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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하게 된 일들 + 인생푸념 본문

Trivia : 일상의 조각들

백수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하게 된 일들 + 인생푸념

mooncake 2019. 8. 28. 13:00

제목은 거창한데 내용은 별 거 없다.

어차피 백수 기간도 얼마 남지 않았고, 백수는 백수인데 해야 할 일이 있는 백수라 그리 마음이 편친 않았었다. 정작 그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진 않았고 계속 마음만 불편했다는 게 문제지만.


예전엔 백수가 되면 여행도 마음껏 다니고 회사에 매인 직장인일 때 할 수 없었던 일들을 하고 싶었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다. 심지어 블로그도 회사 다닐때보다 더 못하고 있으니... (밀린 여행기는 영영 다 못쓰려나보다)


그래도 백수가 되고 나서야 오랜만에, 혹은 처음으로 한 일들이 몇가지 있다.


- 타로점 보기

오래전 타로카드에 홀릭해서 열심히 타로점을 보고 남들 타로점도 봐준다고 설치던 시기가 있었다. 정말 오래전 일이다. 완전히 잊고 지내다가 방에 보관하고 있던 타로카드 세 세트를 발견하고 오랜만에 타로점을 봤더니 뭔가 기분이 새로웠다. 현재 상황, 현재 고민들에 대해 타로점을 봤는데 결과가 나쁘지 않아서 마음에 위안이 되어주었다. 근데, 집에 타로카드가 있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세 세트나 샀었는지는 몰랐다;;; 


- 알베르 카뮈의 "추방과 왕국" 읽기

대학교 1학년 불어수업시간에 "추방과 왕국" 중 "La Femme adultère(간부)" 를 축약본으로 접했었다. 당시 내 나이 19살, 전체적인 내용은 크게 와닿지 않았으나 인상적인 구절이 여러개 있었다. 예를 들자면 Mais la monotonie de leur vie conjugale et le manque d'activite physique et mentale oppressaient Janine - 그러나 부부 생활의 단조로움과 정신적, 육체적 활동의 부족은 Janine을 짓눌렀다 ; 단조로운 삶과 육체적 정신적 활동의 부족이 사람에게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 깊이 공감했고 이후 어떤 사유로든 육체적 정신적 활동이 부족해질때마다 이 문장이 떠오르곤 했다.


축약본 대신 원본을 읽어봐야지-라는 생각은 종종 했으나 그 긴 시간이 지나고서야 드디어 추방과 왕국 전체를 읽게 되었다. 정말로 반갑고 즐거운 독서였다. 

*물론 프랑스어 원본은 아니고 김화영 교수 번역본으로 읽었고 김화영 교수는 원제 L'exil et le royaume를 "추방(*일단 1차원적으로 떠올리게 되는 제목)과 왕국" 대신 "적지와 왕국"으로 번역했다. 물론 그 이유도 책에 나와 있으니 궁금하신 분들은 한번 찾아보시라^^ 요즘 내 처지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제목이다.


- 헤어트리트먼트 전기캡 사용

예전에 머리결 때문에 고민할 때 누군가 전기 헤어캡을 쓰면 효과가 정말 좋다고 해서 샀다.

샀는데

샀는데

샀는데

...

늘 그렇듯이 나의 게으름 탓에 5~6년 이상 한번도 안쓰고 새상품인 상태 그대로 방 구석에 쳐박혀 있었다.


사실 이게 정말, 귀찮다. 머리 감고 샤워하고 나와 머리를 어느 정도 말린 뒤 헤어트리트먼트를 도포하고 비닐캡 쓰고 그위에 전기캡을 쓴 뒤 15분에서 20분 가량 꼼짝하지 않고 있다가 다시 씻어야 하니까.

아무래도 앞으로도 영영 안쓸 것 같아서 그냥 버릴까 하다가 에이, 기왕 버릴 거 한번은 써보고 버리자!싶어서 뜯어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집에 비닐캡도 가득, 온갖 헤어트리트먼트제 에센스 앰플도 가득해서 그 물건들을 소진하자는 계략도 있었다. 써보니깐, 귀찮기는 한데 확실히 머리결은 좋아지는 것 같다 +_+ 앞으로 몇번이나 더 쓸진 모르겠지만, 현재까지 세번 썼고, 미용실 클리닉 가격을 생각하면 다섯번만 써도 본전은 뽑는 게 아니냐는 자기 합리화 중이다ㅎㅎ


내가 이래서 LED 마스크도 안샀... 사봤자 쓸리가 없어서.... 근데 내 주변 사람들은 다들 자주 사용한다고 하더라... 역시 나만 게으른 거였어. 


- 옛날 핀란드 펜팔에게 편지 보내기

어릴 때 해외 펜팔을 조금 했었다. 그 중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게 2~3년 정도 꼬박 편지를 주고 받았던 핀란드의 Piia라는 친구였다. 

본인 사진도 여러번 보내고 항상 편지지 여러장을 꽉꽉 채워 보내주던 다정하고 상냥한 친구였다. 

편지 교환이 끊긴 이유는 내 탓이었다. 내가 답장을 뜸하게 해서;; 왜냐면 그 친구에게 편지를 쓸때마다 쓸 말이 많지 않아서 살짝 괴로웠기 때문에. 사실 한장 정도만 써서 보냈으면 되는데 그 친구는 맨날 여러장을 꽉꽉 채워 보내니까 나도 그만큼 해야 한다는 생각에 큰 부담이 됐던 것 같다.


4년전에 핀란드 여행을 가게 되면서 그녀 생각이 많이 났고 오래전 주소지로 편지를 보내볼까 생각만 하다 말았는데, 드디어 며칠전에 그녀에게 편지를 보냈다. 핀란드를 떠나 외국 학교로 갈 예정이라 했고 오랜 시간이 지났기에 지금은 그 곳에 안 살고 있을 것 같지만, 혹시라도 그녀의 부모님이나 형제자매가 살고 있다면 편지를 전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 +_+ 운 좋게 그녀와 연락이 된다면 그때 답장 잘 못해서 미안하다고 하고 싶고,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듣고 싶고, 네가 예전에 편지에서 아름답다고 말했던 에스토니아 탈린을 나도 다녀왔다고 얘기해주고 싶다.




글 시작할때 별거 아니라고 했지만 정말 별거 아니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도 아니고, 어려운 일도 아니다. 하지만 백수가 되어서야 비로소, 할 수 있었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회사에 안다니는데도 여전히 시간이 매우 부족하다.

시간이 너무 빨리 가서 하루에도 몇번씩 깜짝깜짝 놀란다. (나이 탓인가ㅎㅎ)

몇십년간 축적해온 어마어마한 양의 물건을 정리하면서, 또 회사에 얽매여 있지 않은데도 빛의 속도로 흘러가는 시간을 느끼면서 새삼 결심했다.

시간은 너무 빨리 지나가니까, 이젠 정말 좋아하는 일, 의미있는 일만 하고 좋아하는 물건만 사도록 노력해야겠다고.


근데 결심만 이렇게 하지,

피곤하고 지쳤다는 이유로 의미없이 폰 보면서 멍때릴 때가 더 많다.

또한, 물건 정리하면서 너무 지쳐서 앞으론 정말 신중하게 물건을 살 듯 하지만 문제는 원래 갖고 있던 물건들. 그닥 좋아하지도 않고, 필요하지도 않은데 오래 갖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버리기 힘든 물건이 너무 많다. 머리로는 버려야 한다는 걸 아는데 실천하기는 너무 어렵다. 정리할 물건이 너무 많아서 숨이 막힌다. 어쩌자고 이렇게 많은 물건들을 사들인 걸까. 몇달동안 정말 많은 물건을 버렸다. 그동안 버린 옷, 가방, 신발은 100kg가 훌쩍 넘고 (조금 있으면 200kg 도달할 듯) 씨디도 이백장 정도 팔았고 책도 엄청나게 처분했다. 조카들에게 나눠준 장난감, 문구류도 한가득이다. 그런데도 물건은 화수분처럼 계속 튀어나온다. 분명히 버리면 버릴수록 가속도가 붙는다는데, 저에겐 그 가속도, 언제 옵니까? 버리면 버릴수록 더 힘든 것 같아요. 


근데 글 제목은 백수가 되고 나서야 하게 된 일들인데 끝은 다시 물건 버리기의 어려움에 대한 토로;;

후훗;;


+) 

8월 30일 추가 (어차피 사람들이 읽을 것 같지 않은 글이니 제목과는 다른 내용이지만 그냥 씀ㅎㅎ)


_물건들을 정리하다보면 정말 생각이 많아진다.

오랜 기간 쌓여온 물건을 한방에 정리하려고 하니까 자꾸만 지나온 삶을 돌이켜보게 된다. 

참, 이것저것 많이 시도하고 참 일관성 없게 살았구나... 대학교때 했던 공부랑 1도 상관없는 일을 하고 있고, 그 일도 이제는 마음에서 떠나버리고 있구나. 

물론 이 세상엔 방향성을 정해놓고 어린 시절부터 쭉 외길을 걸어 성공하는 사람도 있고, 나처럼 이거 했다 저거 했다... 시간과 자원만 투입했다가(근데 심지어 그것도 제대로 열심히 한 것도 아님) 딱히 결실을 못이룬 채 그냥 되는대로 사는 사람도 있는 거겠지만... 슬픈 건 내가 항상 그 후자에 속한다는 거지.

매일같이 과거와 결별하면서 지내는 요즘. 

그동안 그리 잘 살아오지 못했으니 앞으로는 좀 잘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고 

이렇게 과거에 배우고 노력했던 흔적은 전부 내다버리다보면 뭐가 남을까, 그런 생각도 자꾸만 든다. 이미 지나간 일인데도.


_전에도 비슷한 말을 썼는데, 결국... 문제를 해결하고 강해지는 방향으로 살아온 것이 아니라 문제로부터 도망치며 살아오고 있었다고. 

수월찮이 많은 것들을 포기했다. 안피곤하게, 안귀찮게, 마음 편히 살고 싶다는 이유로. 

그런데 삶이란 게, 특히 어른의 삶이란 게, 그렇게 피한다고 피해지는 게 아닌가보다. 왜 이렇게 구질구질 피곤한 일이 많은지.

내가 00도 포기하고 **도 포기했잖아요 이런 법이 어딨어!라고 따지고 싶지만 어디 따질데도 없고... 흑...'

빨리 이 피곤한 시간들이 지나갔으면 좋겠다. 힘들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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