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lust
[국립중앙박물관] 영월 창령사 터 오백나한 : 당신의 마음을 닮은 얼굴 본문
파란 하늘과 구름이 아름답고 공기가 맑고 깨끗했던 날,
국립중앙박물관의 "영월 창령사 터 오백나한 : 당신의 마음을 닮은 얼굴" 전시회를 보러 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참으로 멋진 전시였다.
전시회장 입구에 들어서면,
바깥 세계와 전시장을 다른 세상으로 나누듯 잠시 어두운 복도를 지나도록 되어 있는데,
그 복도에서 오롯이 혼자, 작지만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던 연등이 인상적이었다.
어두운 복도를 지나 만난 영월 창령사 터의 나한들...
전시회장은 어둡고 새소리와 풀벌레 소리가 들려 마치 밤의 숲속을 거니는 느낌이었다.
시공간이 뒤섞이며, 과거의 나한과 현재의 사람들이 수줍게, 그러나 다정하게 인사를 나누는 밤의 야외 파티장.
오백나한전엔 바깥 세상과는 전혀 다른 공간에 온듯한, 색다른 공기가 흘렀다.
영월의 창령사에 대해 남아 있는 자료는 극히 드문 모양이다.
대략 고려 중기에 건립되어 이어져 오다가, 조선 중기 임진왜란 즈음 폐사된 것으로 보고 있고,
이 오백나한들은 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듯.
창령사 폐사 이후 나한전의 오백나한은 오래오래 땅 속에 묻혀 있다가, 2001년에서야 발굴이 되었다.
그동안 주로 접해온 불상에 비해 투박하지만, 정겹고 친근한 외양을 지니고 있는 창령사 터 나한들.
전시회 관람 중 어떤 분은 "아니 여기 우리 친척들 얼굴이 다 있네"라고 하셔서 조용히 빵 터졌다ㅎ
오래전에 만들어진 물건들을 보면 생각이 많아진다.
누가 만들었을까, 어디서, 어떻게, 어떤 기분으로? 그는 자신의 피조물이 이렇게 긴 생명을 얻을 것이라고 상상이나 하였을까, 그 시대의 공기는 어땠을까,
창령사 터 오백나한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과연 한 명의 장인이 이 많은 나한을 만들었는지? 여러명이었는지? 나한상의 각각 다른 얼굴은 상상인지, 실존인물을 따라 만든 것인지? 이 나한상을 만들 때 기분은 어떠했는지...
나한전 두번째 전시실의 모습도 인상깊었다. 설치작가 김승영의 작업이 큰 빛을 발했다. (물론 첫번째 전시실도 작가 김승영이 작업을 했다) 빛과 소리로 오감을 자극하는 전시였다.
나뿐만 아니라 이 곳에 들어오는 모두가 깊은 감동을 받은 모습.
어떤 분은 올해 본 전시 중 이 곳이 최고라고.
오백나한전에 붙어 있던 전시 설명 중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글귀.
"나한이란 내 안에 존재하는 깨달은 자이고, 깨달은 삶을 살 수 있는 능력입니다. 깨달은 삶이란 저 멀리 아득한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천진하게 웃고, 좀 더 느긋하게 진지하고, 좀 더 여유있게 인상 쓰고, 좀 더 편안하게 슬플 수 있는 삶입니다. 결코 멀지 않기에 우리 자신 또한 얼마든지 다가갈 수 있는, 지금 내 삶 바로 옆에 있는 삶입니다"
지금 나에게, 또 많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말일 듯.
국립중앙박물관 영월 창령사 터 오백나한전에서 정말 멋진 시간을 보냈다.
마음 속의 미세먼지가 씻겨내려간 기분?^^
전시 기간은 6월 16일까지이므로, 보고 싶은 분이 계시거든 서두르셔야 할 것 같다.
이번에 못보면 국립춘천박물관까지 가셔야 해요ㅎㅎ
자세한 정보는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 참조 : https://www.museum.go.kr/site/main/exhiSpecialTheme/view/specialGallery?exhiSpThemId=473508&listType=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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