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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국경도시 벤티밀리아Ventimiglia에서 보낸 한 시간 본문

외국 돌아다니기/2017.10 Italy, Swiss & France

이탈리아의 국경도시 벤티밀리아Ventimiglia에서 보낸 한 시간

mooncake 2019. 9. 10. 14:00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프랑스 니스로 가는 가장 편한 방법은 Thello 열차를 타는 것이다. 밀라노에서 니스까지는 약 4시간 50분이 걸린다. 2년전 가을 밀라노에서 니스로 향할때도 응당 Thello 열차를 타야 했으나, 기차를 예약하기 전 나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으니, 그건 오전 Thello 열차 출발 시간이 7시, 11시 두개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밀라노 호텔에서 여유있게 짐을 싸고 나와 니스로 가기엔 11시가 딱 좋았다. 하지만 내가 니스로 향하는 날은 니스에서 일주일에 한번밖에 안열리는 살레야마켓 앤틱 벼룩시장이 있는 날! 11시 기차를 타고 니스에 도착하면 이미 벼룩시장은 끝난 뒤라, 무조건 7시 기차를 타야했다. 그러나 아무리 내가 묵는 숙소가 밀라노 중앙역 코앞에 있다고는 하나, 여행이 중반으로 접어들어 어느 정도 현지 시간에 익숙해진 시점에 새벽 일찍 일어나 짐을 싸고 나와 체크아웃 후 아침 7시 기차를 타는 건 몸에 너무 무리가 갈 것 같았다. (나는 여행 중 컨디션 관리를 일순위에 놓는다. 이건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치열한 고민 끝에 절충안을 택했다. 밀라노에서 니스까지 한번에 가는 Thello 기차 대신, 이탈리아 국경도시 벤티밀리아에서 프랑스 기차로 한번 갈아타야 하는 환승편을 택한 것이다. 이 기차는 9시에 출발해서 어느 정도 여유있게 나올 수 있었고, 니스에는 2시 30분경 도착 예정이라 아슬하긴 하지만 1시간 정도는 벼룩시장을 구경할 수 있었다. 내가 밀라노에서 니스로 가는 기차를 예약하던 당시, 기차 탑승일이 7일 정도 밖에 남지 않았는데도 왠일로 Thello 1등석도 할인티켓이 남아 있었다. 좌석도 편하고 기내식 서비스도 있는 Thello 1등석이, 시간도 더 오래 걸리고 무거운 짐을 이끌고 플랫폼을 이동하여 한번 갈아타야 하는 기차보다 더 싸서 속이 쓰렸지만 벼룩시장을 구경하려면 어쩔 수 없었다.


이쯤되면 여러분들은 내가 왜 구구절절히 밀라노에서 니스로 이동하는 방법에 대해 글을 쓰고 있는지 눈치채셨으리라.

그렇다. 하필이면 내가 밀라노에서 탄 벤티밀리아로 향하는 이탈리아 기차는 연착이 되었고, 벤티밀리아에서 니스로 향하는 프랑스 기차는 제 시간을 준수하는 바람에, 약 30분 가량의 갈아타는 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니스로 가는 기차를 놓쳤다. 이후 니스에서 근교 도시로 돌아다니는 동안 여러차레 프랑스 기차의 연착을 겪을때마다 왜 하필 그때만 그렇게 칼같이 시간을 지킨거냐며 계속 부글부글 이가 갈렸다. 그놈의 기차연착은 늘 이런 식이다ㅎㅎ 



이탈리아의 국경도시 벤티밀리아에서 프랑스 니스로 향하는 기차는 당시 약 한시간 간격으로 운행하였기 때문에, 다음 기차를 타기 전까지 나는 무거운 짐을 끌고 벤티밀리아에서 1시간을 방황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여행 중 벌어지는 온갖 돌발상황을 생각하면 1시간의 지연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때 나에게는 매우 치명적인 일이 되었는데, 왜냐하면 니스 벼룩시장을 구경할 수 없게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이렇게 될거였으면 밀라노에서 보다 더 여유있게 짐을 싸고 아침식사를 하고 나와 11시 Thello 1등석을 타고 편안히 니스로 갈 수 있었는데 이도 저도 아닌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뭐 어쩌겠나, 기왕 이렇게 된 거 일단 벤티밀리아 구경이라도 해보자며 무거운 짐을 끌고 역 바깥으로 나왔다. (얼핏 봤을때, 커다란 여행가방을 넣을 수 있는 코인락커는 없어보였고, 역 안의 가게에 들어가 짐 맡길 수 있냐고 물어보기엔 남아 있는 시간이 애매해서 귀찮았다.) 



햇살이 반짝이던 벤티밀리아의 첫인상은 두 단어로 정리할 수 있다. 남국 & 이국적!

2년전 10월 초의 밀라노도 꽤 날씨가 더워 낮에는 계속 반팔을 입고 다닐 정도였는데, 벤티밀리아는 밀라노보다 더 온도가 높고 햇살도 강렬했다. 무언가 밀라노와는 공기 자체가 달랐다. 남국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달콤하고 따듯한 공기, 그리고 곳곳에 이탈리아어와 함께 쓰여있는 프랑스어가 이국적인 느낌을 주었다. 분명히 아직 이탈리아에 있는데, 새로운 나라에 온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탈리아에 며칠 있었다고, 프랑스와의 국경도시에 와서 "이국적"이라고 느끼는 게 내가 생각해도 되게 웃긴 일 같은데 그때 기분은 그랬다. 비록 내 손엔 무거운 짐이 들려 있고 한낮의 강렬한 더위가 내 몸을 감싸고 벼룩시장을 못가게 됐다는 낭패감에도 불구하고, 이국적인 새로운 동네에 왔다는 기분은 내 마음에 즐거운 활기를 불러넣어 주었다. 



한낮의 벤티밀리아는 아름다웠다. 비록, 울퉁불퉁한 보도블럭 위에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가는 것은 너무 버겨운 일이라 기차역에서 그리 멀리 가지는 못했으나, 앤틱 & 빈티지 그릇 벼룩시장을 놓쳐 아쉬워진 마음에 어느 정도는 위로를 주는 풍경이었다.


여행이라는 게 그렇다. 내 마음대로 모든 일이 진행되지는 않지만, 예상치 못한 상황이 주는 발견이나 즐거움도 적지 않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그쪽이 오히려 더 추억이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인생 자체가 그러하듯이. 그러니까 모다? 일희일비를 멈추자. 마음처럼 잘 되진 않지만^^



* 딱히 궁금하신 분은 안계시겠지만 이후, 니스에 도착하여 호텔 체크인 후 혹시라도!하는 마음으로 황급히 달려간 살레야 마켓 앤틱시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나중에 쓰도록 하겠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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