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lust
얀 리시에츠키 피아노 리사이틀 Poems of the night 2022.6.12. 본문
얀 리시에츠키 피아노 리사이틀을 다녀왔습니다.
예매 직후부터 사인회 할 가능성이 높으니까 쇼팽 에뛰드랑 쇼팽 녹턴 씨디를 들고 가면 되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아침, 오디오장에 녹턴 씨디가 없어서 당황함!! 물론 예당에서 팔테니까 많이 걱정한 건 아니지만요ㅋ
예술의 전당에 갔더니 역시나 사인회 예정 공지가 붙어 있고 로비에서 씨디 3종을 판매 중이었어요 (녹턴, 쇼팽 works for piano and orchestra, 그리고 Night music이었나…) 2018년 얀 리시에츠키 리사이틀엔 씨디를 한 장만 들고 갔는데 다른 사람들이 싸인 두개씩 받는 거 보고 부러웠던지라, 쇼팽 에뛰드 씨디를 들고 가긴 했지만 녹턴 씨디를 또 샀습니다. (그러나 쓸데없는 짓이었다는 ㅋㅋ)
4년만의 얀 리시에츠키 공연!!
외국 가서 들으려던 계획도 번번이 무산되고 작년 3월 예정이었던 공연도 취소되고… 그래도 지금이라도 이렇게 공연이 열려서 너무 기쁩니다.
쇼팽 녹턴과 에뛰드로만 구성된 공연입니다.
이 플레이셋 아주 좋았어요 :)
제 자리는 1층 D블록 1열 2번.
코로나 이후 공연을 거의 가지 않아 예술의 전당 멤버십을 갖고 있지 않기에 C블록 1열은 예매 실패하고 대신 D블록 1열이라도 잡았습니다. 피아니스트의 손이 안보여 아쉬운 자리지만, 본다고 따라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손은 봐서 뭐하게! 얼굴이라도 제대로 보자! 뭐 그런 마음이었어요ㅋㅋㅋㅋ 이 자리의 또다른 장점이라면 대기실에 들어간 연주자의 모습이 잠시 보인다거나?ㅎㅎ
공연은 말해 뭐해, 정말 좋았습니다. 첫 곡에서 전율이 뽝! 역시 씨디나 스트리밍으로는 직접 듣는 소리를 따라갈 수는 없지요.(스피커 탓도 있겠지만요) 그리고 녹턴 E flat major op.9 no.2를 들을 땐 너무 좋아서 울 뻔. 물론 이건 이 곡 자체에 갖고 있는 개인적 상념 탓이 큽니다만. (나이가 한 자리 수였던 어린이 시절 제일 좋아한 피아노 곡이라 그런지, 엄청나게 흔하고 뻔하고 상투적인 곡임에도 불구하고, 이 곡을 들으면 달콤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기분이 들어서 좋고, 또 그때 꿈꿨던 어른이 된 나와 지금의 내가 얼마나 다른 모습인지 생각하면 슬퍼지기도 하고. 쇼팽의 녹턴마냥 우아하게 살고 싶었는데 현실은ㅋㅋㅋㅋㅋㅋ) 그런 복잡한 감정을 가진 곡을 좋아하는 피아니스트가 아름답게 연주해주니 참 좋았어요.
자리의 특성 상 연주자의 표정이나 동작 하나하나, 한숨까지도 볼 수 있는 게 참 좋았는데, 한가지 궁금한 건… 녹턴 op.9 no.2 직전 곡 에뛰드 E flat minor op.10 no.6이 끝나갈때쯤 얀 리시에츠키가 씨익 하는 미소를 지었단 말이죠? 일반적으로 미소를 지을만한 곡은 아닌데 왜 그랬을까요?! 스스로도 연주가 마음에 들어서? 아니면 혹시 달콤한 녹턴을 앞두고 있어서? 얀만 알겠죠ㅋㅋㅋㅋ 아무튼 연주할땐 대부분 인상을 쓰고 있거나 눈을 감고 있거나 격한 표정이거나 뭐 그런데 미소를 보아 기뻤다는 이야기입니다(…….) 녹턴 C sharp minor (20번)은 얀 리시에츠키 공연 때 두 번이나 앵콜로 들었던 곡인데 이번엔 어쩐지 예전보다 템포가 미묘하게 살짝 느려진 느낌도 들고 해석도 달라진 느낌이었는데, 템포 부분은 저의 착각일 수도 있고, 해석이야 피아니스트가 성장해 나감에 따라 달라지는 건 당연한 일일테구요. 아무튼 이것도 세번째 공연에서 만난 곡이었지만 그만큼 좋았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정규 프로그램의 마지막인 에뛰드 op.10 no.12 혁명은 정말 끝내줬어요. 워낙 곡도 짧다보니 한번 더 듣고 싶었음ㅋㅋ 그리고 말입니다.
오늘의 앵콜이 뭘까 파데레프스키였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긴 했는데 얀 리시에츠키가 앵콜곡을 연주하러 나와서 굿 이브닝, 이 곡은 쇼팽은 아니고 파데레프스키에요 라고 할때 저도 모르게 우와! 했는데 심지어!!!!!
파데레프스키의 곡 중에서도 제가 제일 좋아하는 곡이었어요. 그래서 또 울뻔함 ㅋㅋㅋㅋㅋㅋ (Night Music 음반에 수록된 곡이니 당연할수도 있겠지만요ㅋㅋ) 요즘 사는 게 참 힘들었는데 말이죠, 이번 생은 진즉에 망한 것 같고요. 실망스러운 일들은 쌓여만 가고요. 그래도, 원하는 걸 다 가질 수는 없어도, 가끔은 기적적으로 정말 갖고 싶은 걸 받는 순간이 오네. 앞으로도 또 이런 순간은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힘내서 살아보자 뭐 그런 기분이 들었어요. 정말 많은 위안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앵콜곡이 끝나갈 무렵 제 마음 속엔 걱정과 고민이 도사렸으니… 공연장 제일 앞자리가 공연 볼 땐 좋아도 사인회 줄설땐 최악이라는 거 ㅋㅋㅋㅋ
나름 잽싸게 뛰쳐나가봤지만 앞 옆 다 막혀서, 공연장 밖으로 나왔을땐 이미 줄이 엄청 길었어요.
그래도 기다림 끝에 무사히 얀의 싸인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ㅋㅋ 다만 앞에서도 말했듯 얀 리시에츠키의 녹턴 씨디를 또 산 건 괜한 짓. 앞에 선 직원분이 싸인은 하나씩만! 이라고 외치셔서 고민하다 쇼팽 에뛰드 씨디에 받았어요. 근데 1인당 하나만 싸인해주는 게 맞죠… 두시간짜리 공연 마치고 나서 또 한참 싸인까지 해주려면 얼마나 피곤하겠어요.
Hello와 Thank you 두 마디 뿐이었지만 눈 마주치고 말을 나눠봐서 좋았습니다. (제 뒤에도 줄이 엄청나게 길어서 싸인만 받고 빛의 속도로 지나가야 했고 더 긴 말은 차마 할 수 없었어요ㅋ)
싸인회 줄 서느라고 서둘러서 그런 거긴 한데, 그래도 이렇데 두근두근거려본게 얼마만인지 뭐 그런 생각을 하며 천천히 길을 따라 걸어내려왔어요. 예술의 전당 건너편에 있는 “이정우 현악기” 앞을 지나며 뜨끔하기도 하고요. (제 첼로가 이정우 현악기 제품이라 여기 들고 가서 고쳐야하는데 몇년째 다짐만 하는 중이라;;;)
정말 좋은 순간이었습니다 ㅎㅎ
여담
- 기자님들, 이번이 얀 리시에츠키의 두번째 내한 공연 아니에요… 2016년에도 협연으로 공연한 바 있습니다. 2018년 독주회가 첫번째 내한 공연이 아니었단 말이죠ㅎ
https://mooncake.tistory.com/m/1615
- 내 양 옆이 모두 혼자 온 젊은 남자분들이었는데 얼마나 관람 태도가 좋던지. 간만에 쾌적한 환경에서 집중해서 즐겁게 공연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관크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어요. 그리고 기침 하시는 분들은 제발 사탕 좀 입에 물고 공연 들어오심 안되냐구요.
- 위에서 얀 리시에츠키가 내가 듣고 싶었던 곡을 앵콜곡으로 연주해서 너무 좋았다고 했는데, 2017년 트룰스 뫼르크 내한공연 때도 "트룰스 뫼르크의 바흐를 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앵콜곡으로 바흐를 연주해서 엄청 놀라고 기뻤던 적이 있었다. 흐흐흐. 이런 작은 놀라움과 즐거움이 인생의 묘미겠지.
(예술의 전당) 트룰스 뫼르크와 쇼스타코비치 - wanderlust (tistory.com)
- 얀 리시에츠키의 레퍼토리 중 제일 좋아하는 게 슈만 피아노협주곡이라, 언젠가 꼭 듣고 싶은 간절한 소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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