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lust
덴마크/스웨덴 여행 잡담 + 혼자 여행에 대하여 본문
(1) 늘 그렇듯이 덴마크/스웨덴여행을 다녀온 뒤로 골골거리기+밀린 업무 해치우느라 2주째 제정신이 아니다.
사람들이 나이 드니 노는 것도 쉽지 않지? 라고 할땐 그냥 웃지만, 나는 20대때 많이 아팠기 때문에 그때나 지금이나 장거리 여행 다녀와서 아프고 힘든 건 비슷하다.
오히려 이번엔 왕복 모두 비즈니스석을 탔고 현지에서도 몸 사려가며 쉬엄쉬엄 다녔기 때문에 (출근할때보다 더 짧은 일과시간을 보낸 날도...두둥) 힘들긴 하지만 수년전 유럽여행들보다는 여행 후유증이 살짝 덜한 것도 같다.
여튼 이렇게 여행 다녀와서 힘드니 여행을 좋아하면서도 매번 여행 가는 게 많이 망설여진다.
(2) 혼자 여행하는 걸 걱정하는 주변 사람이 많고, 또 외롭지 않냐며 물어보는 사람도 있다. 물론 도쿄처럼 익숙한 도시는 혼자 가서 심심하다고 느낀 적 있음. 그런데 보통 처음 가는 유럽 도시들에선 외로움을 느낄 새가 없다. 대개 여행 준비가 안되어 있어서 현지에서 다음 일정 고민하기, 가는 길 검색하기 등등으로 매우 바쁘기 때문이다.
(3) 혼자 여행의 최대 단점은 자리 맡기와 화장실 다녀오기인 것 같다. 스톡홀름 호텔에서 아침밥을 먹을 땐 두번째 접시를 가지러 간 사이에 내가 자리를 완전히 뜬 줄 알고 직원분이 내가 먹던 음식을 정리한 적이 있고, 재즈바 스탐펜에선 일부러 한두모금만 마신 맥주잔을 놓고 갔는데도 잠깐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 내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이 있었다. 상황을 얘기하고 자리를 돌려받긴 했지만 당황스러웠다. 혼자 여행의 또다른 단점은 근사한 식당을 가기 망설여진다는 것과 다양한 음식을 맛보기 힘들다는 점이 있겠다.
(4) 출발 약 2주전에 비행기표를 끊었으니 그렇게 여유있는 발권은 아니었는데 (물론 내 기준에선 상당한 여유ㅎㅎ) 그 2주동안도 여행 준비를 거의 안했고 마지막까지 갈까말까 고민하느라, 출발 전날 오후 5시에서야 호텔, 기차, 로밍 신청, 여행자보험가입, 짐싸기를 시작해서 저녁 내내 힘들었다 헉헉. 아무리 내가 극 P라지만 이건 좀 심했다.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이미 비행기표를 발권했으면 그때부터는 고민하지 말고 그냥 여행 준비를 해 제발 좀
(5) 여행 전에 마음에 걸리는 게 몇가지 있었는데 역시 큰 문제 없이 여행을 마쳤다. 어차피 마음에 걸리는 일이 없을 수는 없어. 크게 아픈 거 아니면 그냥 가
(6) 이번 덴마크/스웨덴 순수 여행 경비는 500만원이 조금 넘는다. 비즈니스석을 좋은 가격에 잡았고, 호텔 가격은 닥쳐서 예약한 것 치고는 나쁘지 않았고, 기차는 임박해서 예약하느라 평균 가격의 두배 정도 낸 것 같다. 저녁을 편의점에서 사다먹거나, 재즈바에서 맥주+나초 먹은 걸로 때운다거나 하는 식으로 의도치 않게 대충 먹은 날이 많은데 그래서 현지 경비가 그나마 덜 든 것 같다. 체력이 받쳐주어서 카페나 멋진 식당을 더 많이 갔더라면 현지 경비가 두배쯤으로 늘어났을 수도.
(7) 찻잔 5개, 유리잔 3개 외에는 쇼핑은 별로 하지 못했다. 그릇을 전부 핸드캐리한 덕에, 24인치 수트케이스가 살짝 여유 공간이 남았는데, 한국에 돌아와보니 아 좀 더 사올걸 후회되는 것들이 분명히 있다. 그런데 예전에 여행 가서 쇼핑을 많이 해서 이동 중에 너무너무 고생한 기억이 세네번 중첩되니까 어느 순간부터 몸을 사리게 된다. 이럴땐 확실히 젊음의 패기가 그리워진다. 점점 더 몸사릴 일만 많아진다.
(8) 8박 10일의 일정이었고, 실제 여행기간은 코펜하겐 4일, 스톡홀름 3.5일 정도다. 짧아도 너무 짧다. 얀 리시에츠키 공연을 보고 싶어서 스톡홀름에서 한국에 돌아오는 날짜를 뒤로 미뤄볼까하고 여행사에 문의했지만, 수수료가 150만원이나 나와서, 아 이거면 왕복 비행기표 한번 더 끊을 수 있는 돈이자나!!!!하면서 눈물을 머금고 포기했었다. 그냥 애초부터 좀 더 길게 일정을 잡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물론 그랬다면 회사 일이 더 밀려서 지금 훨씬 더 허덕허덕하고 있을테지만 그래도 참 아쉽다. 그러니까 이제 유럽여행 가면 최소 2주는 가도독 하자. 회사 따위 뭐 중요해!!!!! (는 아니고 여행경비 벌려면 중요하지만)
(9) 코펜하겐이나 스톡홀름에 볼 거리가 많지 않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난 코펜하겐이나 스톡홀름을 제대로 보고 왔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여행 다녀온 뒤 못해서, 못가서 아쉬운 것들이 너무 많이 떠오른다. 덴마크에 가서 레고 코빼기도 못봤다거나, 로얄 코펜하겐도 못가봤다거나 하는 건 차처하더라도, 한 도시에 느긋하게 머물러야 쇼핑도 제대로 하고, 근사한 카페들도 찾아다니고, 구석구석 골목도 누빌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것 같다. 특히나 부족한 체력으로 인해 하루에 돌아다닐 수 있는 시간이 한정적이라면 더더욱.
(10) 스톡홀름 아를란다 공항 출국심사 할때 패스트 트랙으로 안들어가고 일반 트랙으로 들어갔다가, 앗 난 패스트 트랙 쓸 수 있잖아!!라고 뒤늦게 떠올리고 패스트 트랙으로 옮겨가도 되냐고 물어보니 직원분이 "비즈니스표 갖고 계시니 다음부턴 저쪽 입구로 들어오세요^^"라고 하셨는데 그냥 웃으며 네~라고 했지만 내가 과연 아를란다에서 또 비즈니스 타고 출국할 일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톡홀름에 다시 갈 가능성도 낮아 보이고(파리, 런던조차도 10년 넘게 다시 못가고 있으니) 만약 가더라도 스톡홀름에서 출국할 가능성은 더욱 낮아보이니까.
(10) 이런 비교가 의미 있는 것인가 싶지만, 도시만 놓고 보면 코펜하겐보다는 스톡홀름이 좀 더 좋았다. 도시의 첫인상 때문일 수도 있다. 기차가 연착되어 밤 11시가 넘어 스톡홀름 중앙역에 내렸는데, 코펜하겐과는 달리 중앙역 근처가 깨끗하고 도로도 널찍하고 늦은 밤인데도 문 연 가게과 그 앞을 오가는 사람들도 꽤 있고, 또 갈매기의 특이한 울음소리가 인상적이었다. 코펜하겐보다는 물가가 살짝 저렴한 것도 영향이 있을테고.
(11) 음 근데 평소 유럽에 대해 갖고 있던 선입견과는 좀 달랐던 덴마크와 스웨덴ㅋㅋ
보통 서유럽 사람들만큼 상냥하거나 나이스하진 않았고 성질머리도 살짝 급해보였음ㅋㅋ 아니 난 왜 약간 우리나라 사람들하고 비슷해보이지?ㅋㅋㅋㅋㅋㅋ 마트에서 직원이 물건 찍는 속도도 프랑스나 이탈리아나 네덜란드보다는 훨 빠르고 그래서 나도 장바구니에 내 물건을 빨리 담아야 할 것 같고, 판트 돌려받는 기계에서도 내가 살짝 꾸물거리고 있으니까 뒤에서 재촉하는 기색이 느껴졌고, 도로에서도 길 건너는 사람 없으면 신호 중인데도 차가 슝 지나가고, 특히 스웨덴에선 버스에서 큰 소리로 싸우는 부부라던가 기차역에서 싸우는 여자분들을 봐가지고 좀 당황스러웠다. 우리나라에서 하도 북유럽을 행복 여유 이런 걸로 포지셔닝해서 괴리감 탓인가...
(12) 근데 나 북유럽 인테리어 좋아했네
너무 유행하면 안좋아하는 삐딱한 성향을 갖고 있어서, 하도 오랫동안 우리나라에서 북유럽 인테리어가 유행하는 통에 시큰둥했는데, 이번에 덴마크, 스웨덴 가서 인정해버렸다. 내 취향은 북유럽 인테리어라는 걸.
하긴 애초에 덴마크에 가야지!라고 결심한 계기가 예전에 누구네 집인지도 모르고 저장해뒀던 핀율하우스 때문이였으니...
(13) 항공성 중이염도 여행 중 나를 참 괴롭히는 요소인데, 이번엔 미리 수도에페드린+항히스타민제를 처방받아 복용했다. 중이염을 예방하기 위해 쓴 온갖 방책 중 그나마 가장 효과가 있었다. 스톡홀름-암스테르담 구간의 착륙 말고는 나머지 구간은 대략 무난하게 지나갔다. (그렇다고 아예 안아팠다는 것은 아니지만) 하지만 수도에페드린+항히스타민제에도 문제는 있는데, 일단 이 약을 먹으면 당연하게도 무지하게 졸립다. 경유 대기 중이나 입출국 심사, 현지 도착해서 호텔 찾아가기 등 정신 차리고 있어야 하는 순간에도 졸리고 나른하고 멍하니 그 나름의 고충이 또 있었다.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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