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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ivia : 일상의 조각들

Airport Sadness

mooncake 2015. 5. 9. 13:23




오래전 Brad Mehldau의 Airport Sadness를 처음 들었을때, 나는 건강 상의 이유로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있었고,

그래서 당연하게도 여행 같은 건 아예 꿈꿀 수도 없는 처지였다. 


당시 내가 즐겨가던 어떤 홈페이지의 주인은 여행을 참 많이 다니던 사람이었는데,

이 Airport Sadness라는 곡을 올려놓고 

"좋아서 여행을 다니면서도 긴 여행 사이사이 공항에서 문득 슬픔이 몰려 올때가 있는데 그 기분을 참 잘 표현했다"고 적었다.


나는 이 곡이 참 좋으면서도, airport sadness에는 쉽사리 공감할 수가 없었다. 

당시의 나는 여행을 갈 수 없어 슬픈 사람이었으니까, 여행 중 공항에서 느끼는 슬픔이라는 건 엄청난 사치로 느껴졌다.

다만, 언젠가는 나도 airport sadness를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랬다 : )


시간이 지나 나는 어느 정도 건강을 회복했고, 직장인이 되었고,

직장인이 된 후 가게 되는 해외여행은 늘 꿀맛 같고, 공항에 가면 늘 마음이 설레였다. 


그런 나에게도 더이상 공항이 즐겁지 않은 순간이 왔으니,

2012년 난생 처음 혼자 여행을 가던 날, 하루종일 회사에서 업무로 시달리다 간신히 퇴근해서 집에 가서 여행 가방을 가지고 공항으로 달려가 모든 수속을 마치고 공항 카페에 앉아 있는데, 여행이 하나도 기대되지 않고 그저 피곤하고 우울하기만 했다.

일단은 육체적으로 너무 피곤해서 당장 내 방 침대에 누워 자고 싶은데 그대신 불편한 비행기 의자에 앉아 뜬눈으로 밤을 새울 생각을 하니 한숨부터 나왔고, 두번째로는 여행을 떠나는 날 까지도 회사에서 시달려야 하는 자신의 퍽퍽한 삶이 우울해서였을 것이다. 왜 이렇게 빡세게 살아야 하나. 


12,13년 두 해 연속으로 유럽에 갈때는 한밤중에 출발하는 중동 항공사를 이용했는데, 그게 견딜 수 없이 피곤했던 탓에 작년에는 오후 3시에 출발하는 루프트한자를 이용했다. 아침에 여유있게 일어나 여유있게 공항으로 가고 싶은 마음 하나 때문에. 그렇지만 올해는 또 다시 중동 항공사를 이용한다. 유럽에 갈때는 한밤중에 출발하는 중동 항공사가 휴가 내기 힘든 직장인들에겐 단비같은 존재이며,각종 특가 행사도 많이 해서인지 자꾸 중동 항공사들을 선택하게 된다;;;


며칠 뒤 드디어 여행을 떠나는 날, 공항에서 겪을 피곤과 우울함이 벌써부터 눈에 선하다.

요 며칠 회사에서 극도로 힘든 순간을 겪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어제 오후엔 당장 옥상에 올라가 뛰어내리고 싶었으니 말 다했지.

인간들은 왜 종종 남을 괴롭히는 존재가 되어야 하는 걸까. 부모님이 이 세상에 그러라고 낳아놓은 것은 아닐텐데.


왠만하면 "며칠 후 여행을 생각하며 힘내자" 모드로 지내겠지만

회사에서 스트레스가 워낙 커서 그런지 지금은 만사가 다 귀찮다, 여행도 귀찮다. 주말에 짐도 다 싸놓고 여행 준비도 끝내야 하는데 손가락 하나 꼼짝 하기가 싫다. 


회사에 다녀야만 먹고 살 수 있는 내 처지가 지독하게 슬퍼진다(나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이 그렇게 살고 있지만...)

평소엔 그래도 "회사에 다니니깐 예쁜 그릇도 사고 좋아하는 음악가 공연도 가고 여행도 다니는거지!"하며 기운을 내는데

현재는 그런 것도 잘 안먹힐 정도로 회사생활이 괴롭고 질리는 시기.

지금은 그래도 10여일간의 현실도피라도 눈앞에 있지만, 여행 다녀온 후가 더 걱정이다. 그땐 아무 희망도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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