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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물건에 대하여 본문

Trivia : 일상의 조각들

오래된 물건에 대하여

mooncake 2019. 12. 27. 12:30

올해 내 시간은 대부분 평생 살아온 집과, 그 안에 가득한 물건들과 작별을 하는 데 쓰였다.

(그 탓에 매년 두세번 가던 해외여행을 단 한번도 못갔다!)

 

휴직까지 하고 물건을 정리하고, 

매일매일 물건을 버리고,

임시집으로 이사할 때 무겁고 큰 가구 종류는 제외하고 "잔짐"만으로 6톤을 찍었는데도,

본가에 남겨놓고 온 물건이 너무너무 많았다.

 

본가의 철거 및 신축 공사가 지연되는 바람에 이사 후에도 2달 넘게 남겨두고 온 물건들을 버릴까 말까 고민하는 시간이 계속 되었는데...

공사가 지연되는 것은 큰 문제였음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켠에서는 정이 담뿍 든 집이 생각보다 오래 남아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사 후 거의 매일같이 본가에 출근도장을 찍으며 물건을 버릴까말까 수도 없이 고민을 했다.

하지만 모든 물건을 다 가져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결코 좁다고는 할 수 없는 임시집이 이미 물건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에(...)

 

철거를 앞두고 하루는 옛날 물건을 수집하는 분이 본가로 오셔서 물건을 가져가셨다.

5~60년대 사상계 같은 옛날 책을 정리하기 위해 오시라고 했는데,

책 외에도 집에 보관되어 있던 그릇, 화로, 장식품, 소반, 도자기, 나무접시 등등 다양한 민속용품을 가져가셨다.

나도 옛날 물건을 참 좋아하는데, 관리도 어렵고, 보관할 곳도 적당치 않고, 무엇보다 엄마가 이 물건들을 계속 갖고 있는 걸 원치 않으셔서 어차피 그분이 가져가지 않더라도 이 세상에서 없어질 물건이었다. 하지만 막상 다른 사람 손으로 떠나가는 물건들을 보니 심경이 복잡했다. 며칠동안 잠을 설쳤던 것 같다. (물론 다른 한편으로는 그분이 고맙기도 했다. 나 대신 우리집에 있던 물건들을 잘 보존해주실 분이니...) 


이사 후 2달여의 시간 동안 치열한 고민 끝에 나에게 의미가 있는 물건이나, 마음에 드는 물건, 그리고 부피가 크지 않은 물건들은 이사 후에도 조금씩 조금씩 임시집으로 옮겨놓긴 했으나, 그래도 본가에 있는 오래된 물건들을 전부 다 보존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지금 그 물건들은 - 가구들, 커다란 도기들, 시루, 절구, 각종 그림, 옛날 그릇들, 나의 어린 시절 인형, 미처 정리못한 책과 서류, 대형 오디오시스템, 장식품 등등등 - 은 이 세상에서 모두 소멸했다. 

그게 매일같이 마음이 괴로웠다.

그리고 지금도 마음이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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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반전은

한편으로는, 이미 내가 갖고 있는 많은 물건이 매우 버겹다는 것.

(지긋지긋하게 느껴질때조차 있다)

 

물건을 좋아하고 갖고 있고 싶은 마음과, 물건이 부담스러운 마음이 공존하다보니

매일매일이 고민이다.

 

다양한 경험을 하고 즐기기에도 인생은 짧은데, 물건 관리하느라 시간을 쓰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고 (올해의 내가 그렇다)

생전 들여다보지 않는 물건들로 공간을 가득 채워놓고 답답하고 불편하게 지내는 것도 바보짓이다.

많은 물건을 떠안고 원하는 인테리어를 구현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따로 창고를 구할까 생각도 여러번 해보았는데 이건 정말 돈지랄이다싶어서 참기로 했다. (도심 창고는 가격이 참 비싸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먼 경기도 외곽 창고에 짐을 갖다두면 평생 안들여다볼 확률이 90% 이상이고;;) 


광활한 우주의 티끌에 불과한 나의 존재를 문득 인식할때면 지극히 사소로운 물건에 이토록 집착하는 것이 허무하게 느껴지다가도, 잘 보존된 과거의 유물을 마주 대할때면 나도 물건을 잘 간수하고 싶다는 욕망이 치솟는다.


오래된 물건을 간직하지 못해서 안타까운 마음과

임시거처에서 발에 채이는 물건 때문에 짜증나는 마음

이 사이의 절충안은 무엇일까.

모르겠다.

그냥 나는 최선을 다했고, 내 선택이 그 시점에서는 최상이었다고 믿는 수 밖에.








+)

이건 조금 다른 얘기지만

골동품 업자에게 헐값으로 넘기거나 아님 그냥 아예 이 세상에서 소멸되도록 두고 나온 물건들을 보며 

조금만 더 지나면 저 물건들 가격이 꽤 나갈텐데 싶어서 그쪽으로도 신경이 쓰였는데, 

다시 생각해보니까 요즘 서울 왠만한 지역은 집값이 최소 평당 삼천만원은 넘지 않나....

좋아하는 물건이라 쌓아두는 건 상관없지만, 가격이 오르길 기대하며 좋아하지도 않는 물건을 쌓아두고 지내는 건 정말 바보짓이란 생각이 들었다.

꼭 골동품이 아니더라도 미니멀리즘 관련 책에서도 종종 나오는 얘기다.

짐이 많으면 더 큰 집이 필요하고 그에 따라 지출되는 돈이 커진다는 이야기.

물건을 살 땐 그 물건 가격 뿐만이 아니라 그 물건을 보관하기 위해 들어가는 비용까지 생각해 봐야 한다는.....

물건만 없으면 20평대의 집으로도 충분한 사람이, 잘 쓰지도 않는 물건 때문에 30평대에 살게 되면, 더 큰 집에 살기 위해 묶이는 돈이 얼마인가. 추가되는 관리비는 또 얼마인가. 천년만년 살 것도 아닌데 그 돈으로 여행다니고 맛난 게 사먹는 게 백배 낫지.


+)

거의 모든 가구를 버리고 왔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마음에 걸리는 가구가 몇개 있다.

최소 80년 넘은 할머니의 그릇장과 2층짜리 자개장이 특히 그랬다. (아, 1층 거실에 놓여있던 뒤주와 2층 거실에 놓여있던 대형 책장도...)

이 가구들만큼은 가져가겠다고 고집을 피우고 싶었으나 가정의 평화를 위해 참아야했다.

둘다 오랫동안 지하실 창고에 있으면서 상태가 안좋아져 더더욱 고집을 부리기 어려운 상황이기도 했다.


앞으로는 가급적 최소한의 가구로 생활하겠다는 결심이기는 하나,

할머니의 그릇장을 포기하고 나니, 앞으로 마음에 쏙 드는 그릇장만큼은 장만해보고 싶은 로망이 생겼다. 그릇장과 그 안에 채운 그릇들이 주는 즐거움과 평안함이란...

근데 인터넷을 검색해도 할머니 그릇장과 비슷한 제품은 보이지 않는다. 당연한 일이지만, 새삼 아쉽고 슬프다.


+)

그래서 요즘은 물건 사기가 힘들다. 

뭔가 사려고 해도 죄책감이 뽝 치고 올라옴 ㅎㅎ

예를 들면 새 그릇을 지르려고 하다가도 본가에 두고 와 산산조각이 된 몇백개의 빈티지 그릇이 생각나면서 가슴이 아파진다거나;;;

몇개의 그릇은 계속 생각나서 잠을 설치기도 했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머리에 이고 지는 한이 있어도 그냥 갖고 올 걸 ㅠ.ㅠ 


+)

내가 고집을 부려 간직한 물건 중 할머니가 쓰시던 다듬잇돌과 맷돌의 향후 거취를 고민 중이다. 

그냥 창고에 쌓아두긴 싫은데 막상 인테리어에 활용하자니 내가 추구하는 인테리어와는 맞지 않는다.

검색해보니까 다듬잇돌을 찻상으로 쓰는 경우가 있던데 우리집 다듬잇돌은 찻상으로 쓸만큼 예쁘지는 않아서 fail.

맷돌은 더 난감하다.


지금 우리집 신축을 맡아주고 계시는 건축사님은 잘 보관했다가 요즘 핫한 맷돌커피집을 열면 어떠냐고 하시는데 

맷돌만 있다고 맷돌커피집을 열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ㅎㅎㅎㅎ

여튼 실현 가능성은 없지만 맷돌커피를 제조한다...는 건 생각만 해도 즐거운 일이긴 해서 마음 속 한구석에 잘 기억해두는 걸로 ^^

 

+)

나는 최소한 10년 이상, 지하실 창고에 내려가지 않았다.

그러니까 사실은 지하실 창고에 있는 물건들은 상당수가 존재 자체를 잊고 있었던 (심지어 모르던) 물건들이었다.

지하실 창고가 잘 관리되던 것은 그나마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의 일이다.

 

그래서... 지하실 창고의 물건들을 버리는 게 더 마음이 아팠던 것 같다. 하나하나 할머니의 손이 닿은 물건들이라서.

(심지어 그릇장 한켠에 놓여있던 휴지를 보고 마음이 얼마나 아프던지. 고령이시긴 했지만 갑작스러운 질병으로 돌아가시기 전까지 3-4개월 전까지만 해도 집안에서는 활발히 움직이시던 분이라 본인도 그렇게 갑자기 가실 줄은 상상도 못하셨을 것)

하지만 그래서.... 지하실 창고의 물건들을 포기하는 게 맞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최소 10년 이상 들여다보지도 않은 물건들이라면, 앞으로 갖고 있다 한들 몇번이나 볼까 싶어서...

 

+)

예전에 다른 글에서, 터치포굿에 안쓰는 우산 양산을 30여개 기증했다는 글을 썼는데,

터치포굿에 우산 양산을 모아 보내고도 안쓰는 우산이 10여개가 더 튀어나왔다(...)

 

지금 집에 있는 우산 양산도 세보진 않았지만 20개는 족히 넘을 것 같은데

그러면 정리 전에 우리집에 있었던 우산은 최소 60개가 넘는다는 이야기.

 

세명의 가족이 갖고 있기엔 과하게 많은 수치가 아닌가 싶다.

여러분의 댁에는 우산 양산이 몇개나 있나요?+_+

 

+)

위에서 쓴 "옛날 물건 수집하시는 분"이 들고 가신 물건 중에는 무려...

우리집 가훈도 있다는;;; (안 걸어놓은지 몇십년 된 가훈;;;)

내용도 평범하고 붓글씨도 평범한데

대체 그런 걸 왜 가져가시는지 모를 일이다ㅎ

나도 수집가지만 수집가들은 진짜 알 수 없는 사람들임

 

+)

물건을 최대한 비워야 하는 건 생존의 문제와도 직결된다.

허리도 안좋지 손목도 안좋지 비염 천식도 있지... 무거운 물건 정리하거나 옮기다가 허리 삐끗하는 일도 있고 물건이 많으면 청소도 쉽지 않고 결국 많은 먼지가 쌓이게 마련이고...

미관 문제를 떠나 건강을 위해서라도 물건을 비워야 하는데 그게 참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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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Comments
  • 첼시♬ 2019.12.31 16:02 신고 오래된 물건은 세월 만큼이나 쌓인 정이 있어서 정리하기 더 힘들어요.
    전 책 몇 권 버리는 데도 한참 고민했거든요. 판본이 좋다거나 희귀한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에요.
    어린 왕자가 정성들여 가꾸던 장미도 수많은 장미 중 하나이지만 그에게는 단 하나의 장미인 거잖아요.
    저희가 물건에 대해 갖는 마음 중에서도 그 비슷한 게 있지 않을까 생각해봤습니다.
    저만의 것은 소중한 것이니까요.

    아참 mooncake님, 올해 마지막 날 평화롭게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 mooncake 2019.12.31 16:52 신고 제 물건만으로도 정리가 힘든데, 가족들의 물건까지 전부 정리하느라... 정말 힘들었어요. 몸도 힘들었지만 마음이 훨씬 더...

    백년씩 묵은 물건들을 버리는 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니더라구요 흑흑
    근데 또 지금 임시집에 쌓아놓은 물건들을 보면 한숨이...ㅎㅎ

    긴 기간을 심사숙고했는데도 집 헐고 난다음에 며칠동안을 자다깨다 자다깨다 했어요. 두고 온 물건들이 생각나서요.참 미련하고 우유부단하죠?^^

    지난 한해, 힘든 일 좋은 일 같이 공감해주시고 재밌는 이야기 들려주시고 예쁜 사진들 보여주셔서 (특히 후추ㅎㅎ) 정말 감사했어요. 내년엔 더 좋은 일 가득하시고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 2019.12.31 21:59 비밀댓글입니다
  • 2020.01.01 14:16 비밀댓글입니다
  • 공수래공수거 2020.01.02 08:26 신고 작녀뉴 한해 미니멀리즘을 실천하셨군요.
    비우는게 채우는것입니다.^^
  • mooncake 2020.01.02 16:36 신고 미니멀리즘을 실천했다고 하기에는 아직도 물건이 너무 많아서 (앞으로도 많을 것 같아서ㅎㅎ) 어렵지만 네, 그래도 많이 버리긴 했어요. 자발적으로 버린 건 아니지만^^

    여전히 많은 물건을 껴안고 살고는 있지만 앞으로의 소비 행태는 이전과는 확실히 달라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 atakatu 2020.01.02 15:30 Mooncake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저도 물건 쉽게 못 버리는 성격이라 공감 많이되네요 ㅠ http://naver.me/IgoGqriF 이 기사보고 mooncake님 생각나서 댓글 남겨보아요!
  • mooncake 2020.01.02 16:45 신고 앗!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어요?^-^
    저 작년에 물건 버리느라 정말 힘들었어요ㅋㅋㅋㅋ 아직도 갈길이 멀지만요.

    그리고 알려주신 기사+_+ 정말 감사합니다! 저 다른 사람들의 그릇 구경, 그리고 그 그릇에 얽힌 이야기 듣는 거 완전 좋아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esther 2020.01.03 00:26 구구절절 다 내맘만 같아서..
    맞아맞아...하면서 읽어내렸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정리했다는 것으로 스스로 위로하시며
    이제 그만 털어버리세요.
    아님 그건 버린게 아니라 어딘가에 숨어있다고 생각해보시면..
    (제가 종종 쓰는 자기최면 방법입니다). 당분간 찾아내지 마시구요..으으
  • mooncake 2020.01.07 10:30 신고 그쵸? 7~8개월 고민했는데도 안챙긴 물건이라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위안하며...

    아직도 저희집이 남아 있고 거기에 가구도 물건들도 남아 있을 것만 같아요. 철거 과정 동영상으로도 받아보고 현장도 가보았지만.

    임시집에서의 삶은 우울하네요. 최악까지는 아닌데 암튼 집에 결로를 비롯한 여러가지 하자들이 있고, 저랑 부모님 쓰는 방 제외한 나머지 방 1개와 거실은 짐상자로 가득 차있구... 근데 새 건물 신축도 자꾸 문제가 생기고... 폭발할 것 같은 마음입니다ㅎ 이거 뭐 굿이라도 해야 하나요ㅠ
  • 노란전차 2020.01.17 00:49 신고 쓰신 글을 보니 작년에 이사할 때가 생각나요.
    책도 많이 버리고 안 나오는 볼펜 더미들까지 이것저것 정말 많이도 버렸는데 막상 지금은 야금야금 사들이고 있더라고요.
    특히 필기도구는 잘 쓸 일이 없을 것 같아서 그간 잘 참다가 뒤늦게 공부를 다시 시작하면서 펜류가 다시 끌리는데 머릿속에서 더는 안돼를 되뇌인답니다.
    저희 엄마를 보면 지나간 물건에도 엄청나게 의미를 부여해서 잘 버리지 못하는 것들이 많은데 이게 별로 좋은 것 같지는 않아요.
    미니멀리즘이 왜 필요한지 틈틈이 느끼면서도 가짓수를 야금야금 늘여가는 것이 함정이에요...
  • mooncake 2020.01.17 13:57 신고 맞아요... 지나간 물건에 의미를 부여해서 잘 못버리는 것, 좋지 않아요. 알면서도 잘 안되는 것이 함정이지만.
    예전에도 한번 엄청난 양의 펜을 정리했는데도, 이번에 이사준비하면서 버린 펜, 색연필 등이 수백자루에요 ㅠ.ㅠ 저도 이제 다시는 필기구를 사지 말아야지! 다짐하고 아직까지는 잘 지키고 있는데 앞으로 어찌될진 잘 모르겠어요ㅎㅎ 그래도 공부 시작하셨다고 하시니 몇개는 새로 장만하셔도 되지 않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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