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wanderlust

짜릿해, 늘 새로워, 도쿄가 최고야 본문

Trivia : 일상의 조각들

짜릿해, 늘 새로워, 도쿄가 최고야

mooncake 2016. 2. 12. 14:05

친구와 봄에 일본 여행을 가기로 했다. 내가 딱 하루만 휴가를 낼 수 있어서 고민의 여지 없이 비행시간이 짧고 공항과 도심이 가까운 후쿠오카로 결정하였으나, 문제는 나나 친구나 도쿄를 너무 좋아하는 바람에 서로 눈치를 보다가 "나 사실은 도쿄에 가고 싶어" "나두나두"라는 쌍방 고백을 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2박3일짜리 도쿄 여행은 역시 너무 짧아서 고민 또 고민 중. 그나마 하네다로 들어가는 비행기표를 구하면 다행이겠는데 늘 그렇듯 시간대가 안맞거나 너무 비싸거나...... 그렇게 고민하는 새 적당한 가격의 비행기표는 다 사라지고 벚꽃시즌이다보니 호텔도 만실 직전이라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만개 예상시즌의 교토 호텔은 이미 전멸함ㅋ)

도쿄를 제일 많이 갔는데도 여전히 도쿄가 제일 좋은 이유는 환자백수 시절 일본에 유학 중이던 친구 집에서 지냈던 나날에 대한 그리움이 단단히 한 몫하는 것 같다. 근데 웃긴 사실은, 그 당시엔 그 순간이 엄청나게 재미있진 않았다는 거다. 위에도 썼듯 "환자" 시절이었으니 짐의 절반은 약봉지로 채워간 나는 제대로 돌아다니지도 못했고, 특히 친구가 학교에 가 있는 사이엔 나 혼자 친구가 살고 있던 맨션의 다다미 바닥에 누워 일본 방송을 보다가, 친구의 노트북으로 인터넷에 잠시 접속했다가 느리디 느린 인터넷 속도에 치를 떨며 노트북을 닫고, 다시 바닥에 누워 창문 밖 하늘을 바라보며 도쿄에서 구입한 씨디를 틀어놓고 뒹구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배가 고파지면 친절한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맨션 옆 작은 가게에 가서 빵을 하나 사다 먹었다. 닛뽀리의 주택가 풍경은 매우 지루하고 심심했다. 다다미방에 누워 바라보는 여름의 구름과 하늘이 좀 근사했다는 걸 빼면, 특별한 구석이 전혀 없는 시간들이었다. 친구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며 하는 일 없이 멍하니 하루를 지내거나, 몸이 안좋아진 것 같아 덜컥 겁이 나면 난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가 싶어 우울해지기도 했다. (지금도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도쿄에 간다고 할때 부모님이 긴 고민없이 보내주셨던 것이다. 내가 부모 입장이라면 몸이 성치 않은 애가 외국에 가는 게 반갑지 않았을 듯 한데, 나중에서야 들은 얘기지만 내가 일본 친구네에 다녀오겠다고 하자 "이제 쟤가 나으려나보다"는 생각이 들어 기쁘셨다고 한다. 막상 도쿄로 떠나는 날엔 걱정이 더 크셨겠지만 말이다.)

​물론 늘 방구석에서만 지낸 건 아니다. 컨디션이 좋은 날은 학교 또는 아르바이트를 빼먹은 친구와 함께 도쿄를 쏘다녔다. 늦은 밤 자전거를 타고 밤거리를 달려 24시간 영업하는 강가 옆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서 파르페를 먹고, 집 근처 중고 음반 가게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씨디를 사들이고, 이케부쿠로에서 광란의 장난감 쇼핑을 하고, 하라주쿠와 시부야와 우에노 그리고 아사쿠사를 쏘다녔다. 맛있는 음식을 실컷 먹고, 여행가방을 하나 더 살까 고민할 정도로 쇼핑도 잔뜩 하고, 부유한 일본인 부부의 댁에 초대되어 근사한 저녁을 얻어먹는 등 나름 화려한 시간도 보냈지만, 도쿄 체류 막바지엔 친구도 나도 현금이 똑 떨어지는 바람에 역앞에서 파는 저렴한 규동과 맥도날드의 행사 메뉴- 일컨대 100엔짜리 버거라던가-들로 배를 채우기도 했다. 물론 카드는 있었지만, 생각없이 현금을 탕진해버리는 바람에 도쿄를 떠나기 전 날엔 카드를 받아주는 시내까지 밥 사먹으러 갈 차비도 없었다ㅋ 나는 중고 CD를 사들이느라 정신줄을 놓았었고, 내 친구는 알바비가 제때 입금되지 않았던 탓이다 - 라지만 뭐, 둘다 넋놓고 돈을 쓴 탓이다. 그때의 그 친구와 나는 같이 있으면 너무 편하고 좋아서 현실감각은 저 멀리로 사라져버리곤 했었으니까. 결국 다음날 나리타 공항까지 갈 차비도 없다는 것이 확인되자, 친구는 학교 친구에게 꿔준 돈을 긴급히 회수하러 갔고, 약 한시간 후 두 손에 모스 버거 봉지를 들고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심심하고 지루하고 힘들고 가끔 신났던 그때의 그 도쿄가 그리운 건 단지 그 순간이 그리워서만은 아닐 것이다. 내가 정말 그리운 건 비록 몸은 많이 아팠어도 어렸고, 지금보다 덜 좌절했었고, 지금보다 확실히 더 반짝반짝 빛났던 그때가 그리운 것일테다. 즉 도쿄는 지금보다 많이 어리고 훨씬 더 많은 가능성이 열려 있었던(혹은 열려 있다고 믿었던) 나의 어느 한 순간이 영원히 봉인된 장소이기 때문에 가도 가도 또 그리운 것이다.

그래서 결론은 도쿄냐 후쿠오카냐... 그것이 고민이로다. 

'Trivia : 일상의 조각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리운 포르투  (38) 2016.02.22
여행블로거가 되고 싶지만 현실은  (33) 2016.02.16
여행기를 쓰고 싶은데 + 잡담  (24) 2016.02.04
지인의 필요성  (16) 2016.02.03
지극히 개인적인, 2016년 1월 일기  (12) 2016.01.24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