 먹어보니 너무나 만족이라 돈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마지막 잔은 크림과 설탕을 넣어 달콤하고 부드럽게 마무리했다. 우연히 방문했는데 너무나 만족했던 가게였다. 
다만 위치가 살짝 애매하다. 우에노나 아사쿠사 쪽에서 버스를 타고 오던지, 아니면 미나미센쥬 역에서 12분 정도 걸어야 한다. (나도 돌아갈 땐 우에노까지 버스를 탔다) 카페 투어를 위해 방문한 게 아니라면 일정에 집어넣기가 까다로울 수 있다. 게다가 일요일 아침부터 줄을 서는 걸 보면 기다릴 각오도 해야한다. 제일 가까운 전철역이 미나미센쥬라서인지 보통 미나미센쥬 카페로 많이 소개되던데, 미나미센쥬는 아라카와구이고, 이곳의 주소는 타이토구에 속하니까 제목에 히가시아사쿠사, 산야라고 추가하여 제목이 길어졌다. 내가 아사쿠사 쪽에서 방문하기도 했고ㅎ
 
여튼 이 주변에 가까운 카페가 하나라도 더 있었으면 나는 이 곳을 포기하고 그 카페 쪽에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다른 카페가 없는 덕분에(?) 카페 바흐에서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땡볕에 아침부터 줄을 서서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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