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lust
물건 버리기 이후 6개월 본문
(*블로그에 꾸준히 들려주시는 분들껜 이미 아는 얘기를 반복해서 죄송합니다.)
작년에 대량의 짐을 정리하기 위해 휴직까지 내고 약 3개월 동안 물건을 버렸다.
원래 그 전에도 물건 정리 중이긴 했는데 워낙 물건을 못버리는 성미에다 정리할 물건이 너무 많아 휴직이라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미니멀리즘 관련 책이나 카페 글을 보면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고 삶이 바뀌었다는 간증(ㅋㅋ) 사례가 매우 매우 많은데
내 경우, 그렇게 많은 물건을 버렸는데도 삶이 달라지지 않았고 딱히 좋은 일이 생기지도 않았다. 흥칫뿡!
(오히려, 일이 더 안풀리고 있는 느낌이다ㅜ.ㅜ 인생은 끝까지 살아봐야 안다지만...)
물론 물건 좀 내다버린다고 해서 드라마틱하게 삶이 바뀔 거라는 기대를 했던 것은 아니였다. 문득 떠올려보니 그렇다는 얘기다.
(아니면 미니멀라이프라고 하기엔 여전히 짐이 너무 많기 때문인지도. 가졌던 물건의 2/3 가량을 버리긴 했어도 여전히 물건이 많다;;;)
아무튼, 삶이 바뀌는 기적은 없었으나, 반강제적인 미니멀리즘 시도 이후 무엇이 달라졌는지 꼽아보자면
쇼핑이 눈에 띄게 줄었다.
이미 갖고 있는 물건을 예전보다 잘 활용하게 되었다.
-옷,가방,신발을 250KG 버리고 나니까 (이게 말이 250KG지, 큰 김장용 봉투 40개 이상의 분량이다. 정말 끔찍하게 많았다.) 옷 자체에 질려버려서 옷을 새로 사고 싶지 않다. 왠만한 옷은 사봤자 결국 또 쓰레기가 될 것 같다. 새 옷을 들이는 기준이 매우 엄격해졌다.
-예전엔 사놓고 까먹은 물건들이 너무 많았다. 택도 안 뗀 새 옷도 열 몇개가 나왔는데 결국 버리긴 했지만 옷은 그래도 언제든 입을 수 있는 거라 쳐도, 유통기한이 있는 물건들은 정말 한숨이 나왔다. 대랑으로 사놓고 까먹은 화장품, 의약품, 식료품 등등등. 이젠 왠만하면 물건을 쟁이지 않으려고 한다.
-찻잔과 장난감과 음반과 책 등등은 취미생활이라 많을 수 밖에 없고, 정리한 양도 한정적이었다. 하나씩 보면 완전 소중한데 어마어마한 양의 짐을 보고 있노라면 한숨만 나왔다. 남의 손에 맡길 수 없어 직접 짐을 싸느라 몇달 내내 몸과 마음이 굉장히 힘들었다. (포장이사의 의미가 없었다는...ㅠㅠ)
평생 가져온 물건들을 버리고 평생 살아온 집을 떠나는 건 너무 슬프고 힘든 일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 상실감과 트라우마가 적지 않다. 그런 무시무시한 경험을 하다보니 역시 새 물건을 사는 건 극도로 신중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미니멀리즘의 부작용도 있다.
예전처럼 물건을 쟁여놓지 않으려다보니까, 설 연휴 때 마스크, 알콜스왑, 손소독제를 추가로 구매하려다 관뒀는데,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된 지금 많이 후회하고 있다. 작년에 구입한 마스크가 현재 70장 정도, 알콜스왑은 두박스 정도 남아 있긴 하지만, 언제쯤 상황이 좋아질지 알 수 없으니... (사실 이 글을 쓰게 된 이유가 이 것 때문이다ㅋㅋ)
또 아이러니한 결론이지만, 버리는 걸 두려워하면 새로운 물건도 만날 수 없다는 것.
미니멀리즘을 통해 추구하는 목표란 결국 "좀 더 쾌적한 환경에서 행복하게 살기"이지 절약이나 절제가 최종 목표는 아닐 것이기에, 물건의 증식을 부담스러워하는 지금의 삶은 뭔가 반쪽짜리 같고, 지나치게 건조하고, 색채가 없는 느낌이다.
여튼, 비자발적인 미니멀리즘의 실천은, 개인의 상황 상 불가피한 선택이었고 절약이라는 면에서는 효율적이나, 그 외에는 상당한 후유증을 남기고 있다. 남들은 뭐 버렸는지 기억도 안난다는데, 난 버린 물건이 자꾸 생각나고 버린 게 후회되는 물건이 적지 않다. 태생이 맥시멀리스트라서 어쩔 수 없는 건가. 아님 그저 과도기인 탓일까. 다음 6개월 뒤엔 또 어떤 생각일지, 다시 한번 글을 써봐야겠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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