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lust
헬싱키 공원에서 만난 할아버지 본문
헬싱키에서의 두번째날 아침, 호텔 뒷쪽 공원을 한바퀴 돌고 있는데, 친구분과 같이 산책 중이던 할아버지가 어디서 왔냐며 말을 거셨다.
한국에서 왔다니까 굉장히 반가워하며,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줄줄 꺼내셨다.
남한 인구가 몇명이냐고 물으셨는데 워낙 외국어 숫자에 약한지라 순간 당황했다가 "핀란드 인구가 몇명이죠?" 라고 되묻고ㅋ "그거의 열배에요^^"라고 답했다ㅋㅋㅋㅋ
히에타라하티 벼룩시장에 들렸다 수오멘린나에 가야하는 일정이었으므로 마음이 좀 급했는데 할아버지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질문을 해오셔서 결국 꽤 긴 대화를 하게 됐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오! 부유한 나라(rich country)에서 왔구나! 라고 하셔서 좀 당황스러웠다. 이어서 "한국은 경제성장율이 굉장히 높고 IT산업이 발전해있고 실업률은 낮다면서? 부럽다. 우리는 가진 자원도 없고 경기도 나쁘고 일자리가 없어서 실업률이 너무 높아ㅠㅠ"라고 하시는데 레알 당황의 도가니...ㅋ 왜 보통... 막연하게 북유럽은 우리보다 잘 산다고 생각할뿐더러, 유럽 그 어느나라에서도 "리치 컨트리"에서 왔구나라는 말을 들은 적이 없는데, 다른 나라도 아닌 핀란드 사람에게 이런 말을 들을 줄이야.
생각하시는 정도는 아니라고... 요즘 한국도 경기가 안좋고 특히 젊은 층의 실업률은 꽤 큰 문제다... 라고 간략히 답해드렸다. 굳이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한 여행 중에 우울한 문제들을 구구절절히 논하고 싶진 않았으니까.
실제로 한국과 핀란드 중 어디가 더 경제성장률이 낮고 실업 문제가 더 심각한지는 객관적인 지표를 비교해보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요는... 자기가 속해 있는 현실은 훨씬 더 비관적으로 보이고, 반대로 남의 상황은 좀 나아보이는, 또는 좋은 부분만 부각되어 보이는 경향이 있으며, 자신의 장점은 안보이거나 작아보인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었다.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런 부분이다. 우연히 만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새로운 생각과 다양한 시선과 각자의 입장에 대해 알게 되는 것.
헬싱키 할아버지와 내가 꼭 마이너스 경제성장률 같은 우울한 얘기만 한 건 아니고, 장미꽃이 핀 공원의 조그만 호수 앞에 서서 핀란드에 대한 여러가지 얘기도 듣고 또 한국에 대한 질문에도 열심히 답해드렸다. 나중엔 핀란드 여행에 대한 조언도 해주고 싶어하셨는데 이미 일정을 짜왔다고 하니 많이 아쉬워하셨다ㅎ
뜬금없이 헬싱키 할아버지와의 대화를 블로그에 적고 있는 건, 자꾸만 도망가고 싶고 현실이 원망스러운 요즘의 나에게 "어딜가든 현실이 녹록치 않다는 걸" 주지시키기 위해서다.
또한 최악이다 싶은 상황이 꼭 그렇지 않을수도 있다는 것을, 어쩌면 이 세상의 누군가는 나를 부러워할수도 있다는 것을, 물론 그래봤자 내 마음은 자꾸 비관의 늪으로 빠지지만 말이다.
이 글을 쓰고 검색해보니 핀란드 경기가 안좋긴 안좋은 것 같다. 핀란드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4년째 마이너스 성장(예정)에 높은 실업률에 나날이 높아지는 물가 거기에 난민 지원에 들어가는 높은 재정부담 등등, 어려움이 많구나. 그래도 우리나라보단 훨씬 나은 것 같지만서도, 정녕 도망칠 곳은 없는 겐가.
'외국 돌아다니기 > 2015.09 Finland & Tallinn'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이언트 머랭과 나 (헬싱키 카우파토리 마켓홀의 로버트 커피) (28) | 2016.03.18 |
---|---|
핀란드 여행의 아주 사소한 조각들 (24) | 2016.03.03 |
에스토니아 탈린 여행사진 프리뷰 (50) | 2015.10.12 |
핀란드 여행사진 프리뷰 (34) | 2015.10.11 |
핀란드 & 에스토니아 탈린 여행 정리 (28) | 2015.10.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