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lust
무레 요코 - "세평의 행복, 연꽃빌라" & "일하지 않습니다" - 일하지 않고 사는 법 본문
몇 년전 누군가가 쓴 글을 읽었다. 회사생활이 싫어서, 회사를 일찍 그만두고 그동안 모아놓은 돈으로 평생 살기 위해 돈 대신 시간을 쓰는 삶을 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예를 들면 텃밭에 야채를 길러 반찬으로 삼는다던지, 버스나 지하철을 타는 대신 걸어다니고, 문화생활은 동네 도서관이나 무료 음악회를 적극 활용한다던지.
나 역시 미치게 회사가 다니기 싫었던지라, 회사를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기 위해 돈을 열심히 모아서 남들보다 빠른 은퇴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으나 결과는...... 삼일도 되지 않아 포기. 맛있는 식당에 못가고, 예쁜 옷도 못사입고, 좋아하는 연주회에 가지도 못하고, 무엇보다 여행을 떠나지 않는 삶이란 살아도 산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내 기준. 사람들마다 삶의 우선순위는 다르니까.) 회사생활로 받는 격렬한 스트레스도 싫지만, 돈을 쓰지 않고 사는 삶 역시 지나치게 어둡고 단조롭게 느껴졌다.
그러다 작년에 읽게 된 책, 무레 요코의 “세평의 행복, 연꽃 빌라”, 그리고 속편인 “일하지 않습니다”. 이 책 역시 회사를 그만두고 그동안 번 돈으로 평생 살기 위해 초절약모드로 살아가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45세에 은퇴한 그녀가 매월 쓸 수 있는 돈은 10만엔. 이 돈으로 월세도 내야하므로 그녀는 “이런 곳에도 사람이 사나 싶을, 다 쓰러져가는, 그러나 살다보면 아주아주 나쁘지는 않은” 도쿄의 월세 3만엔 짜리 집을 구하고, 화려했던 커리어우먼의 삶을 뒤로한 채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데, 이 과정의 묘사가 아주 구체적이다. 가족들의 당혹스러워하는 반응과, 새로운 삶에서 포기해야 하는 많은 것들, 또 냉난방 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오래된 목조가옥에서 주인공이 견뎌내야하는 사계절의 온도와 기후는, 나처럼 추위를 싫어하는 사람에겐 그 묘사를 읽는 것만으로도 참혹할 정도였다. 그래도 소설이 진행됨에 따라 조금씩 환경을 개선해나가고, 그 생활에서 나름의 즐거움과 내적 평화를 찾는 주인공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즐거웠다.
나도 “회사를 다니지 않고 최소한의 돈으로 생활하는 삶”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있기 때문에 주인공의 상황에 감정을 이입해가며, 또 내 생활과 견주어가며 진지하게 책을 읽었다. 그래도 주인공은 몸이 건강해서 병원비가 거의 들지 않고, 나처럼 식탐이 많지도 않고, 딱히 무언가를 수집하는 취미도 없으며, 여행도 “가면 좋지만 안가도 크게 아쉽지는 않은” 성격이기에 최소한의 비용으로 생활하는 삶에 만족해하고 있었으나 나의 경우 식탐과 수집까지는 일정 부분 포기하더라도 여행은 포기할 수 없고, 병원비 지출 역시 피할 수 없으니 그녀처럼 살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이가 더 들면 취향이 어찌 바뀔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게다가 회사생활이 전반적으로 싫기는 하지만, 매일 매순간 죽을만큼 싫은 것은 아니고, 또 회사 사람들 때문에 힘들어서 미칠 것 같은 적도 많았지만, 반면 회사에서 만난 좋은 사람들도 많으니 회사생활에 꼭 나쁜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정말 솔직히 고백하자면, 회사가 그렇게 싫었는데도 이제 주변 지인의 상당수를 회사에서 만난 사람들이 채우고 있는 걸 보면(...) 회사를 그만두고 나면 나의 인간관계는 어찌되는건가 싶어 걱정될 정도. 또, 회사 때문에 무리해서 건강이 상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론 회사를 다니지 않으면 나태한 성격 탓에 생활 패턴이 엉망이 되어 오히려 건강이 더 나빠질 가능성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나의 오래전 환자백수 시절이 그랬듯이.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어차피 회사를 당장 그만둘 수 없어 억지로 짜내어보는 신포도일수도ㅎㅎㅎ)
비록 지금 당장 어떤 해법을 얻을 수는 없었을지라도, "세 평의 행복, 연꽃빌라"와 속편인 "일하지 않습니다"를 읽으며, 자신이 택한 삶을 꿋꿋하게 살아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는 것은 즐거웠다. 최근 미니멀리즘이 유행하고는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여전히 더 많이 성공하고 더 많이 누리고 더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을 바람직한 삶으로 생각하기 마련이니까, 그런 사회적 기대를 모두 놓고 다른 사람의 이목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의 모습이 좋았다. 아기자기하고 잔잔한 소설이니, 관심가시는 분들은 읽어도 후회하지 않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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