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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여행기] 안더레흐트의 친절한 사람들 본문

외국 돌아다니기/2015.05 Italy & Belgium

[벨기에 여행기] 안더레흐트의 친절한 사람들

mooncake 2015. 9. 15.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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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사람들은 다들 참 친절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브뤼셀 외곽 안더레흐트(Anderlecht)에서 만난 사람들은 정말로 다정한 사람들이었다.


에라스무스의 집에 가기 위해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에 덜렁 내렸는데 구글맵이 이상한 길을 알려줘서 지하철역으로부터 4분 거리를 10여분 정도 헤매고 있을 무렵 한 아저씨가 말을 걸어왔다. 그 내용은 "여행 왔니? 너 등 뒤에 있는 성당 배경으로 사진 찍으면 예쁘게 나오는데 찍어줄까?"란 권유였다.

나는 이날 에라스무스의 집에 들렸다 르네 마그리뜨 뮤지엄에 갈 생각이었는데 시간이 꽤 촉박했으므로 마음이 굉장히 급해서 "아니 그건 됐고요. 혹시 에라스무스의 집이 어디 있는지 아시나요?"라고 여쭤봤다. 아저씨는 나에게 프랑스어로 말을 걸었으면서도 내가 프랑스어를 할거라곤 생각안했던지(ㅋㅋㅋㅋ) 내가 분명히 프랑스어로 La maison d'Erasme 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난 영어는 못알아들어ㅠㅠ" 하시다가 뒤늦게 알아들으시곤 환히 웃으며 "아!!! 라 메종 데라스므?" 하면서 길을 알려주셨다. (물론 내 프랑스어 발음이 그지같은 탓도 있...) 그래서 감사를 표하고 에라스무스의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아저씨가 다시 한번 굉장히 아쉬운 목소리로 "근데 저 성당 배경으로 찍으면 정말 예쁘게 나오는데..." 라고 말씀하셨다ㅎㅎㅎㅎ 지금 생각하면 사진 찍는데 일이분이면 될 걸, 사진 찍어주신다는 걸 왜 그리 매몰차게 거절했는지 모르겠다. 두고두고 좋은 추억이 되었을텐데.


에라스무스의 집은 내가 구글맵만 믿고 직진하다 이미 지나쳤던 길에 있었다.

사무실로 들어가니, 직원 두분이 나를 엄청 반겨주셨다. 브뤼셀 카드를 내밀었더니 "오! 브뤼셀 카드!"하면서 또 한번 반겨주셨다ㅎㅎ 

브뤼셀 카드에 유효기간은 표시되어 있지 않아서 브뤼셀 시내의 뮤지엄들은 바코드를 찍어보고 유효기간을 확인하는데, 에라스무스의 집은 바코드 찍어보는 기계도 없어서 직원분이 장부에 수기로 내 브뤼셀 카드 번호와 국적을 적고 티켓을 내주셨다. 디지털 시대의 이 놀라운 아날로그스러움이라니!


에라스무스의 집은 예상대로 관람객이 나 혼자였다. 아름다운 5월의 오후, 에라스무스의 집 창문에 비쳐드는 아름다운 빛을 즐기며 고요한 오후를 만끽했다. 에라스무스는 네덜란드 사람으로 알고 있는데 왜 벨기에에 에라스무스의 집이 있나 했더니 정확히는 에라스무스 친구네 집이었고 에라스무스는 6개월 정도 머물렀다구 한다ㅋㅋㅋㅋ "에라스무스가 몇 달 머물렀던 에라스무스 친구의 집"이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닙뉘까...?ㅋㅋㅋㅋ


여기 직원분들이 얼마나 친절하셨냐면 에라스무스의 집을 둘러보고 있는데 갑자기 직원분이 퉁퉁퉁퉁퉁 급한 발걸음으로 시길래 뭔 일인가 했더니 "네가 갖고 있는 브뤼셀 카드로 이 근처에 있는 베긴회 수도원도 볼 수 있는데 아까 깜빡하고 말을 안해줘서 알려주러 왔어. 거기도 예쁘니깐 꼭 보구 가^^"라는 말을 남기고 가셨다ㅎㅎ


에라스무스의 집 자세한 리뷰는 다음번에 제대로 쓸 예정! 이 집 뒤에 있는 정원도 굉장히 아름다웠는데 다만 웨딩촬영이 진행되고 있어서 촬영에 방해될까봐 제일 보고 싶은 곳을 보기 위해 좀 기다려야 했다. 정말로 아름다운 5월의 오후였다. 그때 같이 정원에 있던 다른 여행자분도 약간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여기 너무 아름답지 않냐"고 말을 걸어왔다. 나랑 좀 더 여행의 감상을 나누고 싶어하시는 것 같았는데 시간이 없어서 긴 대화를 마다하고 온 게 조금 미안하다.

 


시간이 촉박했지만 에라스무스의 집 직원이 꼭 보라고 한 베긴회 수도원 건물도 보러 갔다.

이 곳도 나중에 제대로 리뷰 예정! 수녀님들 숙소답게 실내가 정말 아기자기하고 ​예뻤다. 여기 직원분도 역시나 스윗+친절하셨고ㅎㅎ

보통 브뤼주나 루벤의 베긴회 수도원을 많이 보러 가는데 안더레흐트 베긴회 수도원도 작지만 예쁘다. 에라스무스의 집과 묶어서 같이 보러 가면 괜찮을 듯.



나의 그다음 행선지는 또다른 브뤼셀 외곽 Jette에 있는 르네 마그리뜨 뮤지엄이었다.

브뤼셀 센트럴의 왕립미술관에 있는 마그리뜨 뮤지엄과는 다르다. 마그리뜨 뮤지엄은 마그리뜨의 작품을 모아 전시하고 있다면 이 곳은 르네 마그리뜨가 거주하던 집을 박물관으로 만들어놓은 곳이다. 외곽이라지만 사실 브뤼셀 센트럴에서 지하철이나 버스 또는 트램 타고 2~30분 거리로, 서울로 치면 도심에서 부도심으로 이동하는 정도?ㅋ ​근데 이 정도도 브뤼셀에선 굉장히 멀리가는 느낌이다. 브뤼셀르네 마그리뜨 뮤지엄은 교통이 약간 애매한 감이 없지 않았는데 다행히 안더레흐트에서는 한번에 가는 버스가 있었다. 

그래서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시간표에 적힌 시간이 지났는데도 버스가 안와 갸우뚱하고 있었더니 내 옆에 서있던 아저씨가 "곧 버스 올거야. 걱정 안해도 돼"라고 말씀해주셨다. 아 정말 안더레흐트 사람들은 왜 이렇게 친절할까. 내가 묻지 않았는데도 먼저 말걸어서 길을 찾게 해주고, 관람 정보도 주고, 버스가 곧 온다고 안심도 시켜주고ㅎㅎ


르네 마그리뜨 박물관이 있는 동네 제뜨(Jette)에 내렸다. 버스 정류장에서 도보로 6분 정도의 거리였는데 구글맵이 또 방향을 잘못 알려줘서 5분 정도를 허비했다ㅠㅠ 이 날 오후에 구글맵이 자꾸만 말썽을 부렸다. 폐관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마음이 몹시 불안초조했다.


그러다 폐관시간 40여분 전에 간신히 르네 마그리뜨 뮤지엄 앞에 도착.

여전히 마그리뜨씨가 거주하며 벨을 누르면 마그리뜨씨가 나와주실 것만 같은 명패^^


근데 벨을 눌렀지만 아무 반응이 없다. 또 한번 눌렀는데 여전히 반응이 없다. 혹시 오늘은 문을 일찍 닫은건가? 싶어서 절망하려던 찰나 쿵쿵쿵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들리고, 예쁜 여자분이 나와 반겨주셨다. 3층에 있어 내려오는 시간이 걸렸다고 미안하다고 한다.

벌써 문 닫은 줄 알고 걱정했다고 했더니 환하게 웃으면서 "아직 충분히 구경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며 걱정말라"고 한다. 그러면서 어떻게 이 곳까지 찾아왔냐며 궁금해한다. 구글맵을 이용했다고 하더니 "여기가 워낙 외져서 다들 구글맵이랑 GPS 이용해서 힘들게 온다"며 와줘서 고맙단다. "소규모 박물관이라 충분히 홍보를 못해서 아쉽다"는 말도 덧붙인다. 직원분의 안내에 따라 비닐로 된 덧신을 신고, 일단 2층 사무실로 올라가 가방을 맡기고 관람을 시작했다. 코팅된 안내문 여러장을 받고, 박물관에 대한 상세한 소개도 들을 수 있었다. 여행 중에 참 다양한 박물관에 가봤지만, 직원분이 이렇게 나 한명을 데리고 다니며 뮤지엄 구석구석을 소개해 준 적은 처음이었다. 

나중에 르네 마그리뜨 뮤지엄도 또 따로 리뷰를 하겠지만, 대략 1층은 르네 마그리뜨가 부인과 같이 살던 집을 재현해놓았고, 2층엔 티켓 판매, 짐 보관, 기념품 판매를 겸하는 작은 사무실과 르네 마그리뜨의 물품들 그리고 약간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고(+내가 갔을땐 전쟁, 화재 등으로 소실된 르네 마그리뜨의 작품들을 후배 화가들이 재현해놓은 그림들도 전시 중이었다!!!! 얼마나 근사한 작품들이 많던지!!!!) 3층은 뮤지엄 사무실이 있고 그 옆 다락방엔 약간의 소품-르네 마그리뜨 그림 속에 나온 모티브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내가 여행 중에 참 좋아하는 게 "남이 살던 집 구경"하는 건데, 이건 그냥 남도 아니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화가가 살던 집을 구경하는 거니 정말 너무너무너무 좋았다ㅎㅎ 감동의 쓰나미가 몰려왔다. 진짜 이런 맛에 힘들어도 여행 다니는 것 같다ㅎㅎ 힘든 순간이 더 많긴 한데, 그래도 좋은 순간은 정말 "폭발적으로" 좋기에...^^

르네 마그리뜨가 살던 1층은 작아서 금방 둘러볼 수 있었지만, 2층 전시물들은 시간이 부족해서 찬찬히 보지 못한게 두고두고 아쉽다. 


침실에서 이어지는 르네 마그리뜨의 작업실.

보통 화가의 아뜰리에 치고는 많이 작은 것 같아서, 직원분께 "혹시 별도의 아뜰리에가 있었냐?"고 물어봤더니 아니란다. 이 집에서 살던 시절엔 이 곳에서 모든 작업을 다 했다고.


워낙 폐관시간이 가까울때 간거라서 직원분들께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 내 말은, 직원분들의 퇴근 시간을 지켜주기 위해ㅎㅎ - 노력하고 있었는데 1층 르네 마그리뜨의 집을 둘러보고 있는 순간 갑자기 디카의 배터리가 나가버렸다ㅠㅠㅠ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다시 2층 사무실로 가서 가방을 꺼내달라고 해서 배터리를 교체하고... 안그래도 시간없는데 참 애타던 순간이었다. 


그런데 이런 나와의 조급함과는 달리, 직원분들은 여유가 넘쳤다. 특히, 나중에 르네 마그리뜨가 디자인한 사비나 항공의 찻잔과 엽서들을 구입할때 있었던 직원분은 - 아마 이 직원이 원래 관람객 응대 담당인데 내가 갔을때 일이 있어 잠깐 자리를 비웠고 그래서 3층 사무실에서 일하던 직원분이 맞아주신 걸로 추정 - 6시가 다 되어 가는데도 내가 구입한 사비나 항공의 찻잔을 아주 꼼꼼하게 몇겹으로 포장해주었고, 결국 나와 르네 마그리뜨와 벨기에 여행에 대해 한참 동안 대화를 나눴다. 나는 퇴근 시간을 지켜주기 위해 빨리 박물관을 나오려고 했지만 직원분은 별로 개의치 않는 듯 르네 마그리뜨에 대해 여러가지 이야기를 했고 내 질문에 모두 성심성의껏 답변을 해줬고, 또 벨기에 여행에 대한 조언도 주었다. 마지막엔 이제 여기서 어디로 가냐고 물어서 일단 브뤼셀 센트럴로 가려고 한다고 했더니 한참을 곰곰 고민하다가 브뤼셀 센트럴로 가는 가장 빠르고 편한 방법을 알려주었다(구글맵에서 알려준 방법과는 약간 달랐다ㅋ) 지하철역으로 가는 약도를 꼼꼼히 그려주고, 내가 어떤 교통권을 갖고 있는지 확인하더니 지하철역까지는 몇번 트램을 타면 좀 더 편히 갈 수 있다고 알려주고, 심지어는 환승역인 "벨지카"역에서 환승할때는 어떤 방향으로 가야하는지까지 설명해줬다. 얼굴도 이쁘고 늘씬하고 옷도 참 예쁘게 입었는데 목소리도 곱고 성격도 좋고 상냥하고 르네 마그리뜨 좋아하는 취미도 같고 심지어 르네 마그리뜨 뮤지엄이 직장이라니!! 만약 내가 남자였다면 반해버렸을 듯ㅎㅎ


지하철역으로 가는 트램 기다리는 중.

사실 이 날은 내 생일이었는데, 타지에서 혼자였고, 브뤼셀 카드 뽕을 뽑겠다는 생각에 하루종일 바쁘게 뮤지엄을 보러 다니는 바람에 변변한 식사조차 하지 못했지만 너무 근사한 박물관들에 가고, 친절한 사람들을 만나고, 또 르네 마그리뜨가 디자인한 찻잔까지 득템해서 이 정도면 충분한 생일 선물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브뤼셀 센트럴로 가기 위한 지하철역 근처에 도착해서, 트램 역에 앉아 계시던 할아버지에게 지하철역 입구가 어디냐 (바로 건너편이었는데 순간 안보였다)고 여쭤봤더니 지하철역 입구를 알려주시면서 "어디로 가냐?"고 물으신다. 브뤼셀 센트럴로 간다고 했더니 옆에 계시던 또다른 할아버지가 "그럼 벨지카Belgica에서 갈아타야해"라고 말씀해주셨다ㅎ 두분이 끄덕끄덕 거리면서 "그래 꼭 벨지카에서 갈아타"라고 또 한번 말씀하시는데 참 귀여우셨다. 알겠다고 대답하고 지하철역 앞으로 건너가 이 사진을 찍고 있는데 뭔가 시선이 느껴져 뒤를 쳐다봤더니 할아버지 두분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지켜보고 계시다가 왼쪽 옆으로 가라고 손짓 해주셨다ㅋㅋㅋㅋ



지하철을 기다리며 노선도를 봤더니 벨지카에서 갈아타지 않고 쭉 타고 가면 Le Botanique 앞에서 내릴 수 있길래 Le Botanique로 갔다.

여기도 브뤼셀 카드로 무료입장할 수 있고, 개관시간도 길어서 혹시나 하구 갔는데, 다만 여긴 상설전시를 하는 곳이 아니라서 전시가 있을때만 무료입장이 가능한 거였다.

그래서 내가 갔던 시기엔 건물 안에 입장할 수 없었지만, 르 보따니끄 앞의 풍경이 아름다웠으므로 나름 만족!!!


음 그래서 마무리를 어떻게 한다지?

- 브뤼셀 사람들은 친절합니다

- 여행자에게 베푼 사소한 친절은 여행자에게 두고두고 큰 고마움으로 남습니다^^

- (세간에 알려진 바와는 달리) 브뤼셀에 볼 거 많습니다. 4박 5일 있었지만 완죤 부족했어요!!

- 이번엔 48시간 썼는데 좀 부족한 감이 있어서 다음엔 아예 브뤼셀카드 72시간권을 끊어서 브뤼셀 카드로 입장 가능한 모든 뮤지엄을 섭렵하고 올까합니다ㅎㅎ



(iPhone 6 * Instra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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