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wanderlust

도쿄 여행(3) 아침의 아사쿠사, 야네센 산책-닛포리역 텐노지 본문

외국 돌아다니기/2018.04 Tokyo

도쿄 여행(3) 아침의 아사쿠사, 야네센 산책-닛포리역 텐노지

mooncake 2019. 4. 29. 21:20


수퍼 호텔 아사쿠사에서 조식을 배불리 먹고, 아침 9시 반 경 길거리로 나왔다.

길거리는 조용했다.



날씨가 참 좋았다. 서울보다는 확실히 온도가 높고, 선글라스를 주섬주섬 찾아 쓰게 될만큼 아침부터 햇살이 강렬했다.



코이노보리가 휘날리는 아침의 아사쿠사는 이미 축제 분위기가 가득.



아직 일정을 확정하지 않았기에 발길 닿는대로 걸었다.

대충 갓파바시 쇼핑과 야네센 산책 정도...가 머리속에 있긴 했지만, 그 어느 것도 정해진 것은 없었다.



물론 연휴가 시작되어 한껏 들뜬 현지인들과 즐거운 분위기를 만끽하며 아사쿠사를 어슬렁거리는 것은 나쁘지 않았으나,



길이 너무 붐비고 해가 뜨거워 어딘지 조용한 곳으로 숨어들고 싶어졌다.



노포가 가득한 아사쿠사의 오래된 골목 골목 누비기. 



내가 좋아하는 옛날풍 일본 카페에 들려 커피와 함께 아침식사를 먹으면 딱 좋을텐데 이미 배는 너무 부른 상태이고...



등나무덩쿨 사이로 햇살이 내리쬐는 기분 좋은 골목으로 들어갔더니

모닝음주 하시는 분들이 보인다.

인생을 즐길 줄 아는 분들이다.



연휴의 시작,

일렁이는 아침 햇살을 쪼이며

아사쿠사의 오래된 골목에서 맥주를 마시는 일은 꽤 즐거울 거야. 아마도.

.

.

.

.

.

.

일단 당초 생각대로 갓파바시 도구상점가에 가서 쇼핑을 하려고 했지만 안그래도 피곤해죽겠는데 짐까지 생기면 너무 힘들 것 같아 갓파바시를 포기하고 닛포리에 가기 위해 눈 앞에 보이는 쓰쿠바 익스프레스 아사쿠사역으로 들어갔다. 아사쿠사와 닛포리 사이를 이동할 땐 버스를 타는 게 좋은데(전철은 한번 갈아타야해서 귀찮고 버스보다 요금도 비싸다) 나는 평생 산 서울에서도 버스를 매번 잘못 타곤 하는 버스바보라 그냥 전철을 탔다... 흑흑...



아사쿠사역에서 미나미센주로 가서 JR죠반선으로 갈아타고 드디어 닛포리역에 내렸다.

닛포리.

정말 그리운 이름이다.


내가 난생 처음 일본에 가서 열흘 정도 지냈던 곳이 바로, 친구가 살고 있던 닛포리의 맨션이었다.

그때 나는 환자였다. 성치도 않은 몸으로 친구가 유학 가 있는 일본에 놀러간다고 하면 부모님이 반대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두분은 승낙하셨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아빠는 오히려 "쟤가 병이 나으려나 보다고" 희망적으로 생각하셨다고. 주치의 선생님도 대량의 약을 처방하며 길고 긴 잔소리를 늘어놓았으나 가지 말라고 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여기저기 걱정을 끼치며 일본 여행을 결정하였지만 정작 나 자신도 엄마의 우려 가득한 배웅을 받고 출국장에 들어서니 마음이 안좋았다.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상태로 면세점에서 스틸라 립글로스를 구경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웃기다ㅋㅋ 여튼 그런 상태였던지라 정작 도쿄에 가서도 많이 돌아다니진 못하고, 주로 친구네 집 다다미 바닥에 누워 뒹굴거리며 친구가 수업 마치고 오기를 기다리곤 했다. 알아 듣지도 못하는 일본 방송을 보다가, 느려터진 인터넷을 잠시 하다가, 음악을 틀어놓고 방바닥에 누워 도쿄의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할 줄 알던 요리는 에그 스크램블 뿐이라 배가 고프면 맨션 근처에 있는 오래된 가게에 가서 팥빵을 사다 먹는 정도가 나의 도쿄 일상이었다. 

지루했다. 정말 지루한 시간들이었다. 


그런데 참 신기한게 몇 년이 지나니까, 닛포리에서 할일 없이 멍때리던 나날들이 무지하게 그리워졌다.

그래서 지금도 "닛포리"라고 하면 안토니오 까를로스 조빔의 Look to the sky가 배경음으로 깔리고, 다다미방에 누워 바라본 도쿄의 여름 하늘, 어마무시하게 입체적이었던 그 하얀 구름들이 떠오르곤 한다.

여튼 "그 닛포리"는 항상 그리움의 대상이었는데, 닛포리역을 지날 때마다 감상에 젖곤 했을 뿐, 어쩐지 그 이후론 숟하게 도쿄 여행을 가면서도 닛포리에 간 일은 단 한번도 없었다.

그러다 처음으로 닛포리에 가니깐 왠지 감개 무량하고 여러가지 감정이 교차했다.

*다만, 친구네 집이 있던 동네는 니시닛포리였고 또 니시닛포리역에서도 도보 15분 이상 걸리던 곳이라 닛포리역 풍경 자체는 새로웠다는 것이 함정ㅎㅎㅎㅎ



이름만 익숙하지 풍경 자체는 새로운 닛포리역 주변이지만,

그래도 워낙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역이라서 그런지 고향에 돌아온 듯 익숙한 느낌.



일단 닛포리역 근처의 사찰인 텐노지에 들리기로 했다.



텐노지로 가는 길의 예쁘게 꾸며져 있던 집 앞.

근데 묶여 있는 강아지가 좀 불쌍했음



닛포리역에서 텐노지는 정말 가깝다. 언덕만 올라가면 거의 바로.



볼거리가 많은 사찰이라고 하기는 어려우나, 단정하고 차분한 분위기의 장소라 마음에 들었다.



텐노지의 부처님



예쁜 단풍나무



그런데말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한 일이라곤 조식 먹고,

호텔에서 쓰쿠바 익스프레스 아사쿠사역까지 걸어와서,

거기서 전철 몇정거장 타고 내려, 몇분 걸어서 텐노지까지 온 것 밖에 없는데

너무 피곤해 눈이 안떠질 지경이라는 거...


ㅠㅠㅠㅠ


참 한게 뭐 있다고 이렇게 피곤하나 싶었지만 

뭐 어쩔 수 있나

사진 속 본당 옆마루에 앉아 한참을 쉬고 또 쉬었다.



햇살은 뜨거웠지만 그늘 밑은 시원한 바람이 불어 기분이 매우 좋았다.



날씨 하나는 정말 환상적이었던 2018년 4월 29일.

그러고 보니까 딱 1년 전이다. 시간 참 빨라.



아마 집에 있는 평범한 토요일이었다면 컨디션이 너무 안좋아 있던 약속도 취소하고 하루종일 잠만 잤을 테고...

이 상태로 회사에 출근해야 하는 날이었다면 피토하는 심정으로 간신히 일하며 먹고 살기 너무 힘들다며 징징거렸을텐데

"여행"이니까 그래도 자꾸만 해지되려는 정신줄을 안간힘을 써서 붙잡고 어떻게든 돌아다녔다.


이날 하루종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한두번 간 도쿄도 아닌데 참 왜 그렇게 미련하게 돌아다녔나 싶긴 한데,

그 당시 입장에선 사실상 여행은 이틀 뿐이라 또 어쩔 수 없긴 했다.

그래도 미련한 건 미련한 거 ㅜ.ㅜ 



텐노지에서 한참을 앉아 쉬다가, 다음 장소인 아사쿠라 조소관으로 가기 위해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정말 근사했던 아사쿠라 조소관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