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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싸이월드 BGM

mooncake 2020. 6. 19. 20:30

요즘 싸이월드 백업 문제가 소소히 화제가 되는 걸 보면서 옛날 생각이 났다.

싸이월드를 열심히 하진 않았는데, 그래도 주변인들과 1촌을 안맺을 수는 없으니깐, 도토리를 사서 미니홈피도 꾸미고 좋아하는 음악들을 BGM으로 깔아놓긴 했었다. 


여담이지만 나는 현실의 지인들과 교류하는 비중이 높은 SNS는 성격에 잘 안맞는 것 같다. 싸이월드가 그랬고, 카스가 그랬고 (카스는 한참 붐이었을 때 나름 열심히 했었는데 회사사람들에게 사생활 노출이 너무 많이 되니까 부담스러워서 점점 안하게 됐다), 인스타그램은 10년 됐지만 애초부터 연락처 연결을 하지 않아 인친 중에 현친은 한명도 없다. 주변 사람들이 물어봐도 걍 안한다고 한다 (미안해... 근데 어차피 활동이 거의 없어서) 

절대다수의 익명과 교류하는 블로그가 제일 편한 이유는 뭘까? (몇분 정도의 친한 블로그 이웃분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접속은 검색을 통한 1회성 방문이 대부분이니, 교류라기보다는 일방적인 수다에 가깝지만.)


싸이월드라고 하면 나는 BGM으로 설정해 뒀던 잉거 마리의 노래가 제일 먼저 생각난다.



Inger Marie Gunderson - Will You Still Love Me Tomorrow


그리고 아래 사진과 이동진 영화평론가의 글도 함께 떠오른다. 미니홈피에 스크랩해뒀던 글인데, 어느 시점 이후로는 항상 제일 앞에 떠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제목 : 도망 


“담백한 이별이었다.

여러가지로 이유를 댈 수 있지만, 사실은 단 하나 뿐이었다.

내가 도망쳤다.”

중세 독일의 전설에 따르면,

바덴 지방의 어느 젊은 백작이 덴마크를 여행하다가

아름다운 성의 정원에서 두 아이와 함께 놀고 있는

오라뮨데 백작 부인을 보고 한 눈에 반합니다.

그는 그 성에 머물면서

남편을 잃고 아이들과 살아가던 오라뮨데 백작 부인과

깊은 사랑을 나누게 됩니다.

시간이 흘러 고국으로 돌아가야 할 순간이 왔을 때 그는

“네 개의 눈이 있는 한 당신을 바덴으로 데려갈 수 없다오.

네 개의 눈이 사라지면 반드시 당신을 데리러 오겠소”

라는 말을 남기고 떠납니다.

그때 네 개의 눈이란 자신의 부모를 뜻하는 말이었지요.

집으로 돌아간 그는

반대할 줄 알았던 부모로부터 의외로 쉽게 허락을 받자

기쁨에 들떠 덴마크로 달려갑니다.

그런데 그는 그곳에서 오라뮨데 백작 부인이

아이들을 살해한 뒤 죄의식에 몸져 누운 채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광경을 목격합니다.

백작 부인은 ‘네 개의 눈’이

새로운 사랑에 방해가 되는 아이들인 걸로 오해해

끔찍한 일을 저질렀던 거지요.

자초지종을 알게 된 독일 백작은 말을 타고 필사적으로 도망칩니다.

그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한 그 참혹한 사랑으로부터 말입니다.

결국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우리가 도망쳐 떠나온 모든 것에 바치는 영화입니다.

한 때는 삶을 바쳐 지켜내리라 결심했지만

결국은 허겁지겁 달아날 수 밖에 없었던 것들에 대한

부끄러움과 민망함이 담겨 있는 작품이라고 할까요.

두려움 때문일 수도 있고 권태나 이기심 탓일 수도 있겠지요.

동생이 되물었듯, 츠네오는 그저 지쳤던 것일 수도 있고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누군가는 다른 누군가를 떠나갑니다.

모든 이별의 이유는 사실 핑계일 확률이 높습니다.

그런데, 그게 어디 사랑에만 해당되는 문제일까요.

도망쳐야 했던 것은

어느 시절 웅대한 포부로 품었던 이상일 수도 있고,

세월이 부과하는 책임일 수도 있으며,

격렬하게 타올랐던 감정일 수도 있을 겁니다.

우리는 결국 번번이 도주함으로써 무거운 짐을 벗어냅니다.

그리고 항해는 오래오래 계속됩니다.

그러니 부디,

우리가 도망쳐 온 모든 것들에 축복이 있기를.

도망칠 수 밖에 없었던 우리의 부박함도 시간이 용서하길.

이 아름다운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마지막 장면에서

처음으로 머리를 깨끗하게 묶은 조제의 뒷모습처럼,

결국엔 우리가 두고 떠날 수 밖에 없는 삶의 뒷모습도

많이 누추하진 않기를.

<이동진 기자의 시네마 레터 중에서>


항상 모든 것들로 도망치고 있었던 당시의 나에게 위안이 되었던 글.



Weather Report - Havona


워낙 오래전이라 대부분의 싸이월드 BGM 리스트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그래도 생각나는 몇곡이 더 있다. 웨더 리포트의 하보나도 그 중 하나다. 

지금 생각하니까 이 곡을 누가 들어준다고 굳이 돈 주고 사서 해놨나 싶은데(ㅋㅋㅋㅋ),

원래 그 나이가 그런 나이이지 않은가, 세상에 내 취향을 소리쳐 지르고 싶어하던.

(나만 그랬나?;;)



Qypthone - Tension Attention, Please


큅쏜의 이 노래도 빼놓을 수 없다. 한때는 정말 하루도 안빼고 듣던 곡인데 오랜만에 찾으려니 당췌 생각안나서 시부야케이 곡들을 한참 뒤졌다. FPM, Hi Posi, Yukari Fresh 까지 거치고 나서야 연관검색어로 Qypthone이 떴다. 


딱히 돌아가고 싶은 시절은 아닌데 그래도 어렸던, 젊었던 날들이니까 또 살며시 그립기도 하고, 여러가지 만감이 교차한다. 엄청나게 신중히 싸이월드 BGM 리스트를 설정했던 기억은 나는데 위에 올린 세 곡 외에 또 어떤 노래들이 있었는진 기억이 안나고, 싸이월드에 접속해봐도 옛날 BGM들은 사라져버렸고, 내 계정 아이디와 비번을 몰라서 비공개로 해둔 사진을 볼 수도 없다. 이제와서 굳이 백업하고 싶은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많이 그리운 추억도 아니지만.


지금까지 지나온 순간들을 돌이켜보면 인생은 정말 짧다는 걸 새삼 느낀다.

눈 깜짝할 사이에 할머니가 되어, 지금 이 순간을 또 회상하고 있으려나. 그땐 블로그를 열심히(?) 했는데, 어쩌고 하면서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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