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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센 첼로줄에 얽힌 추억 (Larsen Strings)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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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센 첼로줄에 얽힌 추억 (Larsen Strings)

mooncake 2015. 11. 4. 20:32

 

나는 대학교때도 계속 첼로 레슨을 받았다. 그리고 참 얼척없게도 그 당시 다니고 있던 학교를 졸업한 다음 음대로 편입하는 꿈도 품고 있었다. 애초에 음대로 진학할 생각을 안하고 왜 일반 대학교를 졸업한 후에서야 음대에 갈 생각을 했냐면, 어릴때부터 막연히 음악으로만 먹고 살 자신은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재능에 대한 확신이 없기도 했거니와, 좋아하는 일이 생업이 되면 행복하지만은 않을 것 같았다. (지금 와선... 뭔가 다 후회되지만, 이건 사실 결과론일 뿐이다. 현재가 만족스럽지 않으니까.)

 

첼로 레슨비는 부모님이 내주셨지만, 그 외에 들어가는 부수적인 경비는 내 용돈으로 충당했는데 - 활 수선비, 첼로줄 구입비, 악보 구입비 등등 - 따로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는 대학생 용돈으로는 첼로줄 하나 사는 것도 부담이 만만치 않았다. 그 당시 전공자들이 주로 쓰던 "라센"이나 "스피로코레" 대신 비교적 저렴한 "야가" 스트링을 썼는데, 야가 스트링조차도 한번 끊어지면 "오늘은 점심에 라면만 먹어야 하나?ㅠㅠ"라고 생각할 정도로 부담이 컸다. 

 

그런 나에게 첼로 선생님은 다양한 스트링을 써보는 게 좋다며 본인이 쓰시던 첼로줄을 갖다주시기 시작했다. 비전공자인 나는 첼로줄이 끊어질때까지 쓰지만, 선생님은 첼로가 늘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도록 하니, 선생님이 쓰시던 줄도 나에겐 제법 쓸만했기 때문이다. 특히 라센 첼로스트링은 밀랍봉인까지 붙어 있어서 내가 쓰던 스트링과는 케이스부터 포스가 달랐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고마웟던 건 역시 선생님의 살뜰한 마음 씀씀이었다. 이게 흔한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의 경험으로는, 나에겐 모두 3명의 첼로 선생님이 계셨는데, 그 중에서 쓰던 첼로줄을 챙겨다주신 건 이 분이 유일했다.

 

첼로를 그만둔진 오래되었지만, 섬세한 첼로 연주, 화려한 미모에다 여장부 같은 성격을 갖고 있어 종종 나의 인생 멘토 역할까지 해주셨던 첼로 선생님이 요즘도 자주 생각이 난다. (뛰어난 첼로 실력에 아름답고 성격까지 좋다니 너무 완벽한 거 아니냐고? 심지어 요리까지 잘하셨다!!! 그당시에도 그랬지만 지금 생각해도 사기캐...^^) 선생님의 첼로 연주CD를 가끔씩 꺼내 들으며, 코 앞에서 선생님의 연주를 듣던 시절을 떠올린다. 선생님의 가르침, 때로는 따끔했던 훈계(주로 연습 부족 관련), 선생님이 챙겨다주셨던 라센 스트링, 내가 좋아하는 곡을 직접 첼로용으로 편곡해서 주셨던 악보들, 선생님이 만들어서 레슨 시간에 가져다주셨던 간식(요리가 취미셔서^^), 선생님이 빌려주셔서 듣던 음반들, 언젠가 첼로가 고장났을때 현악 스튜디오에 같이 가주신 일, 선생님이 사주신 커피, 또 선생님이 보여주신 공연까지 나에겐 모두가 소중하고 따듯한 추억이다. 이렇게 쓰고 보니깐 진짜 좋은 선생님이셨네!

 

그래서 난 아직도, 이렇게 선생님이 챙겨다주신 라센 첼로 스트링 케이스를 버리지 못하고 보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윗쪽 흰 봉투가 내가 주로 쓰던 야가(Jargar)

아랫쪽 미색 봉투가 선생님이 챙겨주시던 라센(Larsen)

둘다 덴마크 산이다.



라센은 뒷부분이 밀랍봉인되어 있어서 뭔가 포스가 넘쳤다. 물론 내 기준이지만...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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