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lust
리스본 도둑시장에서 책 읽던 아저씨 그리고 여행의 여유 본문
나에게 리스본 도독시장(Feira da Ladra)의 이미지는,
보라빛 꽃이 가득한 자카란다 나무(Jacaranda Trees)
저 멀리 내려다보이던 테주강(Rio Tejo)
강렬한 여름의 햇살
알파마(Alfama)의 정겨운 골목골목
먼지 잔뜩 낀 옛날 물건들의 끝없는 바다
남들 눈엔 허섭쓰레기같아 보이겠지만 자기 자신에게는 둘도 없을 보물인 그 무언가를 찾아 헤매이던 사람들에게 느낀 동지의식
그리고,
세상 모든 것에서 초월한 듯 책을 읽고 있던 사진 속 아저씨.
...
갑자기 날이 더워져 한여름의 햇살이 사정없이 내리쬐던 리스본 도둑시장.
엄마는 벼룩시장엔 원래 흥미가 없는데다가 피곤하다고 하셔서 도둑시장 옆 공원에 앉아 계시라 하고
복잡한 시장통, 먼지 잔뜩 낀 고물들 사이에서 예쁜 찻잔을 찾아 다급하게 돌아다니고 있는데
엄마를 혼자 두고 왔으니 빨리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은 급하지, 몸은 피곤하지, 살인적인 햇볕 탓에 갈증은 심하지, 시장의 규모는 생각보다 훨씬 크지...
참 힘든 순간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시장 한 켠에서 물건을 파는 것엔 별 관심 없는 듯 느긋하게 책을 읽고 계시던 아저씨.
그 여유 넘치던 모습이 어찌나 멋지고 부럽던지,
뭐라도 하나 더 사보겠다고 억지로 돌아다니고 있던 미련한 몸을 돌려, 과감히 벼룩시장을 포기하고
근처 공원에서 쉬고 있던 엄마와 만나 점심을 먹으러 갔다.
리스본 도둑시장에서 예쁜 찻잔을 많이 사지 못한 건 아쉽지만, 그때라도 시장을 빠져 나온 건 참 잘한 일이었다.
엄마를 혼자 둔 것도 맘이 편치 않았고(막상 엄마는 자카란다 나무 밑에서 아름다운 경치를 구경하며 쉰 게 너무 좋았다고ㅋㅋ)
이미 벼룩시장에서 너무 무리하는 통에 이후 오후 내내 허덕이느라 벨렘 지구를 제대로 구경하지 못했으니까.
여유로운 여행이 좋다고 항상 입버릇처럼 말하면서도 막상 현지에 가면 하나라도 더 보고 더 살 욕심에 몸과 마음이 바빠지는 일이 부지기수.
보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이 많아 분주하게 돌아다니다보니 마음이 급해질 때가 종종 있는데
그러다보면 진정한 여행의 참맛, 여유로운 즐거움은 느끼기가 어려워진다.
물론, 꼭 뭐가 더 낫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게
힘들게 휴가내고 비싼 돈 들여 갔으니 하나라도 더 보는 것도 좋고
또, 그렇게 어렵게 갔으니 정신없는 일상에서 벗어나 최대한 여유를 만끽하는 것도 좋고
그렇지만 확실히 중요한 것 하나는 어느 쪽을 택하든 "그 순간 자체를 즐기는 법"은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ㅎ
마음 속에 항상 리스본 도둑시장의 책 읽던 아저씨를 떠올리는 연습을 해야겠다.
그러나 다음번 여행에서도 난 습관적으로 체력의 한계를 벗어나는, 또는 무리한 일정을 강행하는 욕심을 부리겠지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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