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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대단한 사치 - 시벨리우스 피아노 트리오 CD & The miniaturist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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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대단한 사치 - 시벨리우스 피아노 트리오 CD & The miniaturist

mooncake 2015. 10. 7. 12:05



헬싱키 근교도시 포르보 당일치기 여행을 마치고 내가 들린 곳은

헬싱키 음악당(Helsinki Music Centre)이었다.


헬싱키 시내를 누비고 싶은 마음도 없진 않았지만 너무 피곤했기에 한동안 넋놓고 앉아 있다가 

헬싱키 뮤직센터 안의 음반가게 Fuga 1960에서 시벨리우스 피아노 트리오 전곡이 들어 있는 CD를 산 다음

저녁 7시 공연 티켓을 끊고, 헬싱키 뮤직센터 안의 멋진 카페에서 커피와 시나몬롤을 저녁으로 먹었다.


장 시벨리우스의 Loviisa Trio가 들어 있는 CD는 Fuga 1960에도 딱 한 종류 뿐이었는데,

가격이 무려 47유로(현재 환율 기준 약 64,000원)나 해서 선뜻 사기엔 부담되는 금액이었지만,

시벨리우스의 본고장에서도 시벨리우스 피아노 트리오 전곡이 들어있는 CD가 흔하진 않으니 기회가 있을때 사기로 결정.

한국에 돌아와 떨리는 마음으로 아마존 및 다른 음반샵을 검색해봤는데, 

다행히 국제배송비를 제외하고도 핀란드 현지보다 살짝 비싸서 마음이 놓였다(좀 찌질..한가?ㅋㅋ)



에스토니아 탈린에서의 두번째날 아침엔,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 나와 귀에 이어폰을 꼽고 시벨리우스 피아노 트리오 Lovisa를 들으며 동네를 발길 닿는대로 산책하다가

우연히 눈에 띄인 서점에 들어가 한참 구경한 다음, Jessie Burton의 소설 "The Miniaturist"를 샀다.

(근데 귀국편 비행기에서 읽을 요량으로 샀으면서 수화물로 부쳐버렸다는 게 함정)

탈린에 고작 이박삼일 머무는 사람치고는 지나치게 여유를 부리는 행동이다 싶으면서도 참 즐겁고 행복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이만한 사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 좀 다녀봤다는 사람들은 종종 "찍고 다니는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진정한 여행의 맛을 모른다며 비웃지만,

찍고 다니는 사람들도 사실 좋아서 그렇게 찍고 다니는 건 아닐거다.

몇년에 한번 힘들게 시간 내고 비싼 돈 들여 유럽에 가는데 볼건 많고 시간은 없으니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아닐까?

나는 거의 매년, 올해는 두번이나 유럽에 갔는데도 매번 시간이 부족해서 허덕허덕하는데 어쩌다 한번 가는 사람은 오죽할라구...


나 역시, 이번 여행에 여행 기간 대비 비싼 돈을 들이고 또 아주 힘들게 힘들게 휴가를 내서 여행을 왔다는 점을 생각하면 

하나라도 더 보고자 종종걸음을 했어야 하겠지만, 그 대신 이렇게 유유자적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야말로, 

나만의 대단한 사치를 누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봤을땐 최고급 호텔에 묵은 것도 아니고, 비싼 스파를 받거나, 명품 가방을 산 것도 아니면서,

그저 씨디랑 책을 산 게 대체 무슨 사치냐고 하겠지만ㅎㅎ

나에겐 "이 유유자적한 시간" 자체가 대단한 사치이자, 내 자신에게 큰 선물을 준 셈이었다^^



그러니 이제 다시 억지로 기운을 짜내서라도

회사를 열심히 다닙시다.

근데 너무 힘들다.

ㅠㅠ

한글날 연휴만 목이 빠져라 기다리는 신세. 

(세종대왕님 정말 감사합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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