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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보는 일출과 일몰, 집의 방향, 집짓기 푸념 본문

집짓기&인테리어

집에서 보는 일출과 일몰, 집의 방향, 집짓기 푸념

mooncake 2021. 6. 22. 00:35

지금 살고 있는 집의 몇 안되는 장점은 집에서 일출과 일몰을 볼 수 있다는 게 아닐까. 이리저리 들어선 건물들 때문에 뷰가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간에

일찍 일어나면 거실의 동쪽 창을 통해 일출을 볼 수 있고

저녁엔 침대에 누워 서쪽 창을 통해 일몰을 볼 수 있다.

단독주택이니깐 동서남북 모든 방향에 창이 있다. 아파트들이 왜 그렇게 집의 방향을 중요시하는지 몰랐는데 얼마전에서야 아파트의 두 면은 옆집에 의해 가로막히니까 사 면이 아닌 두 면에만 창이 있고, 그래서 집의 방향이 중요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파트에만 산 사람들은 “아니 그걸 어떻게 깨닫기까지 해야 해”라고 생각할 수 있갰는데, 반대로 다층으로 이루어진 개별주택에 사는 내 입장에서는 훨씬 더 답답한 상황이 많다. 우리나라엔 다층 주택보다는 단층 공동주택에 사는 사람이 훨씬 많다보니 다층 거주공간에 대한 이해도가 심하게 떨어진다. 심지어는 건축사와 시공사마저 그래서 “살아본 거랑 공부한 건” 별개의 문제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이를 테면 내부 계단 등 스위치는 수직 이동이 일어나는 공간 특성 상, 계단 아래쪽과 계단 위쪽에 두 개를 설치하고 그 두 개가 연결되어 있어야 하는데 건축사도 시공사도 그걸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빼먹었다. 대략 난감. (결국은 내부계단 2곳에 센서등을 달긴 했는데, 오작동도 은근히 잦고, 1-2층 사이 메자닌 공간에 그릇 수납장이 있다보니 그릇 수납장 앞에 오래 있다보면 등이 꺼져서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사후 처리가 많이 남아 있기에 이사 후에도 다양한 관련 업자들이 오가는데, 방금 본인이 내부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와 놓고도 아래층과 한 집이라는 사실을 자꾸 까먹는 분, 이 좁디 좁은 집에서 헤매는 분, 1층-2층-다락층까지 총 3개층 구조임을 몇번씩 설명해도 이해 못하시는 분 등등 불편한 일이 자주 일어난다. 일반인도 아니고 관련 업종 종사자가 이렇게들 공간 감각이 떨어져서야. 하지만 바꿔 생각하면 평생 단층 주거공간에서만 살았고 일도 단층 위주로만 했던 분들이라면 어쩔 수 없나 싶기도 하다. 애석하게도.

다시 집의 방향 이야기로 돌아와서, 집의 사면에 창이 있더라도 물론 거실의 남향 창이 제일 크긴 하다. 동,남,북쪽으로 창이 있고 그 중 남향 창이 제일 큰 거실이, 남,서쪽으로 창이 있고 서쪽 창이 큰 침실보다 겨울엔 1-2도 높고, 여름이 된 지금은 1-2도가 낮다. 같은 집인데도 남향 창이 큰 공간이 확실히 겨울엔 덜 춥고 여름엔 덜 더운 걸 보면 이래서 남향이 인기가 많은가보다. ( ——> 이건 8월초까지 지내보고 다시 수정합니다. 한 여름인 지금은 방 보다 거실이 더 더움ㅠㅠ 일단 새벽부터 동쪽 창으로 어마무시하게 이글거리는 아침 해가 거실을 마구 달군 다음에 식을 틈 없이 남쪽 창으로 하루종일 해가 들어와서 거실이 덥다. 침실은 오후 3시 이후부터 온도가 올라가니깐 그나마 좀 나은 편. 아무튼 덥습니다 덥고요...)

물론 남향이 좋다는 걸 이제서야 안 건 아니고, 원래 살던 집도 1,2층 거실과 안방은 모두 남향이었지만 내가 쓰던 방은 동향이었다. 그래서 커튼 치고 자는 걸 까먹기라도 하면 새벽부터 쏟아져 들어오는 밝은 빛 때문에 잠을 설쳐야만 했고, 여름엔 시원했지만 겨울엔 한기가 돌았다. 저녁형 인간인데다가 추위을 싫어했던 나는 동향을 극혐했고, 의외로 좋아했던 것은 오후에 서쪽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이었다. 원래 살던 집은 1,2층 화장실, 1층과 2층 사이 계단, 그리고 부엌에 서향 창이 있었는데 어린 시절의 나는 1층 계단 2~3칸 쯤에 앉아 풍부한 오후의 햇살 속에서 음악 듣고 책도 읽는 걸 좋아했다. 어린이 시절엔 계단 벽에 등을 기대고 가로로 앉아 있으면 길이가 잘 맞아 매우 편안했다. 어른이 된 이후로는 집안 실내 계단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일은 없었지만, 부엌의 서쪽 창을 통해 들어오는 오후의 따듯한 빛을 참 좋아했었다. 오래된 부엌이 그 시간만큼은 참 예뻐 보이곤 했는데 이젠 다 과거의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새로 집을 지은 지금에 와서는, 오후 깊숙이 들어오는 강렬한 서쪽 햇빛은 침실 온도를 높이고 서쪽 창 근처에 놓인 책장의 책들이 바랠까봐 걱정시키는 녀석이 되어버렸다.

새 집에서도 예전 집 만큼의 애정과 추억을 쌓을 수 있을까, 글쎄, 그건 어려울 것이다. 처음부터 마음에 안드는 점이 너무 많고 어린이 시절처럼 낙천적이지도 않으니. 그래도 뭐 어쩌겠어...

P.S. 너무 당연한 얘기이긴 한데 (1) 본인이 정말 정말 정말 건축에 관심이 많고 아주 오래전부터 집짓기를 준비해서 거의 설계도를 그린 정도이며 건축 공정 내내 시간을 크게 할애할 수 있는 경우 내지는 (2) 돈 걱정 없이 업계 최고의 업체를 고용할 수 있는 경우 혹은 (3) 매우 털털한 성향에 부처님 가운데 토막 같은 성정으로 모든 세상일에 초월한 듯한 현자가 아니라면 내가 살 집을 직접 짓지 않는 것이 여러모로 좋다. 집 짓고 우울증과 인간 불신 및 인간 혐오에 시달리고 있어요오오오 네... 본인... 아버지도 건축과 연관된 업종에 계셨고(=대략 아는 사람이 많다는 얘기), 원래 살던 집도 아버지가 직접 지은 집이었고, 친인척 중에도 건축설계사와 건설회사 사장이 있고, 새 집 설계해 준 건축사님도 내 친구의 선배. 그니까 뭣 모르고 그냥 막 짓진 않았다는 얘기죠, 고의적으로 뒷통수 맞거나 그런 것도 아니란 얘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 짓기는 아주 엿같았고 결과물도... 현재로써는 영 아니올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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