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wanderlust

일상잡담 - 집으로 돌아가기 위한 너무나 먼 여정 본문

Trivia : 일상의 조각들

일상잡담 - 집으로 돌아가기 위한 너무나 먼 여정

mooncake 2020. 10. 12. 21:00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

골조 공사가 한창이었을 때는 빨리 공사가 마무리되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렸는데

며칠 전 이 사진을 보고는 차라리 이때가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ㅠ.ㅠ

 

언제쯤 완성되려나...

 

지난 연휴 직전, 체력이 완전히 바닥났었다. 회사도 너무 바빴고, 집 공사 때문에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직접 고르고 만나고 의논하고 결정하고 챙겨야 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그리고 실망스러운 일도 너무 많았다. 설계비도 많이 썼는데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흑흑 왜 이걸 다 내가 고르고 있어야 하는 건지 흑흑. 정신이 하나도 없고 모든 게 너무 힘들었다. 결국 모든 걸 놓아버리고 주말 이틀 내내 침대 밖으로 거의 나오지 않았다. 그러고 나니깐 조금 살 것 같다. 

 

새삼 느끼지만 모든 건 다 체력에서 나온다. 지성도, 마음의 여유도, 좋은 결정도, 애정도. 체력의 뒷받침 없이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지난주 목요일날 회사 출근했는데 온몸이 두드려 맞은 것 마냥 쑤시고 너무 너무 피곤해서 마치 장거리 비행하고 유럽 여행 가서 시차 적응 못해서 잠도 못 자고 한참 최악의 컨디션으로 겔겔대는 듯한 그런 느낌이 들었다. 왜죠? 회사가 아무리 바빴다고는 하나 그래도 내 침대에서 잘 거 다 자고 회사 책상에 앉아 곱게 일만 했는데... 왜죠? ㅠ.ㅠ

 

그나마 연휴 동안은 다 내려놓고 푹 쉬었는데 내일부터는 다시 강행군이 기다리고 있다. 난 그냥 내 집에서 편안히 살고 싶을 뿐인데, 내 집으로 돌아가는 여정이 너무나 길고 지친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까 얼마 전 쓴 글하고 거의 똑같은 글이다. 하소연하려고 블로그 하는 사람같다. 

 

아무튼 이 글에서 하고 싶은 말은 두 개다. 체력 그지는 너무 힘들다 + 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너무 멀고 지친다. 결국은, 몸이 힘들면, 포기하는 수 밖에 없다. 어차피 최악의 결과를 맞이하더라도 고작해봐야 "기대에 못 미치는 인테리어를 해놓은 집"일뿐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집이 좀 후지면 어때. 사실은 진짜 별 거 아닌 일인데 혼자 끙끙대며 괴로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 집을 짓는데 시간과 돈이 얼마 들었냐 생각해보면 별 거 아닌 일은 아니지만(흑흑), 우울감에 휩쓸리거나 과로사로 죽는 것보단 낫지.

 

덧 1)

원래 집짓기에 대해서 글을 쓰려고 했는데 내 생업만으로도 너무 바빠서 엄두가 나지 않는다. 골조 올라갈 땐 내가 할 게 없으니 그래도 글을 쓸 여유가 있었지, 지금은 매일같이 파도가 밀려오는 느낌이라 기록하고 자시고 할 기력이 1도 없다. 집짓기 과정을 빠짐없이 체크하고 일일이 글을 써서 기록으로 남긴 분들은 정말 존경스러운 분들이다. 

 

덧 2)
예전보다는 훨씬 작아졌지만 그래도 조경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남기는 했는데, 뭐랄까, 나는 다시 나무를 심고 싶지 않다. 원래 있던 나무들을 베어버려야 했던 게 너무 마음이 아팠기 때문에, 새 나무를 심는 건 뭔가 배신행위 같다. 새 나무에 애정을 갖게 되는 것도 싫다. 난 앞으로 새 화분도 절대 안 살 거야. 

 

그래도 딱 한 그루만 고르라면, 엄마는 배롱나무를 심고 싶다고 하신다. 나보고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보라색 꽃이 피는 자카란다를 심고 싶다. 갑자기 딴 소리지만 자카란다 꽃이 만발했던 6월의 리스본은 정말 아름다웠다. 언제쯤 다시 가볼 수 있을까.

덧 3)
그래도 작년 9월 말 임시집으로 이사하고, 생각보다는 임시집에 대한 적응이 매우 빨라서 좀 의외였다. 인생 첫 이사라 되게 적응 못할 줄 알았거든. 집은 바뀌었어도 같은 침대에서 자고, 같은 식기로 밥을 먹고, 무엇보다 부모님과 같이 있으니 그냥 그 자체로 집이 되더라. 그래서 집이란 건 공간보다는 "가족"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 의미라면 꼭 이렇게 "집으로 돌아가기 위한 너무나 먼 여정" 운운 안해도 되긴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시집에 대한 소소한 불만이 백가지쯤 되기도 하고, 공사가 지연되면서 생각보다 너무 오래 임시집에 살게 되어서 계속 뭔가 붕 뜬 듯한 느낌이기에... 빨리 내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ㅠ.ㅠ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