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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nderlust

아빠의 옛날 레코드판 본문

찻잔과 오래된 물건

아빠의 옛날 레코드판

mooncake 2019.09.2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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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고 있던 우리집 레코드판(Vinyl)은 크게 두 종류였다. 하나는 요즘 턴테이블에서 들을 수 있는, 2층 거실에 오디오와 같이 있는 레코드판.
다른 하나는 지하실에 보관되어 있는, 요즘 턴테이블로는 재생이 불가능한 할아버지의 옛날 레코드판.(축음기판과 78rpm)

그.런.데.
오늘 지하실에서, 아주 오래전 레코드판 밖에 없는 줄 알았던 지하실에서, 요즘의 턴테이블로 재생이 가능한 ​70년대의 레코드판을 다량 발견했다. 일단 몇장만 가지고 올라 왔는데, 그 중 하나가 위에 올린 Billy Vaughn의 La paloma 음반이다. 저 음반 표지와 수록곡을 보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왜냐면 La paloma와 Brazil은 내 최애곡이기 때문이다.

이 음반은 과연 누구 것인가. 시기와 장르로 보아 할아버지의 것이 아님은 확실했다. 엄마는 본인이 이 집안에 시집 오기 전 물건이니 당연히 모른다고 하셔서, 혹시나 하고 아빠한테 물어봤더니 심드렁한 말투로 “내꺼지 누구꺼야”라고 하신다. 우어우어우어!!!!

근데 왜 우리 어릴 땐 안들었냐고 물어보니깐 일하느라 바빠서 들을 틈이 없었다고ㅠㅠ 아부지ㅠㅠ


우리집 식구 구성원 - 할머니 아빠 엄마 오빠 나 - 중엔 특별히 재즈나 라틴음악을 즐겨 듣는 사람이 없었기에 그냥 내 취향이 갑툭튀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어쩐지 오래전 Brazil을 처음 들었을 때 전혀 낯설지 않고 고향에 돌아간 기분이더라니. ​부모님 다 음악을 좋아하시긴 해도, 나처럼 음반을 무지하게 사들인다거나 하지는 않으셨기 때문에 나의 음악애호 성향은 할아버지로부터 바로 온 줄만 알았는데 아니었다. 지난번에 할아버지의 슈만 첼로 협주곡 78rpm 판을 봤을때도 내 취향의 뿌리를 발견해서 놀랐는데 이번엔 더욱더 놀랐다.

아무튼간에 아빠 본인은 수십년전의 레코드판을 보고도 별 감흥이 없어보이지만 - 갖고 싶으면 갖던가 아님 걍 버리던가라며 시크한 반응 - 꿈 많고 하고 싶은 것 많았던 청년이 바빠서 좋아하던 음악도 못듣게 되고 이젠 아예 무심해지기까지 겪었을 삶의 무게를 생각하면 참 짠한 기분이 든다.


지하실에서 Tom Jones의 음반도 갖고 올라왔다.


레코드판마다 납세필증지가 붙어 있어 당황함ㅋㅋ 이 시절엔 이랬나 봄.


그리고 레코드판의 뒷면. 의역과 오역이 난무하는 혼란스러운 한국어 번역 ㅎㅎㅎㅎ

할아버지의 축음기판과 78rpm은 “어차피 들을 수 없으니 아깝지만 정리하자”고 마음을 먹었었다. (제대로 재생되는 축음기와 78rpm 골동품 플레이어는 상당히 비싸고 구하기도 어려우므로). 그러나 아빠의 옛날 레코드판은 충분히 요즘 기기로 들을 수 있으니 버리기가 많이 아까운 생각이 든다. 물론 요즘 왠만한 곡은 다 유튜브로 들을 수 있으니 처분하는 게 맞긴 한데 (턴테이블이 있는 오디오도 너무 거대해서 없앨 생각이었다ㅜㅜ) 그래도 이 레코드판들은 계속 보관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어쩌면 좋을까.




*근데 나중에 산책하다보니 또 그런 생각도 들더라.
원래 사람은 취향과 취미가 계속 변하기 나름이지 않나. 내가 한때 좋아하다 내팽겨쳐둔 취미의 흔적(=이런 거 너무 많아서 일일이 셀 수 없음ㅎㅎ)을 나중에 혹시 조카들이 발견하게 되면, 먹고 사느라 바빠서 멀어진 거 아니고 걍 관심사가 이동해서 멀어진 건데 괜히 오늘의 나처럼 “우리 고모 사는 게 힘들어 취미 생활도 실컷 못하고ㅜㅜ” 라며 괜히 찡해할지도 모른다는ㅎㅎ 미래의 성인이 된 조카들아 그런 거 아니여... 그냥 고모가 하고 싶은 게 많아서 그랬어. (근데 회사 다니는 게 힘든 건 맞아...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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