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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 도둑시장에서 구입한 Myott 수프 그릇 본문

찻잔과 오래된 물건

리스본 도둑시장에서 구입한 Myott 수프 그릇

mooncake 2014. 7. 27. 16:28

난 물건값 흥정에는 영 소질이 없다. 아니, 소질이 없다기 보다는 하고 싶지가 않다. 이스탄불 그랜드 바자르처럼 "흥정이 필수"인 시장에서는 아예 물건을 구입할 의욕 자체가 들지 않는다. 안그래도 피곤한 일이 가득한 인생, 왜 물건을 사면서까지 밀당을 해야 하냔 말이지.

 

리스본 도둑시장 역시 흥정이 필요한 곳이라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봤는데, 그 애기가 떠올랐을때는 이미 물건을 몇개 사버린 뒤였다. 특히 바로 직전엔 강매 아닌 강매까지 당해서 썩 기분이 유쾌하지 않았다. 그냥 얼마냐고 물었을 뿐인데 비닐에 넣어서 손에 척 들려주는 것이 아닌가. (어딜가나 만만해보이는 얼굴의 비애) 떠밀리듯 돈을 지불하고 발걸음을 옮기는데 내가 이걸 왜 샀나 싶다. 갑자기 울컥하는 기분이 들어서 "앞으로 사는 건 꼭 깍고야 말겠어"라고 다짐했다.

 


그래서, 이 "꼭 깍고야 말겠어"라는 의욕이 충만해 있을때 사게 된 것이 바로 사진 속의 영국 Myott의 수프그릇이었다. 할머니가 처음에 8유로를 불렀는데, 7유로에 달라고 했더니 이미 엄청 싸게 주는 거라고 안된다고 하신다. 할머니랑 두어번 정도 말이 오가다가 안깍아주면 안살래요 췌!하고 몸을 돌렸더니 그제서야 7유로에 가져가라고 하신다. (이럴때만 나의 포르투갈어는 기가 막히게 유창해진다ㅋ)



그런데, Myott 수프그릇을 판 할머니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 건, 거래가 성사된 이후였다. 그릇들에 눈이 홀려 그랬는지 할머니의 굽은 등, 노화로 인해 느린 동작, 그리고 늙고 떨리는 손으로 힘들게 그릇을 포장하는 모습들은 1유로를 깍은 뒤에야 발견했다. 그릇을 넣어줄 비닐을 찾기 위해 몸을 돌리는 동작조차 힘에 겨워보였다. 뭔가 잘못했구나-라는 느낌이 들었다. 봉지를 받아쥐고 한 걸음을 내딛었을때야 그냥 1유로 더 드릴 걸 그랬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이미 앞을 향해 걷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마음이 무거워졌다. 리스본 도둑시장에는 엄청나게 많은 그릇들이 있었지만 더이상 그 그릇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도대체 1유로가 뭐라고... 노쇠한 할머니가 땡볕에 나와 그릇을 팔고 있는데 그렇게 모질게 깍아댔을까. 평소엔 더 큰 돈도 아무렇지 않게 펑펑 쓰면서 말이다. 나한텐 있으나 마나한 돈인데, 원래 잘 깍지도 않으면서 왜 그때만 유독 그랬을까. 할머니에게 너무 미안하고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 할머니의 좌판엔 수프그릇 외에도 예쁜 그릇들이 참 많았기 때문에 다시 할머니의 좌판으로 돌아가 다른 찻잔들을 살까 생각도 했으나, 어느 순간 갑자기 체력이 완전 방전되었고, 근처 공원에 앉아 쉬고 있기로 한 엄마를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한데다, 끼니때도 한참 지나 있었기 때문에 결국은 다시 돌아가지 못하고 도둑시장을 떠나야했다. 그래도 엄마와 공원에서 만나 식당을 찾으러 가는 길에 잠깐만 발길을 돌렸으면 할머니의 좌판으로 갈 수 있었을텐데 그러기엔 너무 지쳐있었다...ㅠ.ㅠ (특히 민트색과 금장으로 처리된 찻잔을 살까말까 한참 고민하다 혹시 더 마음에 드는 것들이 나타날까봐 참았는데, 후회하고 있다)

 

내 평생 리스본 도둑시장 할머니를 다시 만날 날은 오지 않겠지. 미안함을 만회할 방법이 없다. 때로 인생은 너무 짧아서, 한번 실수를 하면 돌이킬 수가 없다. 그 실수가 비록 1유로짜리 실수였다고 해도 말이다. 그러니까 애초에 왜 깍는데 소질이 없는 사람이 깍겠다고 나서가지고는....;;;



Myott 수프그릇 할머니를 생각하면 마음이 짠하고, 신중을 기한다는 명목 하에 산 게 별로 없어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 리스본 도둑시장 방문이었다. (물론 나도 내 체력이 그렇게 빨리 방전될 줄은 몰랐지. 보통은 shopping fever에 사로잡혀 쓸데없이 많이 사서 탈인데 거기선 나답지 않게 너무 안사서 탈 T.T)

수프그릇 할머니가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시기를 기원해 본다. 언젠가 또 리스본에 간다면 꼭 다시 도둑시장에서 뵐 수 있기를, 그리고 그릇 구매용 별도 짐가방을 한 개 더 가져가서 예쁜 그릇을 잔뜩 사올 수를 있기를...



(보면 볼수록 참 예쁘고 마음에 드는 미요트의 리알토 수프그릇이다. 

생산연대를 찾아보니 대략 1960~1978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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