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lust
그냥사소한잡담 본문
인생 참 잘못 살았다는 진하고 거한 현타는 가끔 사소한 것에서 출발한다.
새 집 욕실 창문 누수 때문에 월요일 아침 일찍부터 공사를 하고, 정리하고, 한숨 돌린 뒤 오후 늦게 출근했는데, 그동안 집 짓느라 + 인테리어 망해서 쌓인 원한과 울분이 다시 욱하고 올라왔다. 과거로 시간을 돌린다면 절대 집을 새로 짓지 않을 거다. 애써 흐린 눈을 하고 있지만 집은 마음에 안들지, 회사는 일이 쌓여 있지, 요즘 내 인생은 너무 재미없지, 하다못해 며칠 전 새로 한 머리도 망했고, 앞으로도 인생이 나아질 전망은 매우 어두워보이지... 이런 게 이생망인가요 ㅠ.ㅠ
여튼, 물리적인 의미에서의 집이 너무 짜증나서 확 휴직하고 여행이나 갈까 생각을 했지만 (1) 지금 부서에서 그런 짓 하면 완전 욕먹음 (2) 돈이 없음 (3) 유럽에서 마스크 쓰고 다니다가 테러 당할까봐 겁남
물론
(1)은 사실 아주 큰 문제는 아님. 엄청 미안하긴 하지만 회사 사람들과 평생 함께 할 건 아니니깐. 가급적이면 남에게도 좋고 나에게도 좋은 게 좋겠지만 꼭 선택해야 한다면 내 인생이 제일 중요함 (2)도 해결 방법은 있음. 묶여 있는 돈들을 푸는 건데 투자 측면에선 매우 비효율적이지만 정 떠나고 싶다면 그렇게 해야지 (3)마스크 쓰고 다니다가 테러 당하는 것도 무섭지만 안쓰고 다니다가 타지에서 혼자 있는데 코로나 걸리는 것도 무섭...지만 역시 가고 싶으면 가야지. 그러나 늘 그랬듯이 못 떠나는 이유는 결국, 그래봤자 고작 6개월여의 현실도피가 끝나면 변한 것 하나 없는, 아니 오히려 더 나빠져 있는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은 부서 사람들과 사이가 좋지만 갑자기 빅엿을 날리고 외국으로 튀면 6개월 뒤 상당수 구성원과의 관계가 삐걱거릴 것이며, 여유자금은 지금보다 더 없는 데다가, 집이 저절로 혼자 인테리어가 좋아져 있을리도 없고... 아무튼 암울하다 암울해.
인생에 대한 현타가 작은 것에서 출발하듯 마음이 누그러지는 것도 역시 작은 것에서 시작한다. 동기 언니에게 집 공사 때문에 휴가 쓰고 늦게 출근했다고 말하자 "메신저에 없길래 난 또 네가 아픈 줄 알았지"라는 말에, 아아 그래 내 몸이 아픈 것보단 집이 아픈 게(?) 훨씬 낫지 싶고. 하늘같이 까마득한 선배님이 어디 아파? 왜 이렇게 기운이 없어?라고 건넨 다정한 한마디에 또 위로를 받는다. 그나저나 회사에선 감정을 숨기려 노력하는데, 그래도 여전히 티가 나나 보군. "사실은 기분이 안좋은데, 그렇게 티가 났나요ㅠㅠ?" 라고 여쭤보니 아니라고, 다만 평소엔 밝은데 오늘은 조용하길래 걱정이 되어서 물어보셨단다. 그렇게 둘러둘러 말해주시는 마음씨도 고맙다.
여튼 기분 나쁜 일은 백가지쯤 있고 기분 좋은 일은 두가지쯤 있는, 그런 나날들이다. 내 인생만 그런가 아님 남들도 대체로 이러한가. 내 인생이 진짜 문제인가 아님 내 마음이 문제인가. 스스로를 불행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있는 중인가? 확실한 것 하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한없이 작아보이고 못가진 것은 한없이 커보인다는 것이지만, 아무리 그걸 알아도 나쁜 일들이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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