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wanderlust

일상잡담-... 본문

Trivia : 일상의 조각들

일상잡담-...

mooncake 2020. 11. 5. 19:00

삶이 힘들다고 불평하면,
“그래, 너 많이 힘들었구나, 위로가 되도록 좋은 일을 줄께” 가 아니라
“무슨 그 정도가지고 힘들다고 그래, 니가 정말 힘든 일을 못겪어봤구나, 이번 일을 겪으면 지금까지는 견딜만 했다는 걸 알게 될거야”라는 식으로 삶이 작동한다는 느낌이 든다.
아무리 삶은 고행이라지만, 아 이거 진짜 너무한 거 아니오.......

오죽하면 엎친 데 덮친 격, 산 넘어 산... 이런 말들이 있겠냐만, 힘든 일은 한번에 하나씩만 왔으면 좋겠다. 좀.


아무튼 오늘도 불행과 바쁨의 늪에서 혼자 허덕이고 있는데 선배가 말없이 내 앞에 내려놓은 라떼 한잔에 괜히 눈물이 핑 돌았다.

회사생활하면서 사람들한테 커피며 자잘한 간식이며 수시로 얻어 먹는데 새삼스레 커피 한잔에 감동할 건 또 뭐야. 사람이 너무 피곤하고 지치면 감정 과잉이 되는가보다.


5년전의 일이다. 그때도 엄청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던 무렵이었는데 (지금은 괜찮지만, 당시는 죽을 것 같이 힘들었음) 절친을 만나 "회사의 X같음"에 대해 토로하며 홍대 길거리를 걸어가고 있던 11월의 추운 밤이었다. 내가 얼마나 불행한지 한껏 포효하느라 내 목을 감싼 스카프가 풀려 바닥에 떨어진 것도 모르고 마구 떠들어대며 걸어가고 있었다. 친구가 누가 우릴 부르는 것 같아,라고 해서 뒤를 돌아보았더니 키가 크고 늘씬한, 모델같은 여자분이 내 스카프를 손에 들고 전속력으로 우리에게 뛰어오고 있었다. 그리곤 나에게 스카프를 건네 주더니, 감사하다는 인사가 채 끝나기도 전에 쿨하게 되돌아가셨음ㅎㅎ

 

정말 사소한 일인데,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던 당시의 나에겐 엄청 감동스럽고 이상하게도 큰 힘이 된 사건이었다. 생판 모르는 타인도 나를 위해 스카프를 들고 뛰어와주는데ㅠㅠ 힘들지만 기운내서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살아야지, 뭐 그런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물론 이 이야기를 들으면 그때 나를 위로해줬던 친구들이나 가족들이나 회사 동료들이 야! 그럼 우리가 해준 건 머야!!!!라고 할 수 있겠지만ㅎㅎㅎㅎ 그건 그것대로 고맙고, 타인이 베푸는 사소한 친절은 또 그것대로 고마운 것 같다.

 

그때 그 스카프 사건을 떠올릴때마다 내가 베푼 아주 작은 친절이 누군가에겐 삶을 포기하지 않는 힘이 될 수 있으니, 가능하면 남들에게 친절하게 대해야지!라고 마음을 먹는다. (하지만 무례한 인간들을 겪을 때마다 그런 마음이 사라지는 것이 문제;;)


 

 

 마음이 힘들면 타인의 위로를 바라면서도, 구질구질하게 힘든 이야기를 하기 싫어 혼자만의 공간 속으로 숨게 된다. 점심시간, 일부러 혼자 밥을 먹고 공원에서 멍 때리는데 가을 날씨가 너무 좋아서 서글프더라.

 

인생은 고행이다. 물론 좋았던 순간도 많고, 심지어 이 고난의 나날 속에서도 잔잔한 즐거움은 있어서, 오늘 낮에 먹은 떡볶이도 맛있었고 가을 햇살도 따듯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삶은 힘든 순간이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덜 재밌고 좀 외로울지라도, 고통이나 책임을 최대한 피하는 쪽으로 삶의 방향을 바꿨다. 그런데 아무리 그래봤자 태어난 이상, 인간인 이상 피할 수 없는 고통들이 있더라. 아무리 세상에 즐거운 일이 많다고 해도 이 고통들을 짊어지고 사는 것은 너무 괴로운 일이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