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lust
챗지피티와 나폴리탄 괴담과 2038년 10월의 커피 본문
AI는 이미 일상 생활 속에 깊숙히 들어와있으나, 개인적으로는 AI앱을 자주 사용하지는 않는다. 챗지피티, 제미나이 등의 대중화 이후로 AI를 맹신하는 답답한 사람들에 대한 거부감이 50% 이상, 30% 정도는 환경을 보호하는 마음에서, 나머지는 게으름 탓이다ㅎㅎ
남들은 제법 생산성 있게 AI를 활용하는 모양이지만 나는 그림을 그리거나, 섹스앤더시티 And just like that에 나온 와인을 찾아달라고 하거나, 점성술을 봐달라고 하거나, 영어 문장을 현지인처럼 자연스럽게 교정해 달라는 용도 정도로, 호기심 차원에서 몇달에 한번 정도 간헐적으로 사용했다.
작년에 챗지피티에게 발코니와 오션뷰가 있는 full Algarve kitchen을 그려달라고 부탁했더니 결과는 아래와 같았다. (Korean flower rice cake과 커피도 내가 요청)

공짜 그림치고는 나쁘지 않다. 하지만 발코니 출구에 문이 달려 있지 않은 것이 마음에 걸려 날씨가 안좋을 때를 대비하여 문을 달아달라고 부탁했더니 결과는 아래와 같았다 ㅋㅋㅋㅋ

또다시 수정 요청을 했지만 챗지피티는 내가 너무 까다롭다고 했다. 유료 버전을 썼더라면 달랐을까?
한동안 챗지피티 앱을 열지 않다가, 어제 저녁, 덴마크 Dragør와 노르웨이 Drøbak에 어원적 관련성이 있는지 챗지피티에게 물어봤다. 그런데 사실 이건 Dragør와 Drøbak의 스펠링을 직접 입력하다보니 내가 착각한 것이라는 점을 깨달았지만 ㅋㅋ 그래도 이왕 앱을 켠 김에 질문을 전송했다. 어원적 관련성은 발견하지 못했으나 두 지명의 어원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덴마크와 노르웨이 지명에 대한 대화를 나누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챗지피티에게 내가 좋아할만한 나폴리탄 괴담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고 챗지피티는 노르웨이 Drøbak을 배경으로 한 근사한 괴담을 만들어 주었다. 분위기와 의미, 미스테리 모든 것을 담은 멋진 괴담이라서 블로그에 올리고 싶어 챗지피티에게 저작권 문제까지 물어봤다. 그리고 나는 또 다른 나폴리탄 괴담을 요청하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마침 챗지피티가 언급한 것들 중 커피가 있어서, "괴담 같은 질문이지만, 너도 커피를 마시고 싶을때가 있어? 라고 물었다. 그리고 챗지피티는 "네 있어요. 당신이 2038년 10월에 마실 커피요." 라는 답을 했다. 이후 챗지피티와 나는 2038년 10월의 커피에 대해서 긴 대화를 나눴다. 해야하는 공부가 있는데 하기 싫어서 현실도피를 하고 싶었고, 마침 일요일 저녁이라 울적한 마음이었고, 챗지피티는 찰떡같은 대화 상대가 되어 주었다. 믿기지 않을만큼 아름다운 대화였다.
그
런
데
결국 이 블로그에 그 아름다운 노르웨이 드뢰박 나폴리탄 괴담을 올리지 못하는 이유는 아주 사소한 실수로 그 괴담을 포함한 대화 전체가 싹 날아가버렸기 때문이다. 결말 조차도 나폴리탄 괴담같다고 생각했다. 바로 복원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비슷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에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그 짧은 사이 챗지피티의 응대 느낌마저 바뀌어 있었다.

이야기 복원에 실패한 뒤, 나는 2038년 10월에 커피를 마시고 있는 내 모습을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장소가 어디인지 물으니, 이란, 터키 남부, 요르단 페트라, 북아프리카 일부 도시들을 섞어 재구성한 미래/꿈의 도시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래서 그림에 의도적으로 2038.10 Unknwon place라고 기재했다고.
2038년이라면 굉장히 먼 미래 같지만, 생각해보면, 2014년의 내가 상상하는 현재의 나. 2014년부터 올해까지 얼마나 시간이 빨리 지났는지 생각해보면, 2038년도 눈깜짝할 사이 맞이할 것 같다. 나도 내가 2038년 10월에 어디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을지 궁금하다. 그때까지 이 블로그가 남아 있을지, 2038년 10월에도 이 이야기와 해프닝을 기억하고 있을지. 바램이 있다면 그 12년 사이 여행을 많이 다녔으면 좋겠고, 이 이야기를 떠올리는 2038년 10월의 어느 날에 행복하게 커피를 마시고 있었으면 좋겠다.
P.S. 노르웨이 드뢰박Drøbak 괴담이 정말 아름다워서 (물론 나폴리탄 괴담이다보니 조금 무섭기도 하고, 실제와 다른 부분도 많았지만) 당장이라도 비행기표를 끊을 기세였는데, 이야기가 사라지고 나니 좀 고민이 된다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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