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lust
혼돈의 여행 준비 본문
모든 시작은 대한항공 마일리지를 긴급히 쓰기 위한 것이었고, 그래서 내 기준 제일 무난하고 편한 도시 중 하나인 암스테르담에서 일주일 정도 느긋하게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예전 네덜란드 여행 때 잘 썼던 기차 할인권이 코로나 기간 동안 사라진 점에 1차 당황하고, 또 마일리지 티켓 발권이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서, 대한항공이 허하시는 대로(…) 여행지를 정하다보니 미국 동부에 가게 됐다.
그래도 중간에 비엔나 in 프라하 out이 한번 풀리긴 했는데, 프라하 자체는 꼭 다시 가고 싶은 도시는 아니여도 간 김에 드레스덴에 다시 다녀오는 건 매우 좋았을 것 같지만, 워싱턴 퍼스트클래스에 마음을 빼앗긴 사이 그만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요 며칠 넷플릭스에서 “리디아 포에트의 법”을 재밌게 봤는데, 배경이 마침 예전에 밀라노 갔을 때 들리고 싶었지만 결국 못간 토리노인데다가 워낙 아름다워서, 갑자기 안되겠어 안되겠어 난 역시 유럽이 더 좋아 미국 따위 제치고 이탈리아 가고 싶어!! 란 생각이 들었지만.. 네.. 표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냥… 다 포기하고 워싱턴 행 퍼스트클래스을 발권했다.
이제 장거리 비행은 더이상 이코노미를 못타겠다. 7시간 정도까지는 괜찮은데, 그 이상 넘어가면 죽을 것 같다. 그렇다고 비즈니스를 매번 끊을 수는 없으니 대안은 러시아항공, 핀에어 등의 프리미엄 이코노미를 타거나, 적당한 시간으로 비행 구간이 쪼개어지는 중동 항공사였는데 코로나로 인해 편수도 줄고,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비행시간은 더 길어지고, 심지어 러시아항공은 말해 뭐해. 러시아항공 프리미엄 이코노미가 가격 대비 좌석도 편하고 유럽 취향지가 다양해서 좋았는데, 망할 놈의 푸틴!!!
나는 원래 한 도시에 쭉 머무르는 걸 좋아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여행은 여행 내내 한 호텔에 베이스캠프를 둔 뒤 시내를 여유있게 둘러보고 근교 도시들을 당일치기로 돌아다니는 것이다. 동선 상으로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는 없는데, 짐을 풀렀다 다시 싸는 것과 무거운 짐을 끌고 도시간 이동하는 것을 너무 힘들어해서 그렇다. 따지고 보면 애초에 그렇게 여행에 적합한 성정이 아니다 (힛)
아무튼 여기에 비춰보면, 뉴욕에 가더라도 뉴욕 in/out이면 제일 편하고 좋은데 퍼스트클래스를 타려다보니 워싱턴in이 되었다. 뭐, 뉴욕은 출장이긴 해도 한번 다녀왔으니 가는 김에 워싱턴도 보면 좋지 뭐 했는데, 같은 프레스티지 중에서도 좀더 좋은 좌석을 찾다보니 이번엔 보스턴out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면 러기지 끌고 두번이나 도시를 이동해야하구 호텔도 최소 3곳을 잡아야 한다. 약 10일간 워싱턴 - 뉴욕 - 보스턴을 거치는 게 일반적으로는 많이 빡센 건 아닌데, 워낙 짐들고 이동하는 거랑 귀찮은 걸 싫어하는 나에겐 빡센 조건이다. 그럼 좌석은 좀 덜 편하더라도 뉴욕out하자! 라고 결론 내리려 했는데 갑자기 보스턴 근처의 세일럼이 떠올랐다. 마녀, 오컬트 이런 걸 좋아했던 나에겐 옛날에 되게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내가 이 나이에 보스턴의 하바드, MIT 구경 가서 뭐하냐며 시큰둥했는데 세일럼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보스턴out을 해야 비행기 좌석도 더 편하고 세일럼도 구경할 수 있는데 그럼 그냥 좀 더 고생해서라도 보스턴을 가야하는 걸까…?
중간에 이것저것 알아보다가 워싱턴에서 푸에르토 리코로 가는 비행기표가 싸길래 또 잠시 설레였다. 우와 나 푸에르토 리코 갈래!!!! 했는데 미국령이라 그런지 호텔 가격이 미 동부 뺨쳐서 1차 주춤, 워싱턴을 오가는 항공 시간이 너무 난해해서(새벽 6시 출발이라거나 현지 새벽 2시 도착이라거나ㅋㅋㅋㅋ) 2차 주춤. 결국 또 접었다ㅋ 뉴올리언즈, 라스베이거스, 샌프란시스코, 엘에이, 애틀랜타 등 다양한 옵션을 검토해봤으나 이젠 다 포기하고 미 동부만 보는 걸로 굳히고, 워싱턴in 뉴욕out 인지, 워싱턴-뉴욕-보스턴out인지만 정하면 될 것 같다. 이것도 빨리 결정 안하면 표가 없어서 미국에서 못돌아올지도 ㅋㅋ 아니 근데 새삼스럽지만… 원래 알고 있던 바이지만 미국 호텔은 왜 이렇게 비싼 건지(흑흑) 1인실이 거의 없어 사실상 혼자 2인 가격을 내야하고 환율이 많이 오른 탓도 있지만 호텔 검색할때마다 기함하게 된다. 정말 비싸도 너무 비싸다. 원래는 숙소를 잡을 때 위치가 제일 중요시하지만 이번엔 도저히 중심지 호텔은 못잡을 것 같다.
워싱턴에선 베데스다, 뉴욕에선 퀸즈, 보스턴에선 와반이나 공항 근처 뭐 그런 근교 내지는 외곽에서 자야할 듯. 그런데도 결코 싸지 않아서 또 빡침. 그리고 호텔 뿐만 아니라 정말 미국 물가 너무 비싸다!!! 외식, 박물관 입장료까지 다 비쌈!!! 유럽 미술관은 보통 10유로 내외였던 것 같은데 (더 싼 곳도 많구) 미국은 왜 25달러, 27달러입니까ㅠㅠ 물론 내가 유럽 여행 못간지 오래라 유럽도 많이 올랐나 해서 방금 파리 루브르박물관 입장료 검색하고 왔는데, 현장 구매 기준 15유로였더. 리스본 굴벵키안은 10유로.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은 22.5유로로 좀 비싸긴 한데, 대신 네덜란드는 뮤지엄 1년 패스를 끊으면 굉장히 저렴해졌었다. 막연하게 뉴욕 가면 예전에 꼼꼼히 못본 모마도 제대로 보고, 구겐하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도 실컷 봐야지 했는데 갑자기 마음이 바뀜. 입장료 공짜인 워싱턴 박물관/미술관이나 열심히 보기로. 근데 이렇게 마음 먹고 나니까 너무 궁핍해보이기도 한다ㅋㅋㅋㅋ 아니 뭐 정말 3-4만원이 아까워서 꼭 가고 싶은 미술관을 안간다는 이야기는 아니니 오해 없으시길 바래요;;
한참 전부터 미리 준비해서 가는 여행이 아니다보니 워싱턴-뉴욕, 뉴욕-보스턴 구간의 기차표도 저렴한 건 더이상 남아 있지 않다. 이렇게 투덜거려도 어차피 다 써야할 돈이니 즐겁게 써야겠지만, 이번 여행 가서 만나기로 한 뉴저지에 살고 있는 친구가 “언니 뉴욕 물가 장난 아니니 각오 단단히 하구 와”라고 해서 다시 한번 가슴이 서늘해졌다. 진짜 요즘 미국 물가 보다보니깐 한줌인 내 월급이 더더욱 보잘 것 없어지는 느낌 ㅋㅋㅋ
의식의 흐름대로 썼는데 결론은
1. 평소에 가고 싶은 곳이 더 많았고, 비용도 더 저렴한 유럽에 못가서 아쉽다.
2. 돌아오는 항공편, 일정, 호텔, 기차 혹은 버스, 모두 미정이고 가격이 점점 오를 것 같아 불안
3. 미국 물가 비싸서 슬픔. 워싱턴 퍼스트클래스 떴을 때 1250원쯤 하던 환율이 다시 1300원 넘은 것도 슬픔
4. 하지만 이래놓고 막상 여행 가면 신나서 잘 놀겠지
추가)
이번에 알게 된 사실인데, 같은 대한항공 티켓이라도 뉴욕-서울 편도가 서울-뉴욕 편도보다 유류할증료 및 세금이 더 비싸다!!!! 마일리지 티켓 발권인데 왕복표가 한꺼번에 풀린 게 아니라서 미국에서 돌아오는 마일리지 티켓은 따로 발권해야 하는데 왕복 마일리지 티켓보다 한국->미국 편도+미국->한국 편도 티켓의 유류할증료 및 세금이 더 비싼거다!! (각각 약 50만원과 63만원) 아니 이게 무슨 일이지? 했더니 원래 그렇단다. 이게 말이 되나???? 운좋아서 왕복 마일리지표가 한꺼번에 풀리면 유할과 세금을 적게 내구, 돌아오는 대기 예약이 안풀려서 새로 편도 예약을 걸었더니 유할과 세금을 13만원쯤 더 내야한다 ㅜㅜ 재외국민들은 이유는 모르지만 원래 그랬어,라고 하드라.. 퍼스트클래스 타보라는 주위의 부추김과, 나의 호기심과, 또 약간의 허영심으로 워싱턴행 퍼스트클래스를 발권했지만, 퍼스트를 타도 비행의 근원적인 불편함이 사라지는 건 아니라서 - 귀통증, 건조함, 지루함, 갇혀 있어야 함 등등 - 사실 편한 걸로 치면 집에 있거나 서울 호텔에서 호캉스 하는 게 제일인데, 퍼스트클래스 타보려는 생각으로 여행지를 결정한 건 역시 좀 웃기다ㅋㅋ 보스턴에 갈지말지 아직도 못정했다. 아니 사실 내가 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뉴욕발 항공권 대기가 풀리지 않고 있어서 표 안구해지면 어차피 보스턴에 갔다 한국에 와야함ㅠㅠ
남들은 보스턴에서 하바드, MIT를 얘기하는데 난 사실 버클리 음대를 제일 먼저 떠올렸다. 어릴 때 엄청 가고 싶어한 학교였기에. 하버드처럼 교정이 큰 곳은 아니라 가봤자 특별히 구경할 것도 없을텐데, 그래도 버클리 음대 새겨진 머그잔 하나는 사오고 싶은 그런 소소한 마음ㅋㅋ
예전엔 보통 여행지가 정해지면 음악 공연이랑 그릇을 사기 위한 벼룩시장부터 알아봤는데 이번 미국 여행은… 벼룩시장은 기대가 안되어서 패스, 음악 공연은 좀 알아보다 일단 접었다.
며칠 또 바빠서 여행 준비를 전혀 못했는데, 그래도 가고 싶은 곳을 몇개 새로 발견하긴 했다. 워싱턴에선 힐우드 에스테이트, 튜더 플레이스, 뉴욕에선 근교의 올드 웨스트베리 가든스, 보스턴에선 이스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뮤지엄… 근데 문득 드는 생각이 난 왜 미국에서 유럽을 찾고 있는거지?;;
여행기를 읽다보니깐 공감 가는 블로거가 몇명 있는데 한분은 우당탕탕 좌충우돌 돌아다니시는 분. 본인의 실수를 가감없이 써놔서 빵터졌다. 꼭 나를 보는 것 같았다ㅋ
또 다른 분은 체력이 안따라줘서 좀 돌아다니다가 공원에 계속 앉아 있다가 숙소로 가고, 계속 카페인의 힘을 빌리고 뭐 그런 모습이었는데 역시 너무나 공감이 갔다. 여행이 가고 싶으면서도, 현지에서 얼마나 피곤할지 생각하면 다 귀찮은 느낌이 든다. 그냥 마일리지 표 포기하구 4월에 가까운데나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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