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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ivia : 일상의 조각들

나의 피아노

mooncake 2019. 11. 24. 22:30

​드디어 피아노 조율 보관을 맡겼다. 원래는 임시집에 둘 생각이었는데, 이사 때 문제가 생기는 바람에 본가에 되돌려 두었다가 지난 금요일에서야 떠나 보내게 되었다. 사진은 도착 후 작업장에서 찍어 보내주신 거다. 

이사를 안 다녀서, 외관상으로 큰 흠이 없고 평생을 곱게 지내온 피아노인데 최근 두달간 수난이 잦았다. 9월말 이사 때 임시집에 가져갔다가 사다리차를 연결한 창문에 끼는 바람에 마음이 너무 아팠는데, 이번에 피아노 업체에서 가져가실 땐 일반 이사업체보다도 피아노를 막 다뤄서 식겁했다. 피아노를 내가는 과정에서 피아노가 긁혔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어차피 리폼 진행할 거니까 괜찮다고는 하는데 피아노 주인 마음은 괜찮지 않거든요?ㅠㅠㅠㅠ 직업적으로 피아노를 매일 다루는 분들 입장에선 일상인지 모르겠으나, 나는 마음의 상처를 크게 입었다. 이럴까봐 내가 피아노 떠나 보내기 싫었는데, 부디 작업장에선 잘 다뤄주시기를 바라는 마음 뿐이다. 

피아노가 작업장에 도착한 뒤 사장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나보고 피아노 전공자냐고 물으신다. 아니라고 했더니 그럼 최소한 체르니 50까지는 다 치지 않았냐고 재차 물으신다. 요는 피아노 해머의 마모 상태가 심하다는 것. 사실 나는 연식에 비해 피아노 사용량이 적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였다. (내가 초등학교 때는 나름 열심히 살았나보다. 그러나 이 얘기를 엄마와 오빠에게 했더니 둘다 피식 웃음...ㅋㅋㅋㅋ) 아무튼 피아노 해머 마모 때문에 처음 들었던 견적보다는 비용이 추가된다고 하셨다. 어쩌겠는가. 이미 피아노는 보내놨는데. 잘 고쳐주시기를 바라는 마음 뿐이다. 

피아노의 외형에 대해서는, 요즘은 화이트 리폼이 대세인 듯 하나 나는 기존의 원형을 최대한 유지하고 싶었다. 내 피아노는 그리 흔치 않은 와인색 유광인데, 다른 업체 사장님에게 듣기로는 유광 가공은 비용이 훨씬 비싸다고 한다. 공정이 까다롭고 관리도 어려워 요즘은 고급 피아노에나 사용하는 기술이라고.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원래 색은 유지하되 무광으로 하기로 했는데, 현재의 느낌이 사라질까봐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최근 몇달 동안 결과와 품질을 보장받을 수 없는 거래에 계속 노출되다보니 스트레스가 크다. 아무리 인터넷 검색을 하고 주변 사람을 통해 정보를 수집해보려 한들 쉽지 않았다. (새 집 건축설계 계약, 전세 준 집 보수공사, 임시집 거주 계약, 이사 서비스, 기타 수리, 화재보험 가입, 피아노 조율 및 보관, 집에 있던 오래된 물건들을 정리하기 위한 중고거래 등등등) 마음 졸이고 고민한 것만큼 결과가 좋기만을 바랄 뿐이다. 

안녕 나의 피아노, 부디 몇달 뒤 좋은 모습으로 다시 만나. 

P.S. 제발 내년에 "작년에 피아노를 보내고 많이 속상했지만 모두 기우였음. 내 피아노 완전 좋아져서 돌아옴! 00 업체 사장님 감사해요!" 이런 후기를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은 꼭 위험한 물가에 자식 내보낸 심정이랄까, 자식을 인질잡힌 심정이랄까... ㅠ.ㅠ

P.P.S. 이 글을 보면 아 이 사람 피아노 자주 연주하고 애착이 크구나 라고 느끼겠지만 다 풰이크임 ㅋㅋㅋㅋ 사실 연주 자주 안함요;; 그나마 빈 집에 덩그라니 피아노를 놔두고부터는 거의 매일 가서 피아노를 치긴 했다. 어쩐지 짠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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