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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짓기&인테리어

집에 대하여

mooncake 2022. 4. 14. 23:30

(1) 답 없음
새로 지은 집에서 산지 1년 4개월째지만 아직도 짐을 다 풀지 않았다. 이런 저런 문제들로 인해 인테리어가 폭망했고, 하자보수를 언제까지고 기다릴 수 없어서 일단 이사를 하고, 살면서 인테리어 하자보수를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그것 역시 잘 되지 않았다. 최근에 몇가지 보완을 시도했지만, 내가 내린 결론은 이 집의 인테리어는 완전히 싹 뒤집어 엎지 않고서야 답이 없다는 것.
하지만 짐을 빼는 일 자체가 너무 버겹다. 원래도 보관이사란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우리집은 여러 층으로 구성되어 이삿짐 센터 직원들도 여간 힘들어 하는 게 아니고, 또 나의 자잘한 수집품들이 워낙 많구, 그걸 이사업체 직원들의 거친 손에 맡길 생각을 하니 차라리 죽고 말지 싶다(나도 이런 내가 싫다구욧ㅜㅜ)

(2) 능력 부족
지금 집은 망한 인테리어와 평범하지 않은 구조 그리고 하자보수를 기다리다가 아직도 풀지 못한 짐 상자들로 인해 엉망이지만 사실, 좋은 인테리어 센스와 실행력과 넉넉한 자금이 만났다면 상당히 독특하고 재미있는 집이 될수도 있었을 거다. (대충 구해줘 홈즈에 나오는 협소주택들 비슷한데 그것보다는 살짝 더 넓다. 내가 구해줘 홈즈를 거의 본 적이 없어서 확신은 못하겠지만;; 주변 사람들이 그랬음)
그런데 나에겐 좋은 인테리어 센스도 없고 실행력은 더더욱 없다. 지인들이 너 인테리어 관심 많구 잘 꾸미잖아 라고 했고 심지어 나도 그런 줄 알았는데 그건 거대한 착각이었던 것이다. 셀프 인테리어는 내 영역이 아니다. 인테리어에 관해서는 절실하게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런 전문가를 만나지 못한 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게다가 하필 코로나 인테리어 특수랑 겹쳐서 다들 비교적 표준화되고 쉬운 아파트 인테리어나 하려고 들지 우리집처럼 도전적인 일은 잘 안맡으려고 하더라. 얼마전에 부동산 매물 소개하는 유튜브 보니까 “여러분 평범한 집에 사세요. 그게 최곱니다”라고 하던데 정말 공감이다ㅋㅋ 내가 어지간히 능력이 있지 않고서야 독특한 구조를 지닌 집을 잘 꾸미기란(에휴) 그래도 인테리어 관련 사이트나 유튜브를 보면 정말 낡고 오묘한 구조의 옛날 집들도 예전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멋지게 변신하던데, 새로 지은 집이 이 모양 이 꼴인 게 납득이 안간다 ㅠㅠ

(3)취향의 충돌

오래전에 - 아마도 고등학생 시절이지 싶은데 -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 수필을 읽었을 땐 크게 공감하진 못했다. 평상시와 다른 일이 생기는 걸 좋아하는 건 하루키와 같은데, 그때의 나는 마이너스적 상황보다는 “무엇이 더 생기는 상황” 쪽을 훨씬 더 재미있어 했기 때문이다.

그랬던 내가 적어도 인테리어에 있어서는 더하기보단 빼는 것을 훨씬 더 좋아한다는 것을 나날이 느끼고 있다. 가구나 물건으로 차있던 공간이 일시적으로라도 비게 되면 기분이 그렇게 산뜻할 수가 없다. 하지만 문제는 내가 물건을, 잡동사니를 워낙 좋아한다는 것이다. 예전에도 비슷한 얘기를 블로그에 썼는데, 수집을 그렇게 좋아하고 다양성을 추구하면서 인테리어는 극단적 미니멀이 취향이라니 이게 말이 되는 소리냐.
물론 내가 정말 부지런하다면, 3층 다락에 왠만한 물건은 다 올려놓고 2층 거실을 싹 비우면, 최소한 작은 거실 공간 하나는 미니멀하게 유지할 수 있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이건 이론적으로만 가능하고 3층 다락에 올라가는 일 자체가 원체 드물어서 실행이 쉽지 않다. 가끔은 다락이 계단 한층 위가 아니라 마치 10광년쯤 떨어진 공간 같은 느낌이라니까. 도대체 나는 왜 이렇게 생겨먹은 거야.

(4) 그런데 말이죠
집에 대해서 글을 쓰다보니까 결국은 “짐”이 계속해서 발목을 잡고 있다는 걸 새삼 느낀다. 3년전에 (집을 새로 짓느라 그런 거긴 하지만) 짐 정리 때문에 휴직까지 하고 이후로는 짐을 안늘리려고 부단히 노력해왔는데도 아직까지도 짐정리가 인생의 큰 숙제로 남아 있다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이러다가 묘비명이 “짐 정리, 영원히 끝내지 못하고 잠들다”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는 묘를 쓸리 없고 묘비명 적는 문화도 아니지만ㅋㅋ) 아무튼, 아이고야. 적어도 짐들이 생활에 불편은 주지 않는 방향까지는 정리를 해야 하지 않을까.

오늘 “안풀리는 인생을 살고 있는 부족한 나”에 대한 글을 연달아 써서 안그래도 뚝 떨어진 방문객 숫자 더 떨어질까봐 걱정됨ㅋㅋㅋㅋ 또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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