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까지 내고 물건 정리했는데 이런건 또 놓치고... 왜 검색 한번 미리 못해봤을까...
wanderlust
일상잡담(까칠주의)-사회적 거리두기, 우울, 그래도 위안이 되어주는 것 본문
▶사회적 거리두기에 대해 말하자면, 나는 설 연휴 직후부터 엄정하게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시하고 있었다.
우한 폐렴 사태를 접하곤 바로 설 연휴 여행을 포기하고, 회사 출근과 사촌동생 결혼식, 건축사님과의 미팅 두세번 정도를 빼고는 사적인 약속을 전혀 잡지 않았다. 정 답답할땐 혼자 사람이 많지 않은 카페에 가서 2-30분 정도 후다닥 커피만 마시고 나오는 정도가 전부였다.
물론 사회적 대의를 위해서라기보다는 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거였다. 코로나19에 걸렸을 때 치명적일 수 있는 기저질환이 있고, 두번째로는 어릴때부터 받아온 수술과 치료 때문에 심각한 항생제 내성이 있어서, 원래도 감기와 독감에 걸리지 않기 위해 겨울철이면 온갖 노력을 해왔으므로...
그렇게 두달이 되어가니깐 이젠 정말 너무 답답하고 우울하고, 또 평상시와 다름없이 생활하는 사람들을 보면 억울한 감정이 밀려온다. 오늘도 집 근처 공원에 걸으러 나갔더니 공원 주변 술집과 카페가 사람으로 바글바글하다! 술집에 자리가 꽉 차 있는 건 정말 너무 한거 아닌가. 아니 이 인간들아! 정부가 4.6 개학전 마지막으로 2주 동안 바짝 조이자고 하는데 그거 하나 협조를 못해주냐?
모르겠다. 나도 건강 걱정이 없었다면 저들처럼 저렇게 이기적으로 행동했을까 싶기도 하고.
여튼간에 재택근무도 불편한 점이 많고, 두달동안 사람들을 못만나니 외롭기도 하고, 주식시장도 엉망이고(누군가에겐 큰 기회가 되었겠지만), 개인적인 상황도 영 답답한 요즘이다.
▶작년에 옛날 물건 수집하는 분에게 물건을 여러가지 팔았는데 (물론 매우 헐값에) 지금 보니 그분한테 판 책 중 하나가 두권에 백오십만원 하는 거였다는... 흑흑...ㅜ.ㅜ
미니멀리즘은 아무래도 내가 갈 길은 아니었나보다.
작년에 버린 물건들이 자꾸 생각나고, 오빠네 집에 맡겨놓은 귀중품 10박스에 들어 있는 물건들도 자꾸 생각나는 걸 보니;;; 많은 물건들과 함께 할 운명인가 봄.
문제는 내가 이렇게 물건이 없는 공간을 원하는 동시에
또 이렇게 물건을 쌓아놓고 지내고 싶어한다는 것. 답이 없다.
▶우리 동네 단독주택들은 많이 사라졌는데 (대부분 아파트나 못생긴 다세대주택이 되었다. 그나마 최근에 지어진 건물들은 괜찮은 편)
그 와중에도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단독주택들을 보면 응원하는 마음이 생긴다.
대략 50~100평 이내의 부지에 마당 있는 2층 양옥집들.
서울 인구가 워낙 많으니 50~100평 부지에서 3~4명의 가족만 사는 건 비효율적인 일일테지만
그래도 사람이 살기 좋은 집은 공동주택이 아닌 단독주택이라고 생각하는 건 내가 작년까지는 평생 단독주택에서 살아왔기 때문일테지.
집 신축이 늦어지면서 답답해서 죽을 것 같은데,
주변 사람들에겐 이와 관련하여 아예 말을 안하고 있다. 그러니 더 답답하지만, 사람들이 한마디씩 던지는 말이 듣기 싫어서.
단독주택에 살아보고 집 지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만 나에게 말을 보탰으면 좋겠다.
특히 맨스플레인은 정말 참아주기 힘들다. 그 입 다물라. (근데 그들은 그게 맨스플레인인지 모른다는 것이 함정)
이래서 내가 점점 더 과묵해지나봄.
▶그럼에도 불구하고 3월 28일 토요일밤이 행복한 이유
세계 피아노의 날+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유수의 피아니스트들이 한국 시간으로 밤 11시부터 라이브스트림으로 피아노 연주 중! (물론 진짜 실시간은 아니고 녹화본이다)
진짜, 너무, 너무, 좋다.
불꺼놓고 듣는데 천국이 따로 없네...!
연주도 나무랄데 없이 좋지만, 각 피아니스트들이 편안한 복장으로 자신의 집에서 연주를 하고, 친근하게 곡이나 현재 상황에 대해 얘기를 해서(특히 비킹구르 올라프손이^^), 마치 꼭 연주자의 집에 초대받아 눈 앞에서 연주를 즐기는 느낌이 들어 더 좋다.
마리아 조앙 피레스가 연주한 베토벤의 비창, 너무 유명한 곡이지만 비창 2악장은 정말 나의 all time favorite. 비킹구르 올라프손이 연주한 바흐와 라모는 말할 것도 없고, 지금은 윱 베빙JOEP BEVING이 연주하는 "Solitude"를 들으며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이번 연주를 위해 작곡한 곡이라고 한다. 진심으로 위로가 되는 곡이다.
앞으로 이어질 연주도 기대가 된다.
아아 피아노 치고 싶다 피아노 치고 싶다 피아노 못친지 4개월인가 5개월인가...ㅠㅠㅠㅠ 급한대로 디지털 피아노라도 사야 하는 것인가 ㅠㅠㅠㅠ
+) 추가
조성진, 얀 리시에츠키 연주도 너무 좋았다. 뭐 말이 필요하나...
얀 리시에츠키가 쇼팽과 멘델스존을 연주하고 마지막 곡으로는 슈만의 트로이메라이를 쳤는데... 해석이 완전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참 마음에 드는 마지막 곡 선곡이었다.
16년과 18년, 우리나라에서 얀 리시에츠키의 공연을 보고 그 이후로 호시탐탐 외국에서 얀의 공연을 보려고 기회를 노렸는데 번번이 실패했다. 특히 작년 9월 교토 공연은 꼭 가려고 연초부터 벼르고 있었는데 일본 불매 + 태풍 + 이사 준비 삼중 콜라보 때문에 포기. 코로나 때문에 여행 계획을 세울 수 없는 지금은, 양심엔 찔리지만 작년 교토 공연이라도 보고 왔어야 하는 게 아니냔 생각까지 든다ㅠ.ㅠ 빨리 모든 게 정상화돼서, 좋아하는 도시로 여행을 떠나 얀 리시에츠키의 공연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은 킷 암스트롱의 연주가 나오는데, 역시 좋다. 오늘밤 잠 자기는 다 틀렸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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