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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짓기(1) 어쩌다보니 집 짓는 중, 레미콘 파업, 엘리베이터 색상, 화장실 창문 유무 본문

집짓기&인테리어

집짓기(1) 어쩌다보니 집 짓는 중, 레미콘 파업, 엘리베이터 색상, 화장실 창문 유무

mooncake 2020. 8. 5.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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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이 쓴 집짓기에 관한 책이나 블로그를 보다보면, 몇년 이상 집짓기를 준비하여 실행에 옮긴 분들이 대부분이다. 또한 설계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건축주 직영공사를 한 경우도 많다. 하지만 우리집은 갑자기 집을 새로 짓게 되었기 때문에 열심히 공부할 시간도, 내가 정말 원하는 집이 무엇인지 생각할 시간도 없었다. (그나마 작년에 일정이 지연되면서 생긴 시간들은 짐정리에 쓰였고, 올해 공사가 지연되는 동안은... 나도 대체 내가 뭘 했는지 모르겠다. 스트레스만 받았지 한 게 없다;;;) 설계 과정에서 건축사님과 자주 만났지만, 내가, 그리고 우리 가족이 원하는 것이 확실히 전달되었는지도 잘 모르겠다. 왜냐면 나 조차 내가 원하는 게 확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평생 단독주택에 살아 왔고, 남이 사는 집 구경하는 것도 좋아하고, 막연히 언젠가는 집을 다시 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했지만, 준비는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이렇게 얼치기로 집을 짓게 되면서, 다른 분들이 남긴 집짓기 기록이 꽤 도움이 되고 있다. 그래서 나도 블로그에 집짓기에 대해 글을 쓰기로 마음 먹었다. 하지만 나는 준비를 많이 한 것도 아니고, 공사 과정에 깊게 개입한 것도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딱히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모든 건축주가 심사숙고해서 건물을 짓게 되는 것은 아닐테니, 어쩌다 한두명에게는 참고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글을 써보기로 마음 먹었다. 만약 집짓기 과정에서 나처럼 좌절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보다 더 모르고 시작한 애도 있었네!라는 작은 위안이라도 얻게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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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집을 지으면 10년 늙는다고 한다. 근데... 나는 그게 "공사 중"에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한다는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우리집은 "공사 전"에 여러가지 문제가 많았다. 구청 담당자의 규정 인지 착오로 인한 허가 지연, 지하수 문제로 인한 설계 변경, 재허가, 대출 지연 등등. 그런 지리한 나날들 끝에 본 공사가 시작되었는데 예상치 못한 변수가 하나 더 있었다. 7월 1일부터 시작된 레미콘 파업. 하루이틀 지연 후에  시공사가 해결 방안을 찾아내기는 했는데, 대신 추가 비용이 발생했다. 그리고 레미콘 파업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하고 나니 바로 장마가 시작되었고, 아직까지 역대급으로 긴 장마가 이어지고 있다. 하하하;; 여튼 내가 레미콘 파업 일정까지 신경쓰게 될 줄은 몰랐다. 집짓기는 새로운 경험의 연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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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경험이라고 하니, 공사 초기에 깜짝 놀랐던 일 하나... 퇴근하고 공사현장에 들렸는데, 이미 작업이 종료된 공사장에 사람 기척이 보였다. 깜짝 놀라서 건축사님에게 전화했더니 아마 공사 중에 나온 고철을 주우러 온 할머니일거라고, 고철 자체는 가져가도 되지만, 공사 현장이 위험해서 다칠 수도 있으니 빨리 나오시게 하라고 했다. 실제로 나이가 굉장히 많은 할머니였는데 나오시라고 해도 굽히지 않고 "내가 아들이 아파서 그러는데 이것만 더 주워가도록 해줘 미안해 신고하지마"라고 하며 한참 동안 고철을 주우셨다. 나도 피곤한 상태라 할머니를 계속 지켜보고 서 있으려니 조금 짜증이 났는데, 막상 할머니가 공사 현장 밖으로 나오신 다음 봤더니 허리도 굽고 몸이 별로 성치 않은 분이시더라...... 그런 분에게 빨리 나오라고 한 내가 나쁜 사람처럼 느껴져서 정말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하지만 공사 현장에서 다치기라도 하면 큰 일이 되니 계속 드나드시게 둘 수도 없는 일이었다. 폐지 줍는 노인분들은 봤어도 사람들 못들어가게 막아놓은 공사 현장에 들어가 고철 줍는 분은 또 처음 봤기에 여러가지로 마음이 심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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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짓기가 힘든 이유 중 하나는 모든 것을 다 내가 직접 결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아파트에 산다면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닌 부분들, 이를 테면 엘리베이터 색상도 직접 골라야 한다. 우리 부모님은 이런 부분에 전혀 예민하지 않은 스타일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예민한 나에게 전권이 주어졌다.

골드, 화이트, 블랙 중에 고를 수 있었는데 골드는 너무 올드해서 바로 제꼈고, 마음에 드는 건 블랙이고, 무난한 건 화이트라 하루 정도 고민을 했다. 일반적인 크기의 엘리베이터라면 고민없이 블랙을 택했겠지만, 7인승 소형 엘리베이터라 색상 때문에 너무 좁은 느낌이 들까봐 걱정이 됐다. 영업사원분에게 최종 문의한 결과, 전체 블랙은 아니기 때문에 블랙이라고 해서 좁고 답답한 건 아니다. 다만 디자인 자체가 대칭이 아니기 때문에, 설치 후 비대칭 문제로 항의를 받는 일이 종종 있어서 조금 우려된다,라는 답을 듣고, 블랙으로 전격 결정했다.

 

그래도 엘리베이터 색은 고르기 쉬운 편이다. 선택지도 좁고, 엘리베이터 타는 시간도 워낙 짧으니까. 하지만 다른 것들은... 순간의 선택이 몇십년을 후회하게 할 수도 있으니 생각만 해도 스트레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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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에만 살던 사람들은 화장실에 창문이 있는 게 낯설다고 한다. 반면 단독주택에만 살아온 나는 화장실에 창문이 없는 게 낯설다. 이미 골조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데, 내 화장실에 창문이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깜짝 놀랐다.

건축사님에게 질문을 드렸더니, 최초 허가 받은 설계도에는 화장실 창문이 있었는데, 이후 변경된 설계에는 화장실이 정북사선 쪽에 위치하고 있어, 경사진 곳에 창문을 내는 것은 하자 위험이 높아 창문을 따로 고려하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 가족이 쓸 공간은 설계 변경되는 부분이 거의 없다고 생각해서 변경 된 설계도를 꼼꼼히 챙겨보지 않았는데 의외로 바뀐 부분이 꽤 있었다ㅠㅠ 여튼간에 비록 좁고, 경사진 벽을 가지고 있지만, 창문으로 빛이 환하게 들어오는 화장실을 생각했었는데 다소 멘붕에 빠졌다. 주변 사람들은 요즘 화장실은 창문이 없는 게 기본인데, 꼭 화장실에 창문이 필요하냐고 묻는다. 하지만 나는 자연광이 들어오는 화장실 쪽이 더 마음에 든다. 기능보다도 취향의 문제인 것이다. 결국은 건축사님과의 협의 끝에 화장실에 창문을 내기로 했다. 좋은 선택이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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