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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신주쿠 재즈킷사 더그 Dug 본문

외국 돌아다니기/2024.12 Tokyo

도쿄 신주쿠 재즈킷사 더그 Dug

mooncake 2025. 4. 21. 15:00

여행 중 아주 특별한 장소가 아닌데도 마음 속 울림이 오래 남는 곳이 있다.

신주쿠 재즈킷사 더그.

작년 12월 도쿄 여행 때 재즈 클럽을 못간지라, 아쉬운 대로 재즈 킷사(=재즈 카페)라도 찾아나섰다. 가장 유력한 후보는 진보초의 재즈 빅보이와 신주쿠의 더그였는데 결국 더그를 택했다. (시간이 허락해준다면 둘다 가고 싶었지만)
 
1960년대부터 운영해 온, 과거 무라카미 하루키가 단골이었다던 재즈 카페 더그Dug는 그 자체로서 역사를 담뿍 담고 있는 멋진 장소였다.
좋은 음악, 친절하고 정중한 직원들, 더그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면 80년대로 타임워프할 것 같은 분위기, 거기에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의외로 너무 맛있었던 샌드위치까지.

다만 더그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하나 있었다. 흡연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고 지하에 위치해 있어 공기가 너무 좋지 않았다. 흡연석과 비흡연석이 나뉘어져 있기는 하나 워낙 작은 가게여서 거의 의미는 없었다. 더그에 들어가는 순간 이미 이건 아니다 싶었지만 새로운 장소에 대한 호기심을 이길 수는 없었다. 내가 올해 1~3월 각종 호흡기 질환에서 벗어나지 못한 건 더그 탓도 20% 정도는 있지 않나 의심 중이다ㅎㅎ

 
 

 
2024.12.24. 오후 네시 반
신주쿠 재즈 킷사 더그 앞에 드디어 도착.
* 크리스마스 이브날이라 1층 카페에서 케이크를 팔고 있어서 더그 입구의 정면 사진은 찍지 못했다.

 
 

 
춥고 힘들어서 손이 떨렸는지 사진이 흔들림 ㅎㅎ
Dug는 재즈 카페와 재즈 바를 겸하고 있고, 내가 갔을때는 아직 Cafe Time이었다.
 

 

 
계단 앞자리 쪽에 위치한 테이블을 안내받았다. 하지만 위에서도 말했듯 흡연석/비흡연석 구분이 크게 의미있는 건 아니다. 어차피 작은 공간이라 비흡연석에 앉아 있어도 담배 냄새는 매우 매우 심했다.
 
또 의외였던 건, 더그를 채우고 있던 음악의 볼륨이 생각보다 작고 잔잔했다는 것이다. 재즈킷사라고 하면 일단 매장에 들어서는 순간 음향과 볼륨이 압도적일 줄 알았는데 실망스러울 정도였다. 그러나 더그에서 시간을 보내댜보니, 매장에 사람이 많은데도 어떤 곡이든간에 음 하나하나가 선명하게 잘 들리는 것이 신기했다. 오랜 시간 쌓여온 최상의 셋팅일지도 모른다.
(+옆에서 계속 음료 만드는 소리가 났는데 이것도 음악 듣는데 별로 거슬리지 않았다. 잘 짜여진 ASMR처럼)

 
 

 
크리스마스 이브인데도 더그에는 의외로 혼자 온 사람들이 많았다.
-내 옆의 옷을 예쁘게 차려 입은 20대 아가씨는 혼자 와인을 마시며 작은 책을 읽고 있었고
-내 앞쪽 테이블도 따로따로 와서 좌석이 없어 합석을 한 분들이었는데, 재즈를 들으며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재즈에는 관심이 없고, 술을 마시기 위해 우루루 몰려온 한국 20대 남자분들도 있었다. 

재즈 킷사는 음악 감상이 주목적이라 조용히 해야 하는 곳이 더 많을 것 같은데, 더그는 어떠한 형태의 손님도 다 수용하는 것 같았다. 젊은 날의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 곳에서 때로는 혼자 와 재즈를 들으며 책을 읽고, 때로는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때로는 연인과 데이트를 했을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
 
 

 
점심을 제대로 못먹었기 때문에 비엔나커피(였나??)와 샌드위치를 주문했다.
커피는 750엔, 샌드위치는 450엔 정도로 커피가 오히려 더 비쌌는데, 음료에는 일종의 자릿값 개념이  붙어 있는지도 모른다.


 
커피는 12월말 도쿄의 차가운 바람에 지친 몸을 따듯하게 녹여주었다. DUG 로고가 새겨진 커피잔이 마음에 들었는데 따로 판매는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컵에 26주년 기념이라 새겨진 것을 보니 이 컵도 90년대에 만들어진 것? 그러기에는 또 그 정도로 사용감이 느껴지지는 않는데...


 
그리고 샌드위치
저렴한 가격이라 별로 기대 안했는데 너무 실하고 너무 맛있었다. 의외로 음식에 진심인 가게였나?!



 
바삭하고 부드러운 빵
신선한 야채
맛있는 치즈까지👍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제대로 만드는 건데?ㅎㅎ
커피와 맛있는 샌드위치, 음악 덕분에 몸과 마음이 모두 녹아내렸다.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4,000원짜리 샌드위치에 후추까지 내어주는 섬세함!



 
더그 흡연석 쪽은 이렇게 생겼다. 화장실 다녀오다 한 컷 찍음. 더그에서 듣는 음악들이 너무 좋아서 자리를 떠나고 싶지 않았지만 담배 연기에 목이 너무 아파서 더이상 견딜 수 없었고 결국 한시간여 만에 더그를 나와야만 했다.



 
내가 앉았던 자리의 뒤쪽
역사와 세월이 느껴진다.



 
계산하고 나오는 길에 다시 한 컷.
 
더그에 가기 전에는 과연, 다양한 음원을 너무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지금, 더이상 재즈 카페가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더그에서 보낸 짧은 시간은 마치 다른 시간대 속에서 지내다 온 듯, 꿈을 꾸는 듯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너무 좋았고, 또 가고 싶지만, 담배 연기 때문에 또 갈 수 있을지 자신은 없다. 일단 도쿄의 다른 재즈킷사들 한바퀴 돌고, 다시 가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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